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 서울 감성이 적절히 섞인 우리 집

서울문화사 2021. 2. 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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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반, 서울 반. 아름다움을 좇아 두 도시를 여행하듯 살아온 안지혜 씨의 감성 그윽한 아지트.


방 하나를 식물원으로 꾸몄다. 소파 뒤에 걸린 그림은 덴마크 브랜드의 제품. 안지혜 씨는 이처럼 동양적 무드를 유럽 감성으로 재해석한 소품에서 영감을 받는다.


깊이가 있는 창가를 활용해 화분을 진열했다. 주름진 패브릭이 만들어내는 아른아른한 빛과 그림자가 감각의 평화를 준다.


저에게 집은 홀로 머물 수 있는 저만의 공간이에요.

방 한 칸이든 집 전체가 되었든 저 혼자 있을 수 있고 빛과 소리,

향과 사물 모든 것이 감각에 편안함을 주는 것들로만 채워져 있는 곳….

그런 곳이 제 집이라 생각해요. 취향에 따라 텅 비어 있는 곳이라 해도 좋을 수 있죠.


자연의 색, 여린 존재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안지혜 씨의 취향이 작은 화분 하나에서도 느껴진다.


오래된 화분들 가운데 자리한 하얀 화병은 취미로 도예를 시작한 안지혜 씨의 첫 작품.


창틀을 떼어내 선반처럼 사용하고 있다. 작은 공간이지만 시간, 계절마다 풍경이 새로워진다.


주방 한쪽에도 유리 공예품을 비롯해 아끼는 소품들을 진열했다.


주방 한쪽에 세탁기를 놓았었는지 수도꼭지 2개가 튀어나와 있었다. 그 자리에 빈티지 수도꼭지를 설치해 인테리어로 승화했다.


주방에서 꽃을 준비하는 안지혜(@anaimjh) 씨. 벽돌로 이루어진 하부장과 고재로 만든 선반에 소품들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 이국적이면서도 편안함이 느껴진다.


제일 좋아하는 것이 벼룩시장을 다니면서 물건을 찾는 거예요.

아무리 닦아도 더 이상 반짝이지 않지만, 전 이런 것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파리 클리냥쿠르 벼룩시장에서 영롱한 갓 디자인이 매력적인 조명을 구했다. 빈티지 소켓과 전구를 어렵게 찾아 주방에 달았다.


파리에서 막 돌아온 안지혜 씨가 잠든 사이, 딸을 보러 온 아버지가 캐리어 가득 담긴 소품을 정리해주셨다. 공사용 테이블 위에 빈티지 패브릭을 더한 아버지의 정성과 센스가 느껴진다.


천장의 장식을 비롯해 문과 창의 오래된 나무 느낌을 살리기 위해 남편 김한준 디자이너는 부서진 부분들을 일일이 복원하고 칠을 새로 했다.


‘아름다움도 쓸모’라고 생각하는 안지혜 씨는 편안함을 주는 소품으로 자신의 공간을 가꾼다.


전에 이 집에서 살았던 집주인의 장식장을 요긴하게 쓰고 있다. 오래된 책과 그림, 판화, 인쇄물을 비롯해 빈티지 무드를 추구하는 안지혜 씨의 컬렉션.


흔히 유럽 인테리어 하면 대두되는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이 심플하고 실용적인 면을 중시하는 데 반해,

프렌치 스타일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면이 더 도드라지죠. 저는 아무래도 러스틱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같은 러스틱이라도 프랑스만의 사랑스러움이 또 다르거든요.


가장 큰 방은 창고 겸 사무실로 쓴다.


프레임이 얇은 침대와 고만고만한 크기의 소품들로 침실을 꾸몄다.

프랑스와 인연이 깊으신가 봐요. 프랑스에선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의 에스모드 의상학교로 유학을 갔어요. IMF 시기라 잠깐 어학연수라도 받자며 떠났는데 이렇게 오래 살게 될 줄은 그땐 몰랐네요. 어려운 시기에 유학을 한 만큼 열심히 살았어요. 짧은 기간에 좋은 성과가 쌓여 제 브랜드를 갖게 되었죠. 그 후로 19년째 파리 마레 지구에서 boutique a.n.a.i.m을 운영 중입니다. 처음엔 제가 직접 제작한 컬렉션을 선보였어요. 그러다가 한국 브랜드의 옷을 함께 소개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좋던걸요? 최근까지는 옷, 액세서리, 가방, 신발 등 한국 패션을 다양하게 소개하는 편집숍으로 운영하고 있죠.

그럼 서울엔 얼마나 자주 오시나요?

남편이 인테리어 디자이너예요. 파리에서 함께 지내다가 5년 전 덴보드라는 인테리어 업체를 열고 서울 원서동에 사무실을 냈어요. 그러면서 저희는 주말, 월말도 아닌 ‘분기 부부’가 되었답니다. 1년에 네 번, 매 시즌마다 서울과 파리를 왔다 갔다 했는데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1년째 서울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 공간은 어떤 계기로 마련하신 건가요?

원래는 창덕궁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원서동의 아담한 한옥식 주택에 살았어요. 덴보드 사무실과 주거 공간이 따로 또 같이 공존하는 아기자기한 곳이었는데, 직원이 점차 늘어나면서 저만의 공간이 필요해졌죠. 그런데 빌라나 아파트는 처음부터 생각에 없었어요. 구조나 창호의 느낌이 제 취향에는 맞지 않아서요. 결국 종로구 인근의 여러 공간들을 둘러보던 중 이 집과 인연이 닿았네요. 층마다 사무실이 입주한 건물의 꼭대기인 5층인데, 집처럼 꾸며져 있는 점이 신기했어요. 알고 보니 건물 주인이 줄곧 살던 곳이라네요. 오래된 갈색의 문과 창틀, 몰딩이 남아 있는데 이런 요소들을 잘 살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존 요소들을 살리는 게 새로 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인테리어 디자이너 남편을 두어 든든하셨죠?

그렇죠. 집이 가지고 있는 문, 창, 몰딩의 강한 느낌에 맞춰 제가 원하는 분위기와 조화를 찾는 게 쉽지 않았어요. 큰 틀만 고치고 1년 정도 남편과 셀프로 인테리어를 했어요. 직접 몰딩에 붙은 벽지와 본드를 떼어내고 페인트칠도 하면서요. 페인트 색을 고르는 데에도 수십 개의 샘플을 살폈고, 못을 박고 조명을 다는 것도 하나씩 신중하게 했어요.

침대맡과 집 안 곳곳에서 장식과 수납을 담당하는 철제 선반은 모두 이케아 제품.


손님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감성적인 욕실. 조적으로 파티션과 세면대 하부장을 만들고 문턱에 어울리는 아이보리 톤의 페인트로 마감했다.


결국 취향이 취미를 만들고, 그것들이 있는 곳으로 저를 이끌고, 보고, 사고, 경험하게 하고…

그러면서 다시 영감을 받는 리듬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손으로 만든 도자기를 좋아하는 안지혜씨의 컬렉션. 바닥은 데코 타일로 마감해 보통의 장판이나 마루재와는 다른 느낌이다.

주방 인테리어가 신선해요. 새로운 디자인인데 이 공간에 꼭 처음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유럽을 다니다 보면 종종 시멘트나 콘크리트로 만든 주방 가구가 눈에 띄더라고요. 주방 하부장은 벽돌을 쌓아서 시멘트로 마감한 다음 벽과 같은 색으로 페인트칠을 한 거예요. 저는 제 공간에 무거운 존재감을 풍기는, 덩치가 큰 가전이나 화려한 가구를 두는 게 힘들더라고요. 내 손으로 직접 들고 걸어 나갈 수 없는 물건들은 두기가 부담돼요. 그래서 모든 테이블이 접거나 분리할 수 있는 가벼운 것들이죠. 냉장고도 최대한 작은 것으로 골랐고, 다들 있는 전기밥솥과 에어컨도 이 집에 없어요. 싱크대도 마찬가지로 주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구가 되지 않도록, 벽과 자연스럽게 연결된 구조물을 만들어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했어요.

주방부터 시작해 거실과 집 안 곳곳에 빈티지 소품이 정말 다양해요.

자세히 보면 주방 하부장에도 살림살이가 아닌, 빈티지 냄비들과 소품들이 진열돼 있어요. 저의 오래된, 최고의 취미가 벼룩시장 구경이에요. 시대를 따지지 않고 오래된 것들에 손이 가요. 누군가에겐 쓰레기거나 쓸데없는 물건일 수 있겠지만, 아름다움도 쓸모가 될 수 있죠. 파리 제가 사는 동네에 백발의 미국인 할머니가 하는 예쁜 빈티지 가게가 있어요. 어느 날 맘에 드는 나무 바구니를 발견하고 “너무 예쁘지만 또 이걸 어디다 쓰겠냐” 하며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때 할머니가 저를 바라보며 “for your eyes…”라고 말했던 게 떠오르네요.

평소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시나요?

전 뭐든 날것의 느낌을 좋아해요. 천연의 자연스러운 색을 지향하고 낡고 오래된 것들에서 영감을 많이 받고요. 그리고 손으로 자연스럽게 만든 물건들의 불완전하고 연약한 아름다움이야말로 저를 설레게 해요. 자연스럽고 가볍고 세련됐지만, 세련됨을 과시하지 않는 사물과 장소, 자세히 보아야 아름다운 그런 것들이 좋아요.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한 공간에서, 모처럼 서울살이를 하니 어떠신가요?

너무 재밌어요. 주방 쪽으로 갈 때마다 기분 좋고 욕실에서 양치를 하다가도 눈앞에 멋진 모습이 펼쳐지면 사진을 찍기도 하고요. 워낙 혼자 있는 걸 좋아하다 보니 프랑스에서 돌아와 이곳에서 격리 생활을 하는 시간도 힘들지 않았답니다. 원래는 파리의 공간이 제 집 같았는데, 지금은 꼬박 1년 머무는 이곳이 내 집이 됐네요.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해보고 싶으세요?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공예를 다양하게 다루려고 해요. 빠르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패션 산업과 환경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는 중이었어요. 앞으로는 제가 직접 옷을 제작할 생각이에요. 마침 코로나19가 터져서 잠시 멈춤 상태이지만,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제품과 감각 있는 공예 작가의 작품을 파리에 소개하며 또 다른 ‘한국의 미’를 알리는 역할도 하고 싶어요. 반대로 한국에는 유럽의 빈티지 제품 또는 빈티지 무드를 반영한 소품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부담스럽지 않은 사소한 것들이지만 삶을 가치 있고 아름답게 해 ‘감각의 상류층’을 만들어줄 제품들로요. 한국과 유럽의 감성을 믹스 매치하는 일이라면 즐겁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획 : 김의미 기자  |   사진 : 김덕창  |   디자인·시공 : 덴보드(denbor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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