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2주가 고비"라는 희망 고문 멈춰라
〈'지속 가능 방역' 연속 토론〉
①지속 가능한 방역에 대한 어느 의사의 질문 -오명돈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감염내과 교수)
②‘두려움 해소’ 아닌 ‘위험 대처’가 중요하다 -김현철 (홍콩 과학기술대 경제학과·코넬 대학 정책학과 교수)
③‘당장의 손실’보다 ‘미래의 이득’을 보자 -김탁 (순천향대 부천병원 감염내과 교수)
④지속 가능 방역, 검사·조사·기술보다 ‘질적 전환’이 중요하다 -임승관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책단 공동단장) ⑤‘균형 잡힌’ 방역이라야 지속가능하다 COVID-19 워킹그룹 ⑥우리의 ‘방역 소통’은 충분히 최선이었을까 COVID-19 워킹그룹
⑦“향후 2주가 고비”라는 희망 고문 멈춰라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⑧확진자 수에 집착 말고 '위험 수용 능력' 높여야 권순만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장면 1. 남아프리카공화국
지난해 2월, 대구에서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일 때 나는 한국에 없었다. 당시만 해도 ‘코로나 청정국’이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일을 하던 터라, 부모님과 친지들이 계신 한국 상황을 걱정스레 주시하고 있었다.
코로나19가 유럽을 거쳐 남반구에 도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월 초 이탈리아에서 들어온 여행객을 시작으로 서서히 지역사회에 감염이 번지더니, 어느 순간 확진자 수가 세 자리로 늘었다.
남아공 정부는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발생하자 전격적인 봉쇄(lockdown)를 단행한다. 첫 번째 감염이 발생한 후 3주 만에 내린 매우 신속한 결정이었다. 적어도 이론적으로, 남아공의 봉쇄는 꽤 엄격했다. 식료품점과 의료기관 외 모든 시설이 문을 닫고 집 밖으로 못 나가게 강제했다. 곳곳에 군인과 경찰이 돌아다니며 이동 인원을 통제했다.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국경을 넘는 것이 금지되었다.
나는 당시 이직이 결정되어 한국행을 앞두고 있었다. 귀국 전까지 아껴뒀던 아프리카 여행은 일찌감치 단념했고, 여행은커녕 한국으로 돌아갈 수나 있을지 걱정하는 신세가 됐다. 최초 3주 계획이었던 록다운은 5주로, 8주로 계속 늘어났다. 계약이 끝난 집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미리 예약해둔 비행기 티켓도 기약 없이 미뤄졌다. 그 와중에도 확진자 수는 계속 증가했다. 사람들을 집에 가둬놓는데 도대체 왜 확진자가 느는지 의아했다. 일일 확진자 수는 점차 수십 명에서 100명대로, 500명대로 계속 늘어났다.
정부에서 마련해준 전세기를 타고 귀국길에 오른 건 지난해 5월20일경이었다. 3월 말부터 8주간 꼬박 집에 갇혀 있었다. 내가 한국에 귀국한 후에도 남아공에서는 몇 주간 록다운이 지속되었고, 봉쇄가 시작될 때 500명이었던 누적 확진자 수는 봉쇄가 해제될 즈음 3만5000명으로 늘어 있었다. 중간 단계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된 9월까지 일일 1만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하며 누적 확진자가 60만명으로 불어났다.
확진자가 급증해도 남아공 정부는 거리두기 단계를 높일 생각을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거리두기 단계를 높이는 게 소용이 없었다. 내가 성실히 집에 갇혀 있던 그 8주가 끝날 즈음, 이미 사람들은 마치 코로나19가 없는 것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식당이 문을 닫자 사람들은 집에서 모이기 시작했고, 주류 판매가 금지되자 파인애플을 사서 직접 주조에 나섰다. 브라이(남아공식 바비큐)를 하는지 여기저기서 숯불에 구운 고기 냄새가 진동했다.
좀이 쑤셔서 이웃집에 놀러가는 정도는 사치였다. 봉쇄로 인해 생계에 심각한 위협을 받는 사람이 속출했다. 안 그래도 높은 실업률에, 비숙련 서비스직 일자리가 몇 주 사이 완전히 사라졌다. 간간이 봉사활동을 나가던 빈민가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먹을 게 없다며 돈을 보내달라는 연락이 왔다. 거리에는 구걸하는 사람이 평소보다 열 배는 더 눈에 띄었다. 군인도 경찰도 그 많은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수 없었다. 어쩌면 그들에게 돌아갈 집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19에는 걸려도 살 가능성이 있지만, 몇 주간 밥을 못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남아공 정부의 재정 상황에 넉넉한 재난지원금은 꿈같은 얘기다. 텔레비전에선 군인들이 봉쇄에 저항하는 시위대를 무력으로 저지하는 장면이 나왔다. 집 근처에도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부르며 행진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확진자는 계속 늘지만 봉쇄는 더이상 지속되지 못했다.
장면 2. 유럽
한국에 와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유럽팀에 배치받았다. 유럽에서 여름 동안 잠잠해졌던 코로나19 유행이 가을부터 다시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유럽의 코로나19 재확산에 대한 보고서를 하나 작성했다.
유럽의 재확산은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그림〉을 보면 1, 2차 유행에서 모두 심각한 피해를 본 국가(유형 ①), 1차 유행은 잘 막았으나 2차 땐 피해가 컸던 국가(유형 ②), 1·2차 모두 비교적 잘 통제하는 국가들이 있다(유형 ③).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벨기에·스위스 등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는 1번 유형이다. 1차 유행 시 뒤늦은 대처로 피해가 컸는데 2차 때도 신속히 반응하지 못하고 피해가 심각했다. 〈그림〉에서 영국·스웨덴·아일랜드가 1차 때는 피해가 컸지만 2차 때는 낮은 유형 ④에 위치해 있긴 하나 유럽 평균 대비 낮았을 뿐 피해가 적지 않았고, 보고서가 발행된 이후인 지난해 12월부터 확진자가 급증해 다시 유형 ①로 이동했다. 결과적으로 유형 ④로 분류된 나라가 전무한 것은 1차 피해가 컸던 나라에 유행 통제에 불리한, 그리고 단기간에 바꾸기 어려운 어떤 특성들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짐작된다.
유형 ②도 주목할 만하다. 오스트리아·체코·폴란드·슬로베니아 등 대부분의 중동부 유럽 국가는 1차 유행 시 발 빠르게 대처해 감염 확산을 성공적으로 통제한 경험이 있다. 신속한 입국금지, 이동 및 모임 제한, 휴교 등의 봉쇄 조치로 효과를 보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들 대부분이 2차 유행에선 맥을 못 추었다. 체코처럼 오히려 유형 ① 국가들보다 더 큰 피해를 본 나라도 있다.
간단하게 이유를 제시할 수 없지만 내가 남아공에서 겪은 일이 동일하게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강력한 봉쇄 조치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몇 주간의 봉쇄로 처음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방심하는 순간 다시 감염 확산이 무섭게 일어난다. 두 번째 봉쇄는 더 고통스럽다. 이미 사람들은 봉쇄의 피해를 경험했고, 규칙을 지키는 사람과 지키지 않는 사람 사이의 반목은 심해지며, 강렬하게 저항하는 사람의 숫자는 점점 늘어난다. 1차 때 신속히 대응했던 나라들도 2차 확산에선 개입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고, 의료체계 붕괴의 위기를 겪은 다음에야 재봉쇄를 단행했다.
유형 ③처럼 1·2차 유행에서 모두 선방한 나라는 매우 희귀하다. 그나마 보고서를 냈을 지난해 11월만 해도 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독일 등이 여기에 분류되었는데, 연말을 지나면서 상당수가 유형 ②로 넘어갔다. 현재 독일은 매일 수만 명대 확진자와 1000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고, 덴마크와 발트 3국 역시 확진자 급증에 몸살을 앓는다. 남아 있는 나라는 노르웨이·핀란드·그리스 정도로 손에 꼽힌다.
유럽의 사례는 코로나19 유행을 지속적으로 통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국가마다 의료체계 붕괴를 겪은 뒤에야 봉쇄 조치를 들고 왔지만 피크를 꺾는 이상의 효과는 보지 못했다. 지역사회 감염을 완전히 제거하는 수준까지 봉쇄를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봉쇄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여서 핼러윈과 크리스마스를 즐긴다. 다른 이를 위해 희생하라는 구호는 개인주의 전통이 강한 유럽에서 약발이 떨어진다. 그래도 유럽은 나랏돈으로 피해를 보상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GDP의 30~50%에 달하는 대규모 재정 투입으로도 장기간 경제를 멈추면서 생기는 모든 피해를 다 보상할 수는 없다.
짧고 굵은 봉쇄는 없었다. 겨울은 길고 바이러스는 진화한다. 이 지독한 적은 잠시 주춤한다고 방심하면 다시 맹렬한 공세를 펼친다. 지난해 11월 봉쇄를 단행하며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보내기를 희망합니다”라고 말했던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는 크리스마스 직후 ‘바이러스 변이’를 이유로 대며 몇 주만 더 해보자고 겸연쩍게 부탁했다. 백신 접종까지 서둘러 시작했지만 코로나19 확산세는 아직까지도 잡힐 줄을 모른다.
장면 3. 한국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성과는, 적어도 지난해 11월까지는, 놀라웠다. 높은 의료 수준과 행정력, 기술력을 바탕으로 봉쇄 없이도 감염 확산을 몇 차례나 저지해냈다. 제한 업종과 이동 통제를 최소화했기 때문에 경제 피해도 비교적 적었고, 낮은 수준의 협조만으로 일상을 지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울에 접어들자 상황이 달라졌다. ‘K방역’을 너무 믿었던 것일까? 겨울을 대비하지 않은 우리에게 일일 확진자 1000명은 가혹한 시험이었다. 병상은 부족하고 있는 병상도 제대로 못 쓰게 되면서 요양병원, 재활시설, 교정기관 등 취약시설에서 감염 확산과 사망이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3단계 격상을 주문했지만 정부는 주저했다. 애초에 기준을 잘못 만든 탓이 크다. 3단계 조치로 막을 수 없는 감염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단계 격상은 별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대신 정부는 희생을 일부에 몰아주는 정책을 폈다. 고위험 업종 영업 중단을 유지하고 거기에 5인 이상 모임 금지를 더했다. 선제 검사를 늘리고 뒤늦게 병상 및 인력 확보에 나섰다.
그래도 시민들은 협조적이었다. 그 흔한 노마스크 시위 한번 없고 그나마 있는 저항도 “마스크 잘 쓰고 환기 잘 할 테니까 영업하게 (예배드리게) 해주세요” 정도였다. 베를린·런던·브뤼셀·마드리드·더블린·파리·빈·프라하 등 곳곳에서 대규모 반봉쇄(anti-lockdown) 시위가 열린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하지만 저항하지 않는다고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행이 시작되고 꼬박 1년이 지났다. 그나마 전면적인 봉쇄가 없어서 협조 여력이 있지만 그것도 사정이 괜찮은 사람 이야기다. 1년 내 장사를 제대로 못한 고위험 업종 자영업자들, 가장 먼저 거리에 나앉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공교육의 보호 없이 방치되거나 학대받는 아이들, 외롭게 생을 마감하는 요양시설 노인들, 한계 이상으로 업무를 감당하는 방역 공무원과 의료진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잠깐만 버티면 나아질 거라고, 우리 조금만 더 힘내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히려 왜 ‘짧고 굵은 3단계’를 안 해서 고통을 가중시키느냐고 따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남아공과 유럽의 예에서 보듯 짧고 굵은 봉쇄는 없다.
봉쇄로 감염 확산을 저지하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설령 감염 통제에 성공해도 유행이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른다. 백신으로 인한 유행 종식은 적어도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할 것이다. 지역사회 감염 제거가 제1 목표라면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며 오랜 기간 고강도 거리두기를 단행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금 정도의 통제 수준에도 보이는 희생과 보이지 않는 희생이 너무 크다. 거리두기 단계는 언젠가 완화할 수밖에 없고, 이제 어떻게 완화할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첫 번째 과제는 방역의 목표를 ‘확진자 감소’에서 ‘피해 최소화’로 바꾸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감염 확산에 대비하여 우선순위에 따른 자원배분 체계를 명확히 갖출 필요가 있다. 요양병원 등 취약시설 보호를 강화하여 확진자 발생 시 최우선으로 치료 자원이 배분되게 하고, 대신 중증화 가능성이 거의 없는 환자의 경우 퇴원과 퇴소 기준을 완화하여 병상 및 생활치료센터 회전율을 높이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체계가 정비되면 업종 불문 영업 중단을 해제하되 업장에서 위생 수칙을 철저히 지키도록 관리하는 쪽으로 방역의 방식을 조정할 수 있다.
사실 이 제안은 유행 초기부터 논의되었던 완화정책과 맥을 같이한다. 경제가 생명보다 소중하다거나 살릴 수 있는 환자를 포기한다는 게 아니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면 재난 상황에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 또한 어느 정도 일상을 보장해야만 방역정책이 지속 가능하기도 하다. 방역이 사회 기능을 유지하게 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버리면 오히려 사회경제적 혼란을 가중시키고 더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종류의 대응은 이미 견고하게 굳어진 코로나 시대의 ‘상식’과 상충한다. 감염자에 대한 비난이 확진자를 줄이는 무기로 쓰인다. 집에 머무르는 게 시민의식이고, 술 마시고 스키장 가고 교회에 가는 건 개념 없는 행동으로 치부된다. 자유나 인권을 외치는 사람은 철없는 이상주의자 취급을 받는다. 공동체가 파괴되고 연대의 가치가 희미해지지만 확진자 수만 줄일 수 있다면 모든 게 용서된다. 그사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과연 우리는 이 상식을 뒤집어엎고 새로운 균형으로 옮아갈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방심하지 않고 의료체계 붕괴를 막을 수 있을까. 가장 취약한 사람에게 짐을 지우는 대신 모두가 함께 고통을 분담할 수 있을까. 답이 있는지 모를 질문만 끊임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내야 한다. 위기는 계속될 것이고 지금의 대응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앞으로 2주가 고비” 같은 희망 고문에서 벗어나, 우리 앞에 놓인 위험을 정확히 평가하고 그에 맞는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할 때다.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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