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탈피위한 정부 지상과제 3가지

박세준 기자 2021. 2. 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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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일자리, 결혼..결국 경제적 부담이 문제

● 일자리, 주거 문제부터 해결해야 결혼 늘어
● 노인과 청년 일자리 모두 늘어나는 정책 펴야
● 정부지원책으로 돈 빌려도 갈 집 없어
● 결혼해도 집 있어야 아이 낳는다

서울 시내의 한 신생아실이 비어 있는 모습. [뉴스1]
"부럽지 않냐?" 직장인 양모(32) 씨가 최근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주변 친구들 대부분이 결혼했고 몇몇은 아이까지 낳았다. 주변에서는 그에게 결혼을 종용한다. 하지만 양씨는 아직 결혼과 아이가 두렵다. 그는 "결혼과 출산에 드는 비용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행복하려고 결혼하는 것일 텐데 지금 내 벌이로는 행복한 결혼생활이 도통 그려지질 않는다"고 말했다. 

양씨 같은 사람이 많아서일까. 2020년은 한국 인구 감소의 원년이 됐다. 통계청은 당초 2021년이 인구 감소 원년일 것이라 예측했으나 난관은 한 해 일찍 찾아왔다. 행정안전부가 1월 3일 발표한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의 인구는 5182만9023명으로 2019년에 비해 2만여 명 줄었다. 

인구 감소가 세계적 추세라고는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심각하다. 단순히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인구가 늙어가고 있다. 통계청의 2019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775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5.5%를 차지했다. 2018년과 비교해 36만 명 늘었다. 반면 노령인구를 제외한 생산연령인구(15~64세), 유소년인구(0~14세)는 감소세를 보였다. 생산연령인구는 3594만 명으로 전년 대비 16만 명 줄었다. 유소년인구는 631만 명. 전년 대비 17만 명 줄었다. 

저출산·고령화는 재정 부담을 가중시킨다. 세금을 낼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추계에 따르면 인구 감소로 2065년까지 매년 2조8000억 원의 재정지출이 발생한다. 물론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작년만 해도 약 40조 원을 지출해 저출산 문제 해결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정책 방향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출산 문제와는 무관한 정책을 내놓거나,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빨리 고쳐야 할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금이라도 인구문제 해결에 나서려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까?

일자리·집 문제 해결해야 결혼이 는다

인구 고령화를 막으려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2018년 합계출산율은 0.98명을 기록했다. 합계출산율이란 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아이 수의 평균치다. 이 수치는 2019년 0.92명, 2020년 0.83명으로 감소했다. 코로나19로 결혼 및 출산이 위축된 것을 감안하면 2021년에는 0.7명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일단 부부가 많아야 한다. 하지만 혼인율은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2019년 조혼인율(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은 4.7건으로 전년대비 0.3건 줄었다.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혼 출산을 꺼리는 사회구조상 혼인율 감소는 미혼 인구의 출산율 감소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젊은 세대가 마냥 결혼하기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미혼 남녀 중 과반은 결혼에 긍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 2020년 5월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알바 앱 '알바콜'이 성인 미혼남녀 568명을 대상으로 결혼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69.7%가 '앞으로 결혼할 계획'이라 밝혔다. 

경제적 부담은 계획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게 막았다. 2020년 4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저출산·고령사회 대응 국민 인식 및 욕구 심층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팀은 결혼 의사가 있는 19~47세 미혼 인구 947명을 설문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31%가 '주거 불안정'을 이유로 결혼을 연기하거나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일자리가 불안정해 결혼을 못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도 27.6%에 달했다. 즉 혼인적령기 인구의 일자리와 주거 문제가 해결되면 조혼인율을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노인 일자리 늘고 청년 일자리는 줄었다

그렇지만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청년을 외면하고 있다. 전체 숫자만 보면 고용률 개선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2019년 취업자 수는 2712만3000여명. 전년 대비 30만1000명 늘어난 수치다. 연간 고용률은 60.9%로 2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문제는 60대 이상에서만 일자리가 늘었다는 점이다. 같은 기간 60대 이상 취업자 수는 37만7000명 늘었다. 전체 취업자 수 증가에 비해 7만800명 많다. 반면 20~40대의 성적은 참담했다. 20대는 전년 대비 취업자가 4만8000명 늘었으나, 30대와 40대는 각각 취업자가 5만3000명, 16만2000명씩 감소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취업난도 고령층은 비껴갔다. 2020년 취업자 수는 2019년 대비 21만8000명 줄었다. 60대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에서 취업자가 감소했다. 20와 30대는 각각 취업자가 14만6000명, 16만5000명 감소했다. 60대는 취업자가 37만5000명 늘었다. 이는 정부가 2020년 한 해 1조 원의 예산을 들여 74만 개 규모의 노인 일자리를 공급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울 관악구의 김모(31) 씨도 직업을 잃었다. 항공사에 다녔지만 일자리를 잃고 식당이나 카페 서빙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했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자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워졌다. 최근에는 음식 배달일을 하고 있다. 그는 "취업 준비를 하며 자전거로 음식 배달을 하고 있다. 처음 취업할 때도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지만 지금이 그때보다 취업이 어려운 것 같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고를 열어 단기 일자리를 만드는 데 집중한 것이 패착이라 봤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세금을 투입해 단기 일자리를 만드는 방식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지속 가능한 일자리는 민간에서 나온다. 정부는 근로 구조 개혁이나 규제 완화로 구인 시장이 재차 활기를 띠게 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정년 연장 카드 빼 들었지만

정부는 노령인구 고용정책을 포기할 수 없다. 이미 고령화가 심각한 수준이라 출산율 증가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다. 2019년 통계청의 인구추계에 따르면 2067년에는 생산인구 100명당 102.4명의 노령인구를 부양해야 한다. 

실제 노령인구 부양 부담은 통계청 추계를 크게 상회할 가능성이 높다. 통계청 추계는 2021년 출산율이 0.84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한 뒤 2028년까지 회복세에 접어들어 1.11명으로 높아질 것을 전제로 한다. 지금처럼 합계출산율이 계속 1.0명 이하에 머문다면 노령인구 부양 부담은 추계보다 더 심각해진다. 

정부는 현재 만 60세인 법정 근로자 정년을 연장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막기 어렵다면 정년을 늘려 노령인구 부양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정부의 정년 연장 대책의 명칭은 '계속고용제도'다. 기업에 고용의무를 주고 △재고용(퇴직 뒤 재계약) △정년 연장(65세로 정년 연장) △정년 폐지(정년 없이 계속 고용) 중 하나를 고르게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정년 연장은 외려 청년 고용을 감소시킬 위험이 있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정년을 한 번에 큰 폭으로 증가시키면 민간 기업에서는 부담을 줄이려 신규 채용을 줄여 청년 고용을 감소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정년 연장 대책이 자리를 잡으려면 소득세, 법인세 감면 등 정부가 기업의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에만 (정년 연장의) 고용 부담을 넘겨서는 안 된다. 기업이 고령 근로자를 고용할 만한 유인책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돈 빌려도 들어갈 수 있는 집 없어

1월 12일 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 앞에서 행인이 매물 가격을 들여다보고 있다. [동아DB]
정부의 신혼부부 대상 주거지원책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의 집값 상승으로 주거비가 대폭 올랐다. 지원책만으로는 서울에서 전셋집도 구하기 어렵다.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주거지원책은 전세자금 대출(버팀목 대출)과, 주택구매자금 대출(디딤돌 대출) 두 가지다. 버팀목 대출 조건은 부부합산소득 연 6000만 원 이하, 디딤돌 조건은 부부합산소득 7000만 원 이하다. 버팀목 대출은 최대 2억 원을 금리 1.2~2%에 빌려준다. 디딤돌 대출은 최대 2억2000만 원을 빌려주고 금리는 1.7~2.75% 정도다. 

2021년 1월 기준 제 1금융권 주택담보대출금리가 연 2~4%인 것을 감안하면 금리가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대출 조건으로 설정된 소득이 너무 낮아 대출을 감당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고 돈을 빌린다고 해도 주거비가 너무 올라 들어갈 집을 찾기 어렵다. 

연 소득이 6000만 원인 맞벌이 부부가 2억 원의 전세자금 대출을 금리 2% 조건으로 대출받는다고 가정하자. 네이버 임금계산기로 연소득 6000만 원을 월 소득으로 환산하면 월 418만2790원. 여기서 2020년 통계청 집계 기준 도시근로자 2인 가구 평균 생활비인 317만9000원과 월 대출이자 33만 원을 빼면 남는 돈은 67만3790원. 이 돈을 전부 저금해서 원금을 갚으려면 20년이 조금 넘게 걸린다. 

2억 원을 빌려도 들어갈 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원룸 가격만 해도 2억 원에 육박한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2020년 9월 기준 서울의 원룸(전용면적 30㎡ 이하 다가구·다세대·연립주택) 평균 전세보증금은 1억5948만 원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경기도 외곽 지역이라면 모를까 서울 및 주요 수도권 지역에서는 2억 원으로는 방 2개짜리 빌라도 구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결혼해도 집 있어야 출산 결심한다

직장인 유모(28·여) 씨는 1월 초 결혼식을 올렸다. 그의 신혼집은 서울 영등포구의 한 오피스텔. 침실 하나와 거실로 이뤄진 10평도 채 안 되는 공간이다. 유씨는 "1억8000만 원 대출을 받고 남편과 함께 모은 돈 1억 원을 더해 집을 찾았다. 아파트는 언감생심 찾아보지도 못하고 빌라나 오피스텔로 눈을 돌렸다. 아파트는 포기했으니 신축 빌라나 오피스텔로 가고 싶어 매물을 찾았더니 이곳뿐이었다. 앞으로 3~4년간 바짝 돈을 모아 방 2개짜리 집으로 옮기는 것이 목표다. 방이 2개는 돼야 출산을 고려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결혼해 전셋집을 구한다 해도 출산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2020년 12월 10일 통계청이 발표한 '행정자료를 활용한 2019년 신혼부부 통계 결과'에 따르면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집일수록 아이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2019년 11월 1일을 기준으로 5년 이내 혼인신고를 한 부부는 총 132만2000쌍. 이 중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신혼부부의 비율은 42.9%(약 56만7000쌍)였다. 집을 소유한 부부의 평균 출생아 수는 0.75명. 주택을 소유하지 않은 경우는 0.65명이다. 

유진성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 문제는 저출산 해결에 매우 중요하다. 거주 유형이 출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보니 자가 거주자의 첫째 자녀 출산 가능성이 전·월세 거주자에 비해 최고 19% 높았다"고 분석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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