[취재파일] 헤지펀드 굴복시킨 게임스톱..다윗의 '성공 신화'?
● 1,625% vs. -53%, '골리앗'을 무너트린 '다윗' 투자 대화방
비디오게임 판매회사로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게임스톱(GameStop, 상장 종목명 GME)을 놓고 벌어진 공매도 세력과 개인 투자자들 간의 세력 대결이 미국 증시를 흔들면서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주 월요일부터 요동치기 시작한 게임스톱의 주가는 수요일 134%가 오르더니 목요일에는 44%가 떨어졌고, 금요일에는 다시 67%가 올랐다. 목요일, 개인 투자자들의 거래 플랫폼인 로빈후드(Robinhood)가 게임스톱 주식 등의 매수를 금지하고 매도만 허용하면서 폭락한 주가가 금요일에는 일부 거래 제한이 풀리면서 반등한 것이다.
게임스톱은 지난 1주일 동안 뉴욕증권거래소에서 가장 많은 거래량을 기록하면서 주가가 400%가 올랐다. 1월 한 달 동안에만 1천625%라는 기록적인 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난 1년 동안 주당 4.18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한 회사 게임스톱의 지난달 말 주가는 주당 325달러, 모두 6천975만 주가 상장된 게임스톱의 시가 총액은 226억 달러(한화 25조 원)로 커졌다. 지난 52주 동안 최저가는 2.57달러, 최고가는 483달러로 최고가와 최저가 차이가 187배에 달했다.
게임스톱의 주가 상승으로 주식을 산 투자자들 가운데 수백만 달러 이상을 번 사람이 속출했지만, 게임스톱의 주식을 빌려 판 공매도 세력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지난 1월 한 달 동안 게임스톱의 공매도로 헤지펀드들이 입은 손실은 135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1일 게임스톱의 공매도를 주도한 헤지펀드 멜빈 캐피털(Melvin Capital)의 운용 자산이 1월 한 달 동안 53%나 줄었다고 보도했다. 125억 달러(한화 14조 원)에 달했던 운용자산이 지난달 말 80억 달러(약 8조 9천억 원)로 감소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CNBC 방송은 또 다른 헤지펀드 메이플레인 캐피털(Maplelane Capital)의 손실도 45%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 '게임스톱 숏 스퀴즈(Short Squeeze) 작전' 어떻게 진행됐나?
CNBC에 따르면 게임스톱은 지난 1984년 미국 댈러스(Dallas)에 살던 개리 쿠신(Gary Kusin)이 '배비지(Babbage)'라는 이름으로 만든 소프트웨어 판매점이었다. 배비지는 설립 후 아타리(Atari)나 닌텐도(Nintendo) 같은 비디오게임도 판매했다.
미국 반스 앤 노블스(Barnes & Nobles)는 '배비지'를 인수해 '게임스톱"으로 이름을 바꾸고 2002년 GME라는 이름으로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비디오게임 판매회사 게임스톱이 지난해 초부터 확산하기 시작된 코로나19로 타격을 받게 되자 미국 월가의 헤지펀드들은 게임스톱의 주식을 빌려 팔기 시작했다. 공매도 기법, 즉 현재 주가가 기업의 가치에 비해 너무 높다고 보고 주식을 팔아 현금을 챙겨 놓은 뒤, 주가가 하락했을 때 주식을 더 싸게 사서 갚는 방법으로 차익을 얻으려 한 것이다. 이런 공매도 잔고는 한때 게임스톱 상장주식 수의 140%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없는 주식을 빌려 파는 일도 벌어진 것이다.
게임스톱의 창업자 Gary의 아들 벤 쿠신(Ben Kusin)은 게임스톱에 대한 '숏스퀴즈(공매도 스퀴즈)' 작전은 작년 여름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추이 펫 푸드 컴패니(Chewy Pet Food Company)를 설립해 2017년 30억 달러를 받고 판매한 것으로 알려진 투자 운동가 라이언 코헨(Ryan Cohen)이 작년 여름 게임스톱의 주식 13%를 매입했고, 그때부터 소셜미디어 뉴스사이트 레딧(reddit)의 투자 대화방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에서 동네의 비디오게임 판매 회사를 수십억 달러 규모의 회사로 키우자는 운동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게임스톱의 '숏 스퀴즈 작전'은 지난주 절정을 이뤘다. 회원수가 650만 명으로 1주일 사이 3배로 늘어난 월스트리트베츠 회원들이 공매도 세력에 대항해 주식 매수에 나서면서 거래량이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종목 가운데 최대치를 기록했다. 주가가 계속 오르면 주식을 빌려 판 공매도 세력이 손실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같은 수의 주식을 사서 되갚아야 할 수 밖을 없을 것이고, 개인투자자들의 매수로 매물이 씨가 마른 상황에서 헤지펀드들이 주식 확보에 나설 경우 주가는 더욱 뛸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에서 나온 단체행동이다.
지난주 화요일에는 소셜캐피탈(Social Capital)의 대표 차마스 팔리하피티야(Chamath Palihapitiya)가 게임스톱의 콜옵션을 매수했다고 밝히며 주가 띄우기에 가담했고,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Elon Musk)도 '게임스톱 공격(Gamestonk)'이라는 트위터 메시지를 올리면서 주가는 더욱 뛰었다.
게임스톱의 주가가 폭등하자 수요일 헤지펀드 멜빈 캐피털은 게임스톱의 공매도 잔고를 정리하고, 손실을 현실화했다고 밝혔다. 멜빈 캐피털은 손실을 메꾸기 위해 시타델(Citadel)과 포인트72(Point72)로부터 30억 달러를 차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가가 급등락하고 변동성이 커지자 개인투자자들의 거래 플랫폼으로 인기를 모았던 로빈후드는 지난주 목요일 게임스톱을 비롯한 '숏 스퀴즈' 현상으로 주가가 급등한 일부 상장 주식에 대한 매수 포지션을 금지했고, 게임스톱의 주가는 44%가 하락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로빈후드의 매수 금지 조치가 헤지펀드 같은 기관 투자가에게만 유리한 조치라고 즉각 반발하고 나섰고, 미국 의회에서도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로빈후드는 게임스톱 등의 매수 주문을 일부 다시 허용했고, 금요일 게임스톱의 주가는 67% 반등했다.
● 확산하는 숏 스퀴즈 전투…승자는?
미국 시장에서의 숏스퀴즈 현상은 게임스톱뿐 아니라 AMC엔터테인먼트(AMC Entertainment), 베드배스(Bed Bath & Beyond), 블랙베리(Black Berry) 등 여러 종목에서 발생하고 있다. 주로 사업 실적이 좋지 않고, 실적에 비해 주가가 높은 종목들로 기관 투자가들의 공매도 포지션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자 개인 투자자들이 소셜미디어의 투자 대화방을 통해 집중 매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게임스톱의 주가는 2월 첫째 주 월요일 미국 시장에서 30.8%가 하락하며 주당 225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정부와 금융권이 은 시세를 억누르고 있으니, 은과 은 ETF를 사면 대형은행에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은 매입에 나서 은의 가격이 8년 만에 최고치로 급등하는 현상도 벌어지는 등 개인 투자자들의 기관 투자가를 상대로 한 반란의 영역은 확산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를 중심으로 일부 개인 투자자들이 공매도 세력과의 전쟁을 선언하며 한국판 '숏 스퀴즈 작전'에 나서고 있다. 기관 투자가들의 공매도 잔고가 많은 셀트리온이나 에이치엘비 등의 주식을 집중 매수해 주가를 끌어올리고 기관 투자가들에게 손실을 입히겠다는 전략이다. 미국 개인 투자자들이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의 대화방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 WSB)을 중심으로 헤지펀드와 '공매도 전쟁'을 한 것처럼, 'kstreetbets(KSB)사이트'를 개설해 대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의 숏 스퀴즈 반란은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월가의 기관 투자가들에 대한 반감에서 출발한다. 여기에 스마트폰 앱을 통해 수수료를 거의 내지 않고 거래가 가능해지면서 많은 수의 개인 투자자들이 SNS를 이용해 투자 클럽을 결성하면서 기관투자가 못지않은 영향력을 확보하게 됐다. 시장 권력이 분산화 내지는 민주화된 것이다.
하지만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의 주가 상승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수백 조 원의 운용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기관 투자가들을 상대로 개인 투자자들이 이기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숏 스퀴즈가 집중되는 회사의 규모가 작고, 주가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은 이를 반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SNS를 통한 특정 종목의 매집이 일종의 담합으로 불공정 거래의 소지가 있으며, 시장의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의 본질 가치를 따지지 않는 투자는 '수건 돌리기' 내지는 '폭탄 돌리기' 투자로 누군가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숏 스퀴즈 현상으로 게임스톱의 주가가 급등했다면, 게임스톱의 경영진은 신주 발행을 통해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해 투자를 하고, 투자를 통해 수익을 창출해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되돌려 주는 것이 주식시장의 선순환이며 회사 경영진들이 할 일이라고 증권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와 사상 최대의 통화 방출로 돈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인플레이션 심리가 확산하면서 가격 변동 위험이 큰 주식이나 부동산에 대한 투자 바람이 꺾일 줄 모르고 확산하고 있다. 주가 상승이나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사회적 부담이 아니라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미래를 위한 투자를 활성화해 국가 발전의 모멘텀이 될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용철 기자yc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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