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부끄러운 모습, 우리 아이들이 다 봅니다
유치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참으로 티 없이 맑고 밝습니다. 자신들의 생각을 솔직하고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4~5세 학급의 아이들과 자유놀이 시간에 만났습니다. 오늘의 화제는 '병든 지구' 였습니다. 처음 이야기는 하나의 그림에서 출발했습니다. 언어놀이방에서 책을 읽고 있던 한 아이가 갑자기 책을 덮으며 "으악~!!" 소리를 질렀습니다.
반 아이들이 일제히 괴성의 진원지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여자아이는 책을 덮은 채 자신을 빙 에워싼 친구들을 향해 "징그러워!!"라고 나지막하게 말했습니다.
◇ 지구가 고통스럽게 숨 쉴 때, 아이들도 함께 울었다
선생님도 놀라 황급히 그 여자아이에게 다가가 "왜 그래? 어디 아프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가락으로 자신이 보던 책을 가리켰습니다. 교사는 아이가 가리키는 책을 들어 펼쳐보았습니다.
세 번째 장 정도 넘겼을 때 다른 아이들도 일제히 "으악~!"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책을 들고 있던 선생님도 놀란 표정이었으나, 잠시 마지막 장까지 펼쳐 보여주면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우리 친구들은 알고 있나요?"
아이들은 답을 쏟아 냈습니다.
"지구가 아파요!"
"물이 다 썩었어요!"
"물고기들이 오염된 물을 마셨어요!"
"바다도 병들었어요."
아이들의 답은 지구가 병들고 물이 오염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사는 다시 질문 했습니다.
"모두 지구가 병들었다고 생각하는구나~. 왜 그렇게 생각하니?"
"물고기가 다 죽었잖아요."
"물고기가 썩어서 또 물도 오염되었어요."
"물고기들이 오염된 물을 마셨으니까 죽은 거예요."
아이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습니다.
"근데 나는 바다거북의 콧구멍에 빨대가 꽂혀 있는 것 보고 슬퍼서 울었어요."
"나도 그것 봤어. 엄마가 보여줬는데, 바다거북이 콧구멍에 꽂혀 있는 빨대를 빼니까 피를 엄청 많이 흘렸어. 계속 계속해서 흘러서 안 멈췄어, 피가."
우연히 발생한 이 화제는 놀이시간에 이어 간식 시간을 지나고 오전 내내 이어졌습니다. 문제의 그림은 죽은 물고기들이 바다 한가운데 둥둥 떠다니는 장면이었습니다. 간식 시간에 한 아이가 "우리 이것 먹으면 물고기들처럼 죽는 거 아니겠지?"라고 하며 피식 웃었습니다.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지구가 아프면 이젠 우린 어떻게 하지?"
아이들은 지구를 살리는 방법을 참 많이도 알고 있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지구를 안 병들게 하면 되어요. 쓰레기를 안 버리고요."
"맞아요~! 분리수거 하면 되잖아요."
"자동차도 전기 자동차를 타면 되어요."
"음식물 쓰레기도 따로 버리면 물이 안 오염되어요."
그때 한 아이가 "나는 맨날맨날 분리수거를 잘해요"라며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이어 이야기는 순식간에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지구 살리기 운동에 대한 경험담으로 바뀌었고, 저는 아이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지구 살리기에 동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간식 시간을 마치고 교사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지구를 살릴 수 있을까?'라는 주제에 대해 학급의 아이들이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상상하지 못할 만큼 생각이 성장해 있으며, 나름대로 많은 것들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용히 말없이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남자아이에게, 옆에 앉아있던 여자아이가 "너는 왜 말 안 해? 너도 유치원에서 아주아주 잘하잖아!"라며 친구의 왼쪽 팔을 흔들었습니다.
"맞아요. 우리 유치원에서 현수가 분리수거랑 쓰레기 치우는 거 제일 잘해요"라고 다른 친구가 덧붙였습니다. 현수라는 아이는 조금 망설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치원에서는 제가 잘하는데…. 저는요, 집에서도 분리수거를 잘하거든요? 그런데 우리 엄마랑 아빠는요. 어떤 때는 하지만요, 어떤 때는 안 하고요. 내가 분리수거 해 놓은 것도요 그냥 다 섞어서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버릴 때도 있어요! 그런데 집에서 내가 어떻게 분리수거를 하냐고요~. 엄마랑 아빠가 안 하는데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데요?"
이어 아이들은 자신들이 보았던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을 하나씩 하나씩 이야기보따리를 풀 듯 신나게 떠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만난 어른들의 모습은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가래침을 뱉는 모습,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가로수에 방뇨하는 모습, 마시던 플라스틱 컵과 빨대를 나무 울타리 위에 살짝 올려놓고 자리를 떠나는 모습,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달리는 차들의 모습, 담배꽁초를 돌돌 말아 손으로 튕겨 바닥에 버리는 모습,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과 음료를 먹고 쓰레기는 보도블럭 화단 위에 그대로 올려놓고 건물로 들어가버리는 모습, 쓰레기봉투에 이것저것 다 섞어 버리는 어른의 모습….
4~5세 아이들의 시각에서 평가하는 어른의 모습은 '환경오염의 주범'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바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 지구를 지키는 부모의 일관적 행동이 아이를 세계시민으로 키운다
2019 개정 누리과정에서 추구하는 인간상에는 '세계가 공동체'라는 인식과 함께 전 지구적 시각을 가지고, 세계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더불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육과정으로서 이 인간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자면, '더불어 사는 사람'이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 소속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과 생명을 존중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협력하는 민주시민을 뜻합니다.
유아교육 현장에서는 유아들이 인류공동체적인 책임을 지고 환경을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한 지식, 기능, 태도와 가치를 형성하고 실천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이는 21세기가 추구하는 인간상을 목표로 유아가 건강한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비단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실천하는 유아 교육기관의 노력만으로는 성공을 거둘 수 없습니다. 교육은 그 나라의 기둥이 될 한 인재를 성장시키는 과정이며, 모든 국민이 협력해야 하는 가장 큰 과업입니다. 따라서 21세기에 요구되는 세계시민교육은 교사와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상호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긴밀한 소통이 이뤄졌을 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위의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성인들이 무심코 저지르는 행동이 유아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지고 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특히 부모님들은 부모님의 행동이 자녀들에게 도덕적 갈등과 죄의식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를 건강한 세계시민으로 기르는' 세계시민교육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아이들과 함께 실천하는 데서부터 출발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유아들과 함께 실천하는 환경 보호 및 보존을 위한 일은 극히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일일지라도 매우 큰 교육의 자료가 됩니다.
일관성 있는 실천은 자녀들에게 지구를 보존하기 위한 공익의 가치를 구현하는 데 동참하고 있다는 자긍심과 책임의식을 길러줄 뿐만 아니라 자존감을 높여줍니다. 부모님들께서는 내가 하는 작은 행동 하나라도 자녀의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 성인은 모두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역사회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자신의 모든 행동에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미래에 세계를 짊어질 어린 인재들에게 우리 성인들은 바람직한 모델이 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하는 사소하게 생각되는 성인들의 잘못된 행동에는 맑고 깨끗한 우리 아이들의 시선이 늘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칼럼니스트 양진희는 현재 한국교통대학교 유아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교직은 천직이자 성직이다'는 철학을 지니고 있다. 유아교사의 경험을 토대로 유아안전, 장애유아통합교육, 입양, 아버지 참여교육, 유아의 인권과 세계시민교육 등 다양한 주제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유아안전지식, 안전문제해결사고, 아버지의 자아상과 양육행동, 부모역할 만족도, 유아 세계시민의식 등을 측정할 수 있는 다수의 평가도구를 개발했다. 최근에는 유아의 안전 및 아동권리와 복지, 그리고 세계시민교육 관련 연구에 몰두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동화와 스토리텔링을 활용해 유아를 깊이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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