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임대차法이 쏘아올린 '전세대란'의 역설
임대차법과 민특법의 충돌로 시장 혼선 가중
(시사저널=김종일 기자)
"월세를 20만원 올려주세요." 서울 서대문구에 살고 있는 김하나씨(가명·34)는 최근 집 재계약을 앞두고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김씨는 보증금 1억5000만원에 월세 10만원이라는 조건에 살고 있었다. 언론과 공인중개사를 통해 법이 임대료 인상 상한선을 5%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법대로라면 월세는 2만원 남짓만 올릴 수 있다. 집주인에게 "착오가 있으신 것 같다"고 연락했더니 대뜸 "다른 법이 있다. 그 법은 해석을 달리한다"고 했다.
당황한 김씨는 공인중개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했지만 오히려 더 당황하게 됐다. 서로 다른 법이 해석을 달리하며 충돌하고 있어 문제를 해결하려면 임대인과 임차인이 소송을 벌여야 한다고 했다. 복잡하게 소송을 하느니 차라리 협상을 잘해 보라는 말이 뒤따랐다. 결국 김씨는 계약갱신권을 쓰지 않는 대신 월세를 10만원 올리는 선에서 재계약을 매듭지었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로 위층에 사는 집주인과 얼굴 붉히면서 사는 게 더 스트레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씨는 "대체 무슨 법이 이런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서로 다른 법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말 전세시장을 안정시키고 임차인을 보호하겠다며 주택임대차보호법(임대차법)을 개정했다. 임대차법 개정으로 세입자는 2년 거주한 뒤 추가로 2년의 계약 연장을 요구할 수 있고, 집주인은 임대료를 직전 계약액의 5% 이상 올릴 수 없다. 이른바 '계약갱신권'과 '5%룰'이다. 그런데 민간임대주택특별법(민특법)의 '최초 임대료'라는 개념은 임대차법의 5%룰과 정면충돌한다. 쉽게 말해 어느 상황에서는 5%룰이 깨지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당연히 혼선이 생겼다. 하지만 정부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모두가 5%룰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런데 최근 법원이 임대차법보다 민특법이 우선한다며 5%룰이 '무적의 황금열쇠'가 아닐 수 있다는 판단을 내놨다. 현재 정부의 설명과는 상반된 것이라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동요하고 있다. 정부는 사법부의 정식 판결이 아닌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른 조정 결정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하지만, 시장에는 혼란이 생길 수 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전국에 민간 임대사업자는 53만 명에 달한다. 이들이 등록한 민간 임대주택은 160만 가구가 넘는다. 임대사업자들을 중심으로 비슷한 소송이 줄을 이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160만 가구에서 1%만 이런 분쟁이 생겨도 임차인 1만 명이 예상하지 못했던 큰 고통을 겪을 수 있다.
정부·여당이 추진한 새 임대차법이 시행된 지 6개월이 지났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7.32% 올라 2011년(15.38%) 이후 9년 만에 최대 폭으로 상승했다. 전셋값은 새 임대차법 통과 시점인 7월에 급등(0.51%)하더니 이후 더 가파르게 올라 12월에는 1.02%까지 뛰었다. 전셋값 상승세는 새해 들어서도 여전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의식주 중에서도 집 문제만큼 개인의 일상에 강한 파급력을 미치는 것은 없다. 시사저널이 톺아봤다.
법원이 5%룰을 뒤집은 이유
2년 전 5억원이었던 전세 시세가 8억원이 됐다면 재계약은 얼마에 해야 할까. 일반적인 경우라면 5%룰에 따라 5억2500만원이 될 것이다. 특히 대다수 임차인은 지금도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무슨 이유일까.
서울남부지법은 최근 전세보증금을 기존 5억원에서 8억원으로 올리겠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한 주택임대사업자 A씨의 손을 들어준 조정 결정을 내렸다. A씨는 2018년 12월 보증금 5억원에 세입자를 들였고, 이듬해 1월 임대사업자로 등록했다. A씨는 지난해 12월 재계약을 하게 되자 주변 시세에 맞춰 보증금을 8억원으로 3억원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민특법에 따르면 2019년 10월23일 이전 임대사업자로 등록했을 경우 기존 계약이 있더라도 임대사업자 등록 뒤 맺는 첫 번째 계약이 이 법상 '최초 계약'이 된다. 최초 계약이니만큼 임대료를 어느 법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이를 '최초 임대료'라고 부른다. 이후 보증금 인상의 기준점이 된다.
확정 판결 아니지만 줄소송 이어질 수도
세입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5%룰을 우선시하게 된다. 그러니 기존 보증금 5억원의 5%인 2500원만 올려줄 수 있다고 맞섰다. 국토교통부도 앞서 새 임대차법 해설서를 배포하면서 "민특법상 임차인이더라도 계약갱신청구권이 배제되지 않는다"며 임대료 5% 상한이 적용된다고 안내했다. 국토부가 세입자 주장을 뒷받침한 것이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정부와 달랐다. 민특법이 일반법보다 우선 적용되는 특별법이니만큼 이를 우선해야 한다는 해석을 내렸다. 법원이 임대인 주장을 온전히 받아들인 사례는 처음이다. 법원이 임대사업자 손을 받아들인 만큼 비슷한 소송이 전국 각지에서 줄을 이을 수도 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최초 임대료를 근거로 임대료를 시세대로 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물론 아직 섣부른 결론을 내긴 이르다. 이번 사법부의 판단은 '조정'이지 '판결'의 결과물이 아니다. 민사조정은 법원에 설치된 조정위원회가 판결보다 간단한 절차에 따라 분쟁 당사자들로부터 각자의 주장을 듣고 타협의 지점을 찾아 조정하는 일을 뜻한다. 즉 법원의 판결과는 무게감과 권위가 다르다. 정부도 "현시점에서 법원이 정부의 유권해석을 뒤집었다거나 배치되는 판단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특히 정부는 계약갱신권을 사용하면 5%룰은 지켜진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이는 뒤집어서 말하면 주거 안정을 위해 계약 갱신이 우선인 세입자 입장에선 5%룰은 무용지물이 된다는 뜻이 된다. 2년 후 전세 재계약을 담보하려면 5%가 넘는 전셋값 인상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시장에선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임대료 증액 및 계약 갱신 관련 조정 건수는 155건으로 2019년(48건)의 3.2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임대차법 관련 상담 건수는 지난해 1만1589건으로 전년(4696건)의 2배를 넘어섰다.
새 임대차법이 시행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전세시장은 정부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전셋값 상승세는 계속되고 있다. 치솟된 전셋값에 "벼락거지가 됐다"는 자조가 나올 정도다. 정부는 전·월세 통합 갱신율이 올라가고 있다고 반박하지만 문제는 2년 후다. 이후 세입자는 4년 치 전셋값 인상을 감당해야 한다. 시장의 역습이 시작되는 것이다. 정책 실패에 따른 부작용은 세입자들에게 전가된다. 현재까지는 정부·여당의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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