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의 반짝이던 눈빛에서 희열이 느껴졌어요"
기초학력 전담교사제가 이룬 것
전남교육청, 지난해 40명 규모 첫 운영
읽고 쓰거나 셈 안 되는 초등 1~2년
수업시간 별도 교실서 일대일 수업
충북 등 다른 교육청도 뒤따라
‘별이(가명)가 교실로 들어왔다. 한참을 자리에 앉지 않고, 또 여기저기 둘러본다. 그리고 교실 한켠에 놓은 향수 재료를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빨리 자리에 앉으라는 선생님의 재촉에도 아랑곳 않더니, 갑자기 ‘라..벤..더?’라고 떠듬거리고 읽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뭔가 읽어졌다는 신기함, 읽어냈다는 뿌듯함이 묻어나는 반짝하고 빛나던 그 눈빛…, 그때부터 별이는 달라졌다.’
김미라 교사(해제남초)의 지난해 10월15일 수업일지다.
김 교사는 “별이는 2학년인데도 자신이 알고 있는 낱글자는 읽지만 처음 보는 글자는 아예 고개를 돌려버리고 읽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아이였어요. 책상 앞에 앉혀놓기도 힘들었고요. 그러던 별이가 읽은 뒤 눈빛이 반짝하고 빛나는데 정말 희열이 느껴졌어요. 그때부터 학습 태도도 달라졌고요”라고 했다.
‘1학년 호동이(가명)는 진단평가 때 바둑알 30개쯤을 보여주며 몇 개쯤 될 것 같냐는 질문에 ‘열 개?’라고 했다. 10까지 앞으로 세기는 가능했지만 거꾸로 세는 것은 어려워했고, 17을 읽어보라고 하면 71이라고 말했다. 학년, 반, 번을 쓰지 못하고 읽지도 못해 ‘모르겠다!’를 입에 달고 산다. (중략) 수감각 카드 20장쯤 손에 쥐면 너무 많다고 투정부릴 때도 있지만 점카드와 숫자카드, 손가락카드를 보여주면 이마에 검지손가락을 올리고 고민하면서 ‘아~ 나! 알겠다. 정답’을 외친다. (중략) 10의 보수를 이용해 덧셈식을 뺄셈식으로, 뺄셈식은 덧셈식으로 만들어 미니보드 칠판에 써놓고 뿌듯해하더니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사진 찍어 엄마께 보내드렸다. (중략) 담임 선생님은 ‘수해력 교실에서 매직이 일어나고 있나 보다’고 말씀하신다. 덧셈, 뺄셈이 안 되던 아이가 수해력 교실에 다녀와서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칭찬하시면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이 사라진다.’
한미영 교사(순천신흥초)가 지난달 7일 성과공유회에서 발표한 사례 보고서에 쓴 글이다.
김 교사와 한 교사는 지난해 전남교육청이 처음 도입한 ‘기초학력 전담교사’다. 읽고 쓰기나 셈하는 능력이 부족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위해 전남교육청은 문해력 교사 34명과 수해력 교사 6명 등 모두 40명을 ‘전담교사’로 발령냈다. 담임은 물론 모든 행정업무 부담을 없애주고 오직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교사 한 명당 1~2학년 4~5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시간에 해당 학생만 따로 마련된 교실로 데려가 일대일 수업을 했다.
학기 시작과 끝에 두 차례 진단평가를 해 성과를 점검해보았더니 상당한 향상이 이뤄졌다. 2학기 문해력의 경우 1학년 학생들의 자모 이름 대기, 단어 읽기, 읽기 유창성, 단어 받아쓰기 도달률이 학기 초에 각각 39%, 38%, 28%, 29%이던 것이 학기 말에는 각각 73%, 75%, 38%, 65%로 올라갔다. 각각 34%포인트, 37%포인트, 10%포인트, 36%포인트 향상된 것이다.
수해력도 학기 말에 50명 가운데 37명(74%)이 진단문항의 70% 이상을 맞혀 목표에 도달한 것으로 판단됐다. 영역별로 보면, 수 감각은 학기 초 도달 학생이 57.4%였던 것이 학기 말에는 91.5%로 34.1%포인트 향상됐고, 수 세기는 53.2%에서 97.9%로 44.7%포인트, 자릿값은 10.6%에서 85.1%로 74.5%포인트, 덧셈은 55.3%에서 80.9%로 25.6%포인트, 뺄셈은 2.1%에서 74.5%로 72.4%포인트, 곱셈은 0%에서 41.7%로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애초에는 2019년 10월에 기초학력 보장계획을 수립하면서 협력강사제 사업계획을 세웠어요. 수업시간에 강사가 담임을 도와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제도죠. 그런데 기초학력에 관심이 있는 교사와 장학사, 장학관, 정책기획관, 공약이행점검단 선생님 등 전문가그룹에서 ‘일반적인 수업으로는 해결이 쉽지 않으니 전문성 있는 교사가 별도 공간에서 집중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어요. 수업시간에 별도 공간에서 가르치려면 정규 교사가 아니면 안 돼요. 그래서 전담교사제를 시행해보자고 의견을 모은 거죠.”
지난해 처음 생긴 전남교육청 기초학력지원센터에 파견돼 기초학력 전담교사 제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도운 홍윤비 교감의 말이다. 홍 교감은 “처음 시행하는 제도라 교사들의 전문성을 기르기 위한 연수를 준비하면서 힘들었고, 수업시간에 담임 아닌 다른 선생님이 다른 공간에서 일대일 개별 수업하는 것을 특수교육으로 인식하는 학부모의 동의를 얻기가 어려웠고 학교 관리자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경우가 있었는데 한 학기를 운영하면서 성과가 나타나니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며 “지난해에는 급하게 공고를 하는 바람에 지원자가 절반 정도에 불과했는데 올해는 40명 정원에 73명이 지원했다”고 전했다.
‘한글 스튜디오’라는 이름을 붙여 독창적인 문해력 교실을 꾸민 김준성 교사(영산포초)는 전담교사제의 가장 큰 장점으로 “무엇보다 수준과 특성이 다른 학생들 각각에 대한 맞춤형 수업을 할 수 있었고, 환경이 좋지 않아 기본 생활습관과 학습 습관 자체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학생들의 습관을 잡아줄 수 있었던 것”을 꼽았다.
박윤경 교사(목포석현초)는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수업시간에는 그 학생에게만 신경을 쓸 수 없어 오후에 남겨 지도하기도 하는데, 학생들도 방과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재미있는 다른 수업을 하고 싶어 하고 학부모들도 ‘낙인효과’를 우려해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데 전담교사제를 시행한다고 해서 정말 좋은 기회다 싶어 자원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의 성공 사례가 알려지면서 기초학력 전담교사제가 다른 곳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부터 충북교육청이 30명 규모로 기초학력 전담교사를 운영할 예정이고, 대구·전북·경북도 5~40명 규모로 준비 중이다.
김인현 객원기자 inhyeon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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