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kids] "정인이는 살 수 있었다"
입양된 지 2백71일 만에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 사건이 전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19년에만 아동학대로 숨진 아이들이 무려 42명에 달한다. 되풀이되는 아동학대 사망의 비극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정치하는엄마들’의 장하나 활동가에게 들어보았다.
# 2020년 6월 충남 천안시에 살던 아홉 살 B 군은 계모에 의해 가로 44cm, 세로 60cm, 폭 24cm의 가방에 갇혀 13시간 이상 감금되고 구타당한 끝에 사망했다. 같은 해 5월 5일 아이는 머리에 약 2.5cm의 찰과상을 입고 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온몸의 멍 자국과 담뱃불 자국을 의심한 병원 측이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병원으로부터 가정폭력이 의심된다는 신고를 받은 경찰은 2주일 후에야 친부와 계모를 조사했고, 아동보호 전문 기관 역시 일주일이 지난 뒤 B 군의 집을 방문했다. 또한 아이가 부모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했고, 부모가 1년 동안 4번 정도 아이를 체벌했다고 시인했다며 분리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2020년 6월 검찰은 계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구형했고, 1심 법원은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 2020년 1월 생후 7개월 무렵 입양됐던 정인이는 장기간 양부모의 학대를 받다가 같은 해 10월 13일 서울 양천구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 도중 숨졌다. 사망 당일 췌장 절단과 복강 내 출혈 등 심각한 복부 손상을 입은 상태였으며 사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이었다. 입양 이후 지난 5월과 6월, 9월에 3차례 어린이집 교사와 소아과 의사 등에 의해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으나 별다른 조치나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올해 1월 13일 양모에게는 살인죄가 적용됐고, 양부에게는 기존대로 아동복지법 위반상의 유기·방임 혐의가 적용돼 첫 재판이 열렸다.
아동학대로 사망한 16개월 정인이 사건에 전 국민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치권 역시 관련 법안을 손보는 등 분주하게 대응하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해 제19대 국회의원이자 '정치하는엄마들’의 활동가, 일곱 살배기 딸을 키우는 장하나(44) 씨는 사건 자체만 보면 늘 있어왔던 아동학대 사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양상이라고 말한다. 이례적인 점이라면 전 국민들의 폭발적인 관심과 분노라고. 안타깝게도 그동안 이번 사건과 흡사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지속되어왔고 관련 보도도 꾸준히 있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지난해 9월 계모에 의해 가방에 갇혀 사망했던 천안 아동 사건과 관련해 '그 아이는 살 수 있었다’는 타이틀로 학대피해아동 보호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재학대 사건이 빈발하는 상황을 비판하며,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요구한 바 있다. 또한 당시 학대피해아동 보호에 책임을 다하지 못한 유관 기관과 책임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정인이가 사망한 10월에는 천안 아동 사건과 판박이인 사건이 또다시 벌어진 상황을 비판하며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모든 엄마가 차별받지 않는 성평등 사회, 모든 아이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복지 사회, 모든 생명이 폭력 없이 공존하는 평화 사회, 미래 세대의 환경권을 옹호하는 생태 사회를 만들기 위해 2017년 설립된 비영리 민간단체로 회원은 2천 명이며 1백여 명의 평범한 엄마들이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장하나 씨는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 입당해 정치를 시작했으며,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과 노동자들을 위한 환경 개선, 동물권 보호 등에 힘썼으며 임기 중에 결혼과 출산을 했다. 이후 일명 '당사자 정치’라고 말하는 정치하는엄마들에서 활동하며 엄마들이 주로 겪는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1월 초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송된 이후 일주일 만에 국회에서 아동학대 관련 법안이 수십 건 쏟아지는 등 마치 여·야당이 경쟁하듯 종합 대책을 내놓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요. 아이의 이름보다는 '양천 입양아동’이라고 부르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와중에 우리는 양천 입양아동에게 큰 빚을 졌어요. 민법 개정안 통과로 친권자의 징계권을 규정한 민법 제915조(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 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가 63년 만에 삭제된 것이지요. 수십 년간 이어져오던 담론이 사라져 다행스럽게도 이제 아이들에게 어떤 형태의 체벌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한 달 만에 내놓는 종합 대책이 과연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요. 또한 법을 개정하면 마치 이전의 법 제도가 미비해서 문제가 됐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이전에도 아동학대와 관련해 응급조치와 보호조치 등의 규정은 있었어요. 실상은 제도보다는 현장 인력(아동보호 전문 기관,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경찰)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등 학대피해아동 보호 시스템이 제 기능을 못 해 벌어진 일들 아닌가요.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지 않고 '2회 신고 시 즉시 분리’라는 엉뚱한 대책이 나왔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에게서 바로 분리되면 아이가 재학대당하거나 사망할 확률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아이를 분리하는 건 정말 섬세하고 전문적인 영역이에요. 케이스마다 다 다르게 다뤄야 하지요. 또한 '분리’가 대책이 되려면 분리 이후의 전 과정을 살펴봐야 합니다. 2019년 아동보호 전문 기관 업무수행 지침에 따르면 피해 아동에 대한 분리 보호 시 '조속한 시일 내에 아동이 안전한 원가정으로 복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어요. 아이를 가정에 복귀시킬 땐 가정환경조사를 하는데 보호자가 피해아동의 양육을 원하는지,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려는 노력 및 해소 여부 등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지요. 이때 현장 인력의 전문적인 판단이 절대적인 과정이 될 수밖에 없어요. 양천 입양아동 역시 만약 분리가 됐더라도 양부모가 "반성하고 양육을 원한다"고 했다면 결국 가정으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안타깝게도 과거 사건을 돌이켜보면 학대아동이 분리 조치됐다가 원래 가정으로 복귀한 뒤 사망한 일들이 부지기수예요. 2019년 1월 바지에 소변을 봤다는 이유로 친모에게 구타당하고 화장실에 장시간 감금돼 사망했던 네 살 아동은 언니, 오빠와 함께 1년간 아동보호 시설에서 생활했지만 가정에 복귀한 지 1년도 안 돼 숨졌어요. 지난해 1월 언어 장애가 있던 아홉 살 아동의 경우 계모가 베란다 찬물 욕조에 장시간 방치해 사망했는데, 2016년 두 차례 아동학대 신고에 의해 33개월 동안 원가정에서 분리 보호가 됐던 케이스지요.
따라서 단순한 분리가 아닌 학대아동이 분리됐다가 가정으로 돌아갔을 때 어떤 관리가 필요한지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봐요. 2회 신고 시 무조건 분리라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처리하면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한 가지인 현장 인력의 전문성은 제고되지 않을 가능성도 크고요. 이번 사건으로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늘어나는 건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하지만 아동학대와 관련된 일은 밤낮이 없잖아요. 책임감을 갖고 철저히 훈련받고 교육받은 전문가가 합당한 평가와 처우 개선을 보장받으며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고 봐요.
당연히 가해자에 대한 엄벌은 꼭 필요합니다. 이번 사건에는 '살인죄 적용’에 대한 목소리가 크다 보니 그동안 아동학대에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았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하지만 천안 아동 사건이나 인천 목검 사건에서도 가해자였던 계모와 계부에게 살인죄가 적용됐었고 다른 사건에서도 살인죄 적용이 되어왔어요. 가해자 엄벌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부분이지만 이것이 재발 방지 대책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대중의 이목이 가해자 처벌에만 집중되다 보면 고장 난 아동보호 체계의 문제는 감춰질 가능성이 크고요. 정치하는엄마들은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찾기 위해 '국제아동인권센터’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 등 아동학대 문제에 매진해온 공익 활동가들에게 끊임없이 물어봤어요. 그러다 당황스럽게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아동학대를 수없이 다뤄본 전문가들조차 뭐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됐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더라고요.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과연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을 막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네요.
아동학대, 재학대를 막는 지름길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뼛 속 깊이 곪아 있는 상처를 겉만 봉합해 붕대로 감싼다고 치료되진 않잖아요. 현재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 어디서부터 고쳐야 하는지,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등을 연구해야 하는 단계라고 보고 있어요. 저희는 영국의 '클림비 보고서’에서 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2000년 2월 영국에서 아홉 살 빅토리아 클림비가 친척의 지속적인 학대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당시 아이 몸에는 담뱃불로 지진 자국 등 1백28개의 상흔이 있었고 영국 사회는 크게 분노했지요. 영국 정부와 의회는 독립적인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2년간 3백80만 파운드(약 56억원)를 투입해 4백 페이지 분량의 클림비 보고서를 작성해요. 2013년 1월 발간된 보고서에는 2백70여 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클림비가 어떻게 살고 죽었는지 상세히 정리되어 있고, 재발 방지를 위한 1백8개의 정책 제언이 담겼습니다. 이후 재무부 장관이 '모든 아동은 중요하다(Every Child Matters)’라는 녹서(綠書)를 의회에 제출했고, 2004년 영국 의회는 녹서를 실현하기 위해 아동법을 전부 개정해요. 영국 정부가 왜 이토록 오랜 시간과 노력, 돈을 들여 클림비 보고서를 작성했을까요. 아마 영국 정부도 답을 몰랐고, 대증적인 조치로는 학대받은 아이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클림비 보고서처럼 정확한 문제 진단부터 하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은 천안 아동 사건 이후 김상희 국회 부의장실에 요청해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법을 제정하려고 추진 중이었어요. 법안이 발의돼도 통과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이번 양천 입양아동 사건이 다시 대두되는 상황이라 이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 특별법이라도 먼저 제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동학대 사망을 막는 일에 평범한 엄마들이 어떻게 힘을 보탤 수 있을까요.
아이를 키우는 데는 돈과 시간, 사랑, 신뢰 관계가 필요해요. 친권자에게 보호받지 못하고 학대당하는 아이들의 사망을 막고 안전하게 성장시키려면 기본적으로 돈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들어갑니다. 아동학대와 관련된 문제에 내 아이를 키우는 일처럼 오랜 시간을 갖고 일상적인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해요. 이런 관심들을 촉구하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에서는 최근 10년간 아동학대 사망 사건 판결문을 모아 정리하고 있어요. 활동가들이 모두 평범한 엄마들이라 바쁜 시간을 쪼개 5명이 2년씩 나눠 작업하고 있지요. 온라인에 아카이빙해서 일반 시민들이 볼 수 있고, 추모 공간처럼 아이들을 기억할 수 있게 하려고 계획 중이에요. 10년간의 판결문을 보며 다시 한 번 깨달은 건 아동학대 사망 예방과 관련해 지름길은 없다는 거였어요. 가해자 처벌, 즉시 분리, 시설 보호 등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조치예요. 궁극적으로는 학대받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돈과 시간, 신뢰를 들여 제대로 된 공적 돌봄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진 홍태식 동아DB
사진제공 정치하는엄마들
글 강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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