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위험?..'갑질 아파트'에 뿔난 라이더들, 인권위 진정

CBS노컷뉴스 서민선 기자 2021. 2. 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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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 76곳·빌딩 7곳, 배달 라이더에 '갑질'
우비·헬멧·패딩 벗어라 강요..'테러 위험'이 이유
화물 승강기 강요도.."라이더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
2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 앞에서 열린 ‘배달라이더 무시하는 갑질아파트·빌딩 문제해결 요구 및 국가인권위 진정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배달 노동자들이 단지 안에서 헬멧 착용을 금지하거나 정문에 오토바이를 두고 걸어서 배달하도록 강요하는 등 '갑질'을 일삼은 아파트·빌딩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2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 배달서비스지부는 서울 중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배달 노동은 코로나 시기 사람들의 언택트 생활을 보장하고 바쁜 일상을 메우고 있지만, 라이더들은 노동권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인권마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라이더 무시하는 갑질 아파트·빌딩 문제 해결을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일부 고급 아파트와 빌딩에서는 배달 라이더를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출입 시 헬멧을 벗을 것을 강요하고 있다. 심지어 패딩을 벗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신분증이나 소지품을 맡기고 건물을 출입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왜 그래야 하냐'는 질문에 '패딩 안에 흉기를 숨길 수도 있다'는 황당한 답변을 들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배달 노동을 하는 라이더에겐 배달 시간이 곧 임금이다. 특히나 점심, 저녁 등 배달이 집중되는 시간에 한 건이라도 더 배달하기 위해 애쓰는 라이더들이 있다"며 "하지만 건물 내 오토바이 출입을 금지하고, 지상 도로의 이용을 금지해 라이더에게 경제적 손실을 강요하고 있는데 그에 맞는 경제적 보상은 없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2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 앞에서 열린 '배달라이더 무시하는 갑질아파트·빌딩 문제해결 요구 및 국가인권위 진정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진정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황진환 기자
그러면서 "더욱 분노하는 것은 이런 노동권, 인권의 침해가 고급 아파트와 고급 빌딩에서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라이더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고 하찮은 노동으로 취급하는 이런 사회적 편견은 높이 솟은 아파트와 빌딩이 만들어 낸 현대판 신분제도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이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도보배달', '화물엘리베이터 이용', '헬멧 탈모' 등을 강요하는 서울 시내 아파트는 총 76곳으로 대부분이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에 몰려 있었다. 강남3구가 53곳, 마포·용산·성동이 13곳 등이었다. 빌딩은 총 7군데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현장에서 직접 갑질을 겪은 라이더들의 사례도 소개됐다. 김영수 배달서비스 지부장은 "작년 폭우가 쏟아지던 장마철 마포에 있는 한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에 배달을 갔다. 입구에서 '우비와 헬멧을 벗으라'고 제지했다"며 "비가 이렇게 오는데 언제 벗고 입냐고 물으니 '너희들 때문에 1층 로비가 물바다가 됐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김 지부장은 "그럼 헬멧은 왜 벗냐고 하니까 'CCTV에 얼굴이 나와야 너희가 잘못을 하면 잡지 않겠냐'고 하더라. 우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라며 "경비원이랑 옥신각신 싸울 시간이 없어서 결국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앞에서 동물원 우리 속 원숭이처럼 옷을 벗었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서 날 비춰봤을 때 수치심이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직업이 하찮은 게 아니다. 자기들 아파트값 떨어질까, 엘리베이터에서 냄새날까 걱정하는 입주민들이 정말 부족한 사람들"이라며 "그들도 결국 음식 받기를 원하는 것 아닌가. 1층에 음식 보관함 등을 준비해서 직접 수령하거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 앞에서 열린 '배달라이더 무시하는 갑질아파트·빌딩 문제해결 요구 및 국가인권위 진정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이외에도 라이더가 여의도의 한 빌딩에 음식을 가지러 들어갔다가 보안요원이 "테러의 위험이 있으니 헬멧을 벗으라"고 요구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송파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지상으로 오토바이를 몰고 들어가면 경비원이 계속 쫓아오거나, 주민들이 오토바이 열쇠를 뽑아 경비실에 갖다 주는 사례도 있었다.

배달료를 올리니 그제서야 갑질을 그만 둔 경우도 있었다. 이들에 따르면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정문에 오토바이를 두고 단지 안으로 걸어 들어가 배달해야 하는 '도보배달'을 라이더에게 강요해왔다. 그러다가 입주민 회의를 거쳐 해당 단지에만 배달료를 '5천 원' 인상하기로 했는데, 결국 배달료를 다시 내리고 '도보배달' 강요도 없어졌다.

서비스연맹 강규혁 위원장은 "우리 배달 라이더들은 신분이 확실하고, 모든 신원이 등록돼 있다. 그런데 어떻게 이중, 삼중의 검문을 할 수 있나"라며 "시간이 돈인 우리 노동자들이 5분이면 끝날 배송을 20분 걸려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배달 노동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지 말라"며 "라이더들도 한 가정의 가장이고 당당한 노동자다. 인격적으로, 노동자로 존중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인권위 진정 제기 이후 서명운동과 제보센터 운영, 플랫폼사에 대화 제안, 해당 아파트·빌딩에 해결 제안 등을 촉구할 예정이다.

앞서 이들과는 별개로 배달 종사자 노조인 '라이더유니온' 또한 갑질 아파트 103곳의 입주자대표회의를 대상으로 전날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들은 지난달부터 오픈 카카오톡방과 배달원들에게 제보를 받아 서울·부산·인천·광주 등의 아파트 명단을 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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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서민선 기자] sm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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