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데이트] 다른 꽃을 피워도 어울리니 어여쁜 '세자매'

아이즈 ize 글 권구현(칼럼니스트) 2021. 2. 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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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글 권구현(칼럼니스트)



여기 ‘자매’라는 테두리에 묶인 세 여성이 있다. 첫째 희숙(김선영)과 둘째 미연(문소리), 그리고 셋째 미옥(장윤주)이다. 같은 환경에서 자랐을 터인데, 세 사람은 생김새부터 성격, 그리고 현재의 삶까지 너무나도 다르다. 영화 제목이 ‘세자매’(감독 이승원, 제작 (주)영화사업)이고, 장르 또한 가족 드라마인데, 세 명이 함께 있는 모습은 여느 가족처럼 썩 어울리지 않는다. 

허나 본디 형제자매, 그리고 가족이라는 것이 그렇다. 하나의 둥지에서 나와 각기 다른 곳을 향해 날갯짓을 펼쳐 갔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세월이라는 바닷물에 혈연의 붉은빛이 조금씩 희석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언니가 첫 월급으로 사줬던 짜장면을 기억하고, 자취방에 처음 놀러 와 함께 먹은 성게비빔밥이 불현듯 생각난다. 누군가에겐 스쳐 지나간 행동이었으나, 다른 한쪽에겐 평생의 추억거리다. 결국 그렇게 일생토록 끊어내지 못하고, 귀소본능처럼 서로에게 돌아오는 것이 가족이다. 하여 각자의 상황과 결핍, 상처를 유일하게 보여줄 수 있고, 반대로 남들은 알지 못하는 공동의 문제를 끌어안고 함께 앓아가는 것이 가족의 의미다.

희숙은 시들어가는 장미다. 작은 꽃집을 운영하지만 가끔 들러 돈이나 뜯어가는 남편과 반항을 일삼는 딸로 인해 외로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사고 치는 남편 탓에 동생들한테 큰돈을 빌려 놓고, 그걸 갚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에 연락도 제대로 못한다. 아니, 애당초 희숙은 사람을 대하는 것이 썩 편안해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 희숙이 어느 날 암 선고를 받는다.

미옥은 걸어 다니는 폭탄이다. 당초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성격인데 술만 마셨다 하면 눈이 돌아가고 포악해진다. 문제는 술 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힘들다는 것. 오죽하면 남편과 전 부인 사이의 아들은 미옥을 ‘돌+아이’라 휴대폰에 저장해 놨다. 매일 밤 술에 취해 미연에게 전화를 걸어 헛소리만 늘어놓는 인물. 하지만 미옥도 이젠 진짜 엄마가 되고 싶었다.


미연은 다른 두 자매에 비해 평범한 삶을 산다. 교수 남편과 두 아이, 새로 조성되는 신도시에 자가 아파트를 바라보는 중산층이다. 나이 순서로 둘째인 미연을 마지막에 언급하는 건 그만큼 세 사람의 관계에 구심점이 되기 때문. “언니가 해준 게 뭐가 있냐”며 투덜대면서도 따로 만나 식사를 함께 하고, 밤마다 동생의 술주정을 받아낸다. 책임감으로 포장하기엔 그리 대단한 감정은 아니다. 누구나 그러했을, 가족과 부대끼는 평범한 모습이다. 

하지만 미연도 평범한 사람이기에 당연히 결핍이 있다. 완벽한 듯 보이는 그의 처세가 가식인 건 아니다. 자신의 내면을 모두 드러내며 사는 인간이 몇이나 있을까? 미연은 그저 열심히 살고자 할 따름이다. 하여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공허함이 쌓이고, 그럴수록 더욱 교회에 매달린다. 성가대의 지휘자로, 교인들의 집사로 채워가는 삶. 허나 남편이 성가대원 효정(임혜영)과 바람이 나면서 미연이 세운 밀랍의 성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렇듯 이승원 감독은 다른 삶을 살지만 뿌리는 하나였던 ‘세자매’의 삶을 조망한다. 담담하면서도 뭉근하게 끓어오르는 시선의 거리두기가 일품이다. 전작 ‘소통의 거짓말’ ‘해피뻐스데이’와 같은 센 기운을 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금은 불편하고, 언제 터질지 불안하다. 하지만 이는 ‘세자매’의 삶    속에 나의 모습이 투영됐기 때문이다. 하여 마지막엔 아버지의 생일로 세 사람을 한 공간에 모아 남몰래 참아왔던 그녀들의 속사정을 터뜨릴 때 관객의 감정은 배가된다. 극단 ‘나베’를 운영하며 연극에도 힘을 쏟고 있는 감독의 이력이 배어 있는 지점이다. 그리고 이 난장의 순간, 울컥하는 감동과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은 배우들의 호연이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영화는 가족애를 이야기하는 한편, 과거의,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여성상도 제시한다. 어린 시절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트라우마가 있는 자매들, 학대의 중심에 있던 희숙은 “미안하다”가 말버릇으로 붙어버린, 잘못한 것도 없지만 사과부터 해야 했던 구 시대의 여성들을 대변한다. 그리고 미연은 남편의 간통에도 자녀와 자신을 위해 참고 살아가는 옛 세대의 여성을, 미옥은 남편이라도 잘못했다면 주먹과 발길질을 서슴지 않는 진취적인 여성을 그려낸다. 그리고 희숙의 딸 보미는 “어른들은 왜 사과할 줄 몰라”라는 고함으로 영화에, 그리고 세 자매의 인고에, 그리고 무언가 억울한 걸 참고 살아가고 있을 관객들의 마음에 사이다 한 사발을 선사한다.

더불어 ‘세자매’를 이야기하면서 문소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각자의 이야기를 그렸지만 결국 내레이터는 ‘미연’이다. 배우를 넘어 연출, 제작까지 발을 담그고 있는 하여 이젠 영화인을 넘어 시대의 진취적인 인물로 말하고 싶은 문소리는 이번 작품에서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가족 내에서도 프로듀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 영화 도처에는 문소리였기에 가능했을 손길들이 여럿 묻어 있다.

덧붙여 ‘세자매’에서 콕 짚어내고 싶은 건 임혜영과 이소라다. 영화에서 음악이 가지고 있는 무게는 상당한 법. 찬송가 속에서 어여쁘게 샘솟는 임혜영의 목소리는 무채색의 ‘세자매’가 가지고 있는 다른 톤의 영롱함이다. 덕분에 맑고 고운 음색과 지휘를 하고 있는 미연, 그리고 상간녀의 감정 대비가 절묘하게 이뤄졌다. 뮤지컬 쪽에서 톱 배우로 활약 중인 임혜영의 미성이 제대로 빛난 순간이다. 정작 연기 당시 “아마추어같이 불러 달라”고 요청 받았고, 그럼에도 너무 잘 불러 후반작업을 했다는 후문. 또한 엔딩곡인 이소라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는 영화의 마지막 책임지며 유종의 미를 장식한다. 영화와 딱 맞는 음색의 이소라였기에 가능했던 짙은 무채색의 여운이다.

권구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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