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캠이 전송하는 내 '큰바위 얼굴'은 익숙해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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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평소 볼 수 없던 내용의 내부 공문이 전체 행정부서에 접수됐다.
상황이 이러하니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서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학내 구성원 소식이 종종 들려올 때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해를 넘겨 첫 온라인 시무식을 무사히 마쳤고, 각종 동계 프로그램, 직원 교육, 교수법 강좌, 학생 상담 프로그램, 학내 위원회, 보직자 회의 등 온라인으로 못하는 행사가 없을 정도로 '위드(with) 코로나'에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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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평소 볼 수 없던 내용의 내부 공문이 전체 행정부서에 접수됐다. ‘배달음식의 포장 용기와 잔반 처리에 각별히 신경 써달라’는, 담당 부서의 호소 섞인 협조 요청이었다. 남은 음식과 국물의 처리, 일회용 용기 분리배출 방법까지 상세한 안내가 담겼다. 바이러스를 피하려는 캠퍼스 구성원들이 연구실과 사무실, 기숙사 등지에서 음식물 쓰레기와 포장 용기를 다량으로 쏟아내며 민원이 발생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19 3차 대유행 이후 우리 팀도 일주일에 사나흘은 점심을 배달로 해결하고 있다.
바깥출입을 가급적 삼가고 학교 안에서 움츠리기만 하면 안전할까.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유동인구가 줄긴 했지만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연구실과 실험실이 캠퍼스 곳곳에 많다. 그곳에 교수와 학생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기숙사에도 24시간 학생들이 오간다. 구성원 개개인은 물론 개별 건물이나 학과, 실험실 차원의 자율적 방역관리가 중요한 이유다. 이 때문에 우리 대학에서는 직원들이 조를 짜 (마치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 지도교사나 선도부 간부처럼) 일부 건물을 돌아다니며 학내 방역관리 현황을 점검하는, 전에 없던 업무를 해야 했다.
실내에서도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소독제 비치 같은 쉬운 조치를 잘 이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개별 연구실이나 실험실 단위에서는 빈틈이 적지 않았다. 발열 체크와 출입자 명단 작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곳이 많고, 기본적인 방역지침 게시물이 부착되지 않은 곳도 여럿 있었다.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고 홀로 개인 연구실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교수들은 발열 체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사람들의 출입이 빈번한 교내 식당에서도 출입자 관리가 부실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서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학내 구성원 소식이 종종 들려올 때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는 학교 근처 단골 식당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여러 명이 자가격리 조치를 받게 되자 방역 담당 부서가 초비상에 걸린 적도 있었다.
안 하느니만 못한 ‘온라인 학위수여식’
완벽하진 않지만, 지난 1년간 코로나19로 인해 달라진 캠퍼스에 우리는 잘 적응해왔다. 해를 넘겨 첫 온라인 시무식을 무사히 마쳤고, 각종 동계 프로그램, 직원 교육, 교수법 강좌, 학생 상담 프로그램, 학내 위원회, 보직자 회의 등 온라인으로 못하는 행사가 없을 정도로 ‘위드(with) 코로나’에 익숙해졌다. 웹캠이 전송하는 내 얼굴이 화상회의 모니터에 ‘큰바위 얼굴’처럼 나와도 이제는 별로 민망하지 않다. “막상 해보니 할 만하다”라면서 ‘비대면’이 주는 효율과 편리함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분위기다.
그러하더라도, 코로나19 바이러스님, 정 계속 유행하고자 한다면 딱 한 달만이라도 잠시 쉬었다 갑시다. 바라건대 2월 학위수여식 때만이라도 예전처럼 부모님, 형제자매들을 캠퍼스로 초대해 함께 웃으며 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게 봐줍시다. 선후배, 친구들과의 마지막 인사, 캠퍼스의 겨울 풍경을 추억으로 담을 수 있도록 허락해줍시다. 그 덕분에 꽃가게 사장님들 지갑도 오랜만에 넉넉하게 만들어줍시다. 작년에 해보니 ‘온라인 학위수여식’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절대 익숙해지기 싫은 캠퍼스 행사입디다. 그러니 수백, 수천 명은 아니더라도 바이러스님께서 노엽지 않을 만큼만 모여 방역수칙 철저히 지키며 졸업생들 떠나보낼 수 있도록, 부탁 좀 합시다.
이대진 (필명·대학교 교직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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