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톡>"시한부 할머니를 속여라".. 이민 간 가족들이 고향에 모였다

김인구 기자 2021. 2. 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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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실제 거짓말에 근거한(Based on actual lie) 이야기다." 시작부터 재치가 넘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 경우 보통은 "실제 사건에 근거한 이야기(Based on true story)"라는 전제를 붙이는데 이건 아예 대놓고 "거짓말에 근거"했음을 내세운다.

미국 뉴욕의 빌리(아쿼피나) 가족은 중국 창춘(長春)에 사는 할머니가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연락을 받은 후 선의의 거짓말을 모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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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페어웰’

“이 영화는 실제 거짓말에 근거한(Based on actual lie) 이야기다.” 시작부터 재치가 넘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 경우 보통은 “실제 사건에 근거한 이야기(Based on true story)”라는 전제를 붙이는데 이건 아예 대놓고 “거짓말에 근거”했음을 내세운다.

미국 뉴욕의 빌리(아쿼피나) 가족은 중국 창춘(長春)에 사는 할머니가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연락을 받은 후 선의의 거짓말을 모의한다. 행여나 이 사실을 할머니가 알면 병세가 더 나빠질까 봐 진실을 숨기기로 한 것. 그러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미국과 일본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오랜만에 고향에 모이고, 누가 봐도 급조한 듯한 사촌의 결혼식을 진행한다. 할머니는 오랜만의 가족 모임에 집안의 경사까지 겹쳐 매우 기뻐한다. 없던 힘도 절로 날 만큼 밝고 의욕적이다. 분명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인데 새벽 운동의 기합 소리가 쩌렁쩌렁하다.

하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란 손녀 빌리는 할머니를 제외한 가족의 이런 태도가 과연 옳은 일인지 계속 고민한다. 미국이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중국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의사도 암 투병 중인 자신의 할머니에게 정확한 병명을 말해주지 않는단다. 과연 빌리와 그의 가족은 이대로 할머니와의 이별을 맞이할 것인가.

촉망받는 중국계 미국 여성 연출자 룰루 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됐지만 감독의 시선은 거짓말로 빚어지는 하나의 코믹한 해프닝에 머물지 않는다. 그보다는 가족 세대 간의 차이, 이민자의 고민, 서양과 동양 문화의 충돌 등 가족과 삶에 관한 보다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창춘의 낡은 호텔 지배인이 “미국과 중국 중에 어디가 좋나요?”라고 묻자 빌리가 “그냥 달라요”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빌리는 비록 외모는 아시아인이지만 사고와 언어는 철저히 미국적이다. 아마도 이는 아시아계 미국 이민자들이 겪어야 하는 숙명일 터. 이건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다. 한 사람의 정체성이란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쉽게 재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국인 엄마와 중국인 아빠를 둔 미국 태생의 개성파 연기자 아쿼피나가 빌리를 연기한다. 그것도 대부분의 대사를 영어 대신 중국어로 말한다. 거북목 증후군이 있는 것처럼 상체를 앞으로 숙인 구부정한 자세, 앳된 얼굴에 허스키한 보이스, 유머와 여유가 넘치는 영어 실력 등으로 눈에 띄는 아쿼피나는 모처럼 차분하면서도 진지한 모습으로 관객과 만난다. 그는 이 작품으로 지난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코미디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여러모로 이주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화제작 ‘미나리’와 닮았다. 이민자의 정체성을 묵직하면서도 위트 있게 다루고, 대사의 90% 이상을 한국어 혹은 중국어로 채운 점이 그렇다. 공교롭게도 북미 배급사도 A24로 같다. 이주민은 그가 정착하려는 곳에서도, 다시 돌아간 고향에서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에 놓쳐서는 안 되는 기막힌 반전이 하나 있다. 4일 개봉. 전체 관람가.

김인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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