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도넛에 따뜻한 뱅쇼 환상 콤비..코로나, 강추위 안녕!!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2021. 2. 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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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맛 이야기']

춥다. 겨울이니 추운 게 당연하지만 주고받는 안부에 섞여 있는 한숨과 걱정을 들으니 괜히 더 춥다. 요즘 다시 방영하는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일용엄니’는 손녀가 사온 도넛을 먹으며 “야야, 구멍이 뻥 뚫려 속이 텅 빈 게 꼭 내 팔자 같다”며 푸념한다. 그러고는 “그래도 참, 달고 맛나다”라며 한입 두입 먹는다.

[GettyImages]
이때 일용엄니가 맛본 튀김 빵의 맛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도나스'라는 단어를 써야 할 것 같다. 바른 표기법은 '도넛'이지만 말이 주는 맛 차이가 무척 크다. 도나스는 눈앞에서 갓 튀겨 설탕 묻혀 먹는 따끈한 시장의 맛, 도넛은 한 손에 커피를 들고 한입 달콤하게 즐기는 도시적인 맛을 떠올리게 만든다. 요즘 레트로 감성을 타고 도시 곳곳으로 '도나스'가 돌아왔다. 

일전에 꽈배기를 배달해 먹은 적이 있다. 유난스럽게 무슨 꽈배기까지 배달하느냐며 친구에게 던진 핀잔이 내 입을 채 떠나기도 전, 감탄이 터져 나왔다. 혹시 현관문 뒤에서 누가 꽈배기를 튀기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따끈하고 폭신한 맛이 놀라웠다. 

튀김은 운동화도 맛있게 만드는 조리법이라는 농담이 있다. 달군 기름에 튀김 재료를 넣으면 수분이 빠지면서 자글자글 기포가 튀어 오른다. 재료의 조직 속으로 뜨거운 공기가 침투하며 튀김이 부풀어 오른다. 먹음직스러운 색으로 노르스름하게 익어가며 기름이 배어든다. 수분은 빠지지만 스며든 기름 덕에 촉촉해진다. 

쌀가루 혹은 밀가루 반죽으로 튀겨 만든 빵은 세계 여기저기에서 오랫동안 먹어왔다. 우리나라도 웬만한 전통시장과 한때 번성했던 도시 중심가 상점 거리에 가면 유명한 도넛 가게가 하나씩은 다 있다. 노점일지라도 짧게는 20~30년, 길게는 60~70년의 세월을 살아낸 곳이 보인다. 행여 주인은 바뀌었을지언정, 기름 솥은 쉬지 않고 끓어온 장소들이다. 

‘도나스'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게 쫄깃한 빵 안에 팥소가 들어 있는 찹쌀도나스다. 보통 큰 달걀처럼 동그랗고 매끈한 모양새지만, 경기 수원 '추억의 도너츠' 같은 집은 이 도넛을 일부러 못난이처럼 쭈글쭈글하게 만들어 오히려 인기를 끌기도 한다.

구멍 난 가슴 채워주는 도넛의 위력

‘도나스'계 2인자는 타래처럼 꼬아놓은 꽈배기다. 꽈배기는 반죽에 따라 쫀득한 것, 포슬포슬한 것,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인 것, 겉 면에 결이 있는 것 등으로 종류가 다양하다. 밀가루와 쌀가루 반죽 비율, 발효 정도 등에 따라 이런 질감 차이가 생긴다. 

‘도나스' 가게에 가면 으레 맛있는 속재료에 빵가루를 포슬포슬 붙여 튀긴 '고로케(크로켓)'도 맛볼 수 있다. '고로케' 속에는 마요네즈와 케첩으로 무친 '양배추 사라다(샐러드)'를 비롯해 '카레 사라다', 잡채 등을 넣는다. 폭신한 '도나스' 사이에 오이, 양배추, 당근 등을 넣고 마요네즈와 케첩으로 맛을 더해 샌드위치처럼 팔기도 한다. 

서울 제기동, 오장동, 불광동, 영천동 등에 있는 역사 깊은 시장 골목에 가면 실력파가 만든 맛좋은 도넛을 만날 수 있다. 인천 신포시장에선 큼직하기로 유명한 꽈배기를 파는 '신포꽈배기'가 가볼 만하다. 부산 자갈치시장과 진시장에도 다양한 종류의 도넛을 푸짐하게 늘어놓고 파는 가게가 있다. 강원 속초에서는 '코끼리분식'에서 파는 도넛이 유명하다. 강릉의 '싸전' '바로방' 등은 고로케를 먹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 곳이다.

전국 각지 가볼 만한 '도나스' 가게들

올드페리도넛 속에는 각종 크림이 터질 듯 가득 들어 있다. [올드페리도넛 공식 인스타그램]
70년 역사를 가진 경북 포항 '시민제과'를 비롯해 전국 각지의 유서 깊은 제과점에서도 제법 맛있는 '도나스'를 판다. 대전 '성심당', 군산 '이성당', 춘천 '대원당', 광주 '궁전제과', 서울 장충동 '태극당' 등의 화려한 진열대에는 늘 '도나스'와 '고로케'가 당당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음식평론가 브리야 사바랭은 "새로운 요리의 발견은 새로운 별의 발견보다도 인류 행복에 더 많이 기여한다"고 했다. 나는 튀김빵 즉, 도넛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맛뿐 아니라 멋으로도 눈길을 끄는 도넛이 많아졌다. 50년 넘는 역사를 지닌 미국 도넛 브랜드 '랜디스도넛'은 2019년 8월 제주도에 문을 열자마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지난해 서울 연남동에 생긴 2호점 역시 줄 서는 맛집이다. 두툼한 도넛 위에 초콜릿 과자가 가득 붙어 있는 '오레오 오즈'는 폭신하고 바삭바삭한 맛이 일품이다. 연두색 초콜릿이 가득한 '민트 초콜릿'은 화사하고 달고 향기롭다. 색동 초콜릿 옷을 입은 '앰앤엠', 마시멜로를 쌓아놓은 '스모어'의 거침없는 단맛에서는 미국 본토 도넛 풍미가 진하게 묻어난다. 

미국 스타일 '육덕진' 도넛이 먹고 싶다면 한남동 '올드페리도넛'도 좋다. 커다란 도넛마다 과일이나 초콜릿 등으로 만든 크림이 터질 듯 가득 들어 있다. 올드페리도넛 1층에는 '솔티밥'이라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여기서는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 한 스쿱을 도넛에 끼워주는 '도넛샌드'가 맛있다. 개인적으로 향긋한 피스타치오나 라벤더를 추천한다. 

이태원 '아이도넛케어'는 도넛 반죽의 가벼움이 남다르다. 도넛 반죽에 유난히 공기층이 많아 두툼해도 말랑하고 푹신한데 그 속에 맛좋은 크림을 채워 넣었다. 초록향이 나는 쑥크림, 까무잡잡 고소한 흑임자크림 등 독특한 메뉴가 여럿 있다. 아이도넛케어의 핑크색 도넛 박스에는 'donut worry, be happy'라는 재치 있는 문구가 적혀 있어 선물하기 좋다. 

‘스마일’ 스티커가 보는 이를 웃음 짓게 만드는 ‘카페 노티드’의 도넛들. [카페 노티드 공식 인스타그램]
웃는 얼굴 '스마일' 스티커로 첫인사를 보내는 '카페 노티드'의 '우유 생크림 도넛'과 '누텔라 도넛' 역시 소담하게 담아 누군가에게 슬며시 건네기 좋다. 

서울 연남동 '플러피도넛'은 맛 종류가 9가지뿐인데 고르기 힘들 정도로 개성이 제각각이다. 대표 메뉴는 진분홍 글레이즈를 매끈하게 입힌 '라즈베리'. 묵직하며 조밀한 도넛과 부서지며 녹아내리는 달고 향긋한 핑크 초콜릿 글레이즈를 우적우적 함께 씹는 맛이 참 좋다. 메이플시럽 글레이즈에 짭짤한 베이컨을 구워 올린 '메이플 베이컨'은 '단짠'에 쫄깃함, 바삭함까지 뒤섞여 있어 빙긋빙긋 웃음이 나오는 맛이다. 묵직한 단맛 대신 구름처럼 상큼한 크림을 얹은 도넛 '레몬 머랭'도 있다. 

화려함과 재미에 조금 시큰둥해지는 날이면 '크리스피 크림'의 오리지널이나, '도너츠'라는 이름을 버렸지만 여전히 도넛 가게인 '던킨'의 '스트로베리필드' '페이머스 글레이즈드' 같이 비교적 담백한 맛으로 잠깐 쉬어보면 좋겠다.

달콤하게 화사하게 말랑하게, 화과자

맛과 모양이 얄미울 만큼 섬세하고 아름다운 화과자(위). 영화 ‘일일시호일’에 나오는 화과자 ‘움틈’. 대지를 뚫고 솟아나는 새싹을 연상시키는 모양이다(아래). [GettyImages, 영화사 진진 제공]
눈과 입을 동시에 사로잡는 디저트로는 화과자도 빼놓을 수 없다. 정통 일본식 화과자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얄미울 만큼 섬세하고 아름답다. 화과자의 푸른색은 마치 파란 하늘을 한 조각 잘라 앙금에 붙인 듯 푸르고, 분홍색은 생생한 꽃잎을 물에 녹여 만든 듯 분홍이다. 대체로 우리가 눈으로 보는 진짜 자연색보다 과자 색이 더 어여쁘다. 게다가 화과자를 보고 있으면 마치 향이 나는 듯하고, 만지지 않아도 따뜻함과 시원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에는 일본 사람들이 입춘 즈음에 먹는 화과자 '움틈'이 등장한다. 대지를 뚫고 돋아나는 새싹을 표현한 이 과자는 툭 터진 팥색 반죽 사이로 초록빛 앙금이 엿보이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나눠 먹는 만주 위에는 '기쁜 소식, 희망'이라는 꽃말을 가진 붓꽃 모양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기도 한다. 화과자는 그 하나하나의 의미를 모르더라도 보는 사람 마음을 금세 화사하게, 말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화과자의 가장 큰 특징은 절묘한 계절 표현이다. 봄에는 벚꽃을 표현하는 과자가 많이 만들어진다. 여름에는 맛도 모양도 시원한 다양한 젤리가 인기를 끌고, 가을에는 밤과 고구마를 사용해 단풍 모양을 내거나 그리움 같은 마음을 담아 만든 과자가 유행한다. 겨울에는 유자나 팥을 재료로 즐겨 쓰며 건강 등을 기원하는 모양을 빚곤 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화과자 재료는 의외로 단조롭다. 물, 한천가루, 단맛을 내는 재료와 식용색소 등이다. 이 단순한 재료로 한 편의 시(詩)처럼 아름다운 과자를 빚어내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추운 겨울 버티게 해줄 따뜻한 위로

와인에 각종 과일을 넣고 끓여 만드는 ‘뱅쇼’는 겨울날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마시기 좋다. [GettyImages]
마지막으로 힘겨운 나날에 따뜻한 위로가 될 음료 한 가지를 소개한다. 추운 겨울에 지친 몸과 마음을 녹이기 좋고, 달콤한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뱅쇼(vin chaud)'다. 와인에 과일과 계피 등을 넣고 끓여 만드는 뱅쇼는 독일어로 글루바인(gluwein), 영어로 멀드 와인(mulled wine)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어로는 비노 칼도(vino caldo)인데, 빈 브륄레(vin brule)라고도 한다. 

뱅쇼를 만들 때 와인은 굳이 좋은 걸 쓸 필요가 없다. 먹다 남은 것 또는 입에 안 맞는 것으로 해도 충분하다. 과일 종류도 제한이 없지만 귤, 오렌지, 천혜향, 한라봉 같은 감귤류는 꼭 들어가야 맛있다. 사과와 배도 한쪽씩 넣으면 좋고, 포도나 감도 괜찮다. 과일이 넉넉하지 않을 때는 사과주스, 오렌지주스 등을 조금 부어도 된다. 이외에 계피 또는 시나몬스틱이 있어야 한다. 정향, 팔각 등을 추가하면 풍미가 더 좋아진다. 

준비한 재료를 모두 냄비에 넣고 센 불에서 한소끔 끓인다. 와인이 끓어오르면 불을 줄이고 20분 정도 뭉근하게 우린다. 설탕을 넣으려면 마지막에 넣고 녹으면 바로 불을 끈다. 따끈할 때 다 마시지 못한 뱅쇼는 완전히 식힌 뒤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실에 보관한다. 뱅쇼는 차게 마셔도 나쁘지 않지만 따듯하게 마셔야 제맛이 난다. 

뱅쇼는 와인으로 만들지만 술이라고 하긴 어렵다. 끓이는 과정에서 알코올이 거의 다 날아가서다. 이 점이 아쉬운 사람에겐 헝가리 와인 '토카이(tokaj aszu)'를 추천한다. 토카이는 귀부균에 감염된 포도로 만든다. 귀부균은 포도에 기생하는 일종의 곰팡이로, 포도의 단맛을 높이고 향도 한층 진하게 만들어준다. 프랑스 와인 중에서는 '소테른'이 귀부균에 감염된 포도로 만든 것이다. 소테른의 달콤함이 우아한 실크처럼 너울거린다면, 토카이는 좀 더 강건하고 직관적이다. 소테른은 여름에, 토카이는 지금 같은 겨울에 잘 어울린다.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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