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北원전 보고서' 공개에도 남는 의문들..왜 삭제했을까
"상부 지시도 없이 실무자가 수조원 원전 건설 검토 가능한가"
(서울=뉴스1) 정재민 기자 = 북한 원전 건설 추진 의혹이 확산되자 산업통상자원부가 실무자가 작성했던 문건 원문을 공개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왜 감사원 감사를 받던 산업부 직원들이 해당 문건을 삭제했는지 등 일부 의문점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산업부는 전날(1일) 6쪽짜리 '북한 원전 건설 문건' 관련 원문을 공개하며 "남북 경협이 활성화될 경우를 대비해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자료이며, 추가 검토나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어 그대로 종결됐다"고 밝혔다.
해당 문건은 "동 보고서는 향후 북한지역에 원전건설을 추진할 경우 가능한 대안에 대한 내부검토 자료이며,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님"라거나 "현재 북미간 비핵화 조치의 내용, 수준 등에 따라 불확실성이 매우 높아 현시점에서 구체적 추진방안 도출에는 한계가 있음"이라고 적고 있다.
현재로선 북한에 원전 건설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면 문재인정부에서 '극비리에 원전 건설을 추진했다'는 의혹 제기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됐다.
다만 북한 원전 관련 나머지 문건들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상부 지시 없이 실무진 아이디어 차원에서 수조원에 달하는 사업 문제를 독자적으로 검토했는지, 문제가 없는 문건이라면 왜 문건을 삭제했는지 등이 의문으로 남는다.
이와 별도로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측에 건넨 USB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서도 아직 USB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에도 관심이 쏠린다.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북한 관련 삭제 파일은 총 17건이다. 산업부가 일부 문건을 공개하고 해명에 나섰지만 여전히 남은 문건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국민의힘 역시 "산업부가 (북한 원전 관련) 문건 17개를 모두 공개한 것도, (이날 공개한 문건이) 일부만 공개한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와 여당이 문건 원문 공개에 대해 '실무용 아이디어 검토로 끝난 문제',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한 것에 대해서도 "'말단 공무원'이 북한 원전이란 민감한 주제에 수조원이 들어가는 사업을 계획하느냐"는 야권의 공세가 거세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무원이 앉아서 이런 민감한 주제에 대해 괜히 쓸데없이 보고서를 쓰고 있지 않다"며 윗선의 지시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실제 산업부가 북한 원전 건설 추진을 아이디어 차원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한국가스공사도 북한 원전 건설을 검토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선 당시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정부가 각 부처별로 가능한 남북 협력 사안을 발굴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각 분야별로 부처 공무원들이 직무와 연관된 남북 협력 사업 아이디어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정부의 해명대로 아이디어 차원으로 검토에서 끝난 문제라면, 굳이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 결정과 관련한 감사원 감사를 받던 산업부 공무원들이 일요일 밤 11시란 늦은 시간에 출입권한 없이 사무실에 들어가 이를 포함한 문건들을 삭제했는지도 의문이다.
산업부는 "정부가 북한에 원전 건설을 극비리에 추진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면서도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며 재판 과정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고, 청와대 역시 "파일을 삭제한 것에 대해 수사를 받고 불구속 기소가 돼 저희들이 함부로 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재판 결과가 나오거나 산업부가 추가 설명을 하지 않는다면 의문부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한반도 신경제구상' USB에 원전 관련 내용이 포함됐는지 여부도 말끔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이날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 원전은 거론되지 않았다"며 "대통령께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달한 USB에도 원전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다"고 밝혔지만, 야권에선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오해를 만든 건 문재인 대통령이다. 국민들은 USB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한다. 명명백백하게 밝히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여당 일각에선 의혹 해소를 위해 USB 공개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지낸 윤영찬 민주당 의원은 전날 USB 공개 가능성에 대해 "검토가 분명히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필요하다면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아직까지는 USB 공개에 신중한 입장이다.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외교상 기밀문서고, 정상회담 장소에서 건네진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기록물로 가지 않아 열람도 안되는 것"이라며 원칙적으로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논란이 지속될 경우 야당의 '책임'을 전제로 공개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최 수석은 "국론이 분열되고 가짜뉴스 허위주장이 도저히 걷잡을 수 없을 정도라면, 이건 한 번 책임을 전제로 검토는 해볼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ddakbo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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