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좀 그만해"라는 말 좀 그만

한겨레21 2021. 2. 2. 08:3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표지이야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의 한 장면. 식사 시간에 플라스틱통에 휴대전화를 놓아두지만 딸은 통을 깨뜨려버리고 만다. 넷플릭스 화면 갈무리
눈은 마음을 드러내는 창이다. 대화할 때는 눈을 보라고 말하곤 한다. 우리는 1년간 마음의 창만을 서로 보며 지냈다. 하지만 창만으로는 건물을 만들 수 없다.
“반 아이를 동네 식당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담임인 나를 알아보지 못해 당황했다. 마스크를 쓰고 지내다보니 알기 힘들었다고 말하는 그 녀석이 못내 섭섭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 학기 내내 아이들과 마스크를 쓰고 만났던 것이다.”(김현수,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에 나오는 선생님 목소리)
인간의 인지력은 대단하다. 마스크를 써서 눈만 나온 얼굴을 보고도 알아본다. 하지만 처음 만난 사람이 마스크를 벗으면 생각했던 얼굴과 달라 당황스럽다. 눈을 보고도 얼굴을 알아보는 상황이 코로나19 학교의 1학기였다면, 이제 얼굴 전체를 보면 누군지를 모르는 상황이 2학기다.
많은 사람이 온라인수업의 질을 걱정했다. “그렇게 해서 수업이 되겠느냐.” “수업의 질이 낮다.” “왜 빨리 진도가 안 나가느냐.” 진짜 문제는 또 있었다.
2020년 1년간, 새로운 학교 친구가 생기지 않았다. 아이들은 애타게 절벽에서 “친구야 보고 싶다”를 외쳤다. 큰소리를 낼 수 없기에 그 소리는 삼켜졌다. 외로움이 뭔지 모르는 아이들이 외로움이란 감정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과 나누었어야 할 시간에 스마트폰을 더 들여다봤다. 그 외로움이 온라인으로 쉽게 달래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겨레21>은 ‘네이티브 온라인’ 인간인 아이들의 온라인 친밀도와 친구관계를 조사했다. 초등 5학년(2009년생)부터 고3(2002년생) 학생 10명을 전화 인터뷰했고, 온라인 생활에 대해 온라인 설문조사를 했다(총 203명 응답)._편집자주

코로나19가 유행하며 진료실에서 부쩍 많이 듣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다 괜찮아요, 선생님. 휴대전화 때문에 싸우는 것만 빼면요.” 괜찮다는 말과 달리 내원한 아이의 어머니 목소리는 날이 서 있습니다.

재빨리 살핀 아이의 얼굴에는 뜨끔함과 억울함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런 아이의 표정을 알아챈 어머니는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학교에 안 가니 종일 휴대전화만 붙들고 있어요. 공부는 하나도….” 아이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집니다. 마음은 급하지만 부드럽게 어머니의 말을 끊고 주의를 환기합니다. “그래서 너는 하루에 휴대전화를 얼마나 들여다보니?”

‘휴대전화 하면 좋지 않다’ 막연한 불안감

이제 아이 차례입니다. 아이는 본인이 왜 휴대전화를 붙들고 있는지 항변합니다. 숙제를 올려야 하고 선생님 피드백도 받아야 하고 놓친 것이 있는지 아이들에게 물어도 봐야 하고…. 물론 그것만 하지는 않았겠지만 들어줍니다.

“그래, 정말 휴대전화로 해야 할 것이 많구나.” 아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이를 대기실로 내보냅니다. 이제 어머니 이야기를 들어주고 여력이 된다면 쉽진 않지만 아이의 인터넷 세상을 이해시킬 차례입니다.

부모와 마주 앉으면 저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아이가 휴대전화를 하는 게 보기 싫다고 하셨는데, 아이가 무얼 하기 바라세요.” 그러면 대부분의 부모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밖에 나가 놀아도 좋으니까 제발 휴대전화는 좀 안 붙들고 있으면 좋겠어요.”

부모들은 아이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것에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가 휴대전화를 붙들고 있으면 눈살을 찌푸립니다. 저러다 중독되는 것 아닌가. 무언가 유해한 정보를 보는 건 아닌가. 눈 나빠지고 인지기능이 떨어진다던데, 도대체 언제까지 휴대전화만 붙들고 있을 건가…. 어디선가 들은 여러 스마트폰 중독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돌면서 이미 아이에게 화난 상태가 됩니다.

부모들의 ‘휴대전화를 하면 좋지 않다’라는 막연한 생각은 아이와 잦은 갈등을 낳습니다. 도대체 뭐가 나쁜지 아이를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죠. 나쁜 어른이나 나쁜 친구를 만날 수도 있으니 밖에 나가 놀지 말라고 하면 아이가 얼마나 당황스러울지 생각해보세요.

이제 아이에게 인터넷 공간은, 밖에 나가 노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이고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중요한 공간입니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아이의 휴대전화 사용 시간이 늘었고, 아이는 깨어 있는 시간의 3분의 1 이상을 인터넷 공간에서 보냅니다. 공부도 인터넷으로 합니다. 이제 부모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아이가 휴대전화를 붙들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화가 나는 내 마음은 과연 설득력이 있는가?

부모의 휴대전화 사용 습관은 어떤가

부모는 아이의 항변에도 귀 기울여야 합니다. 휴대전화 말고 다른 것을 하라고 하면 아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할 일이 없으니까 휴대전화를 하는 거죠. 코로나 때문에 나가지도 못하고, 다른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어른이 답을 줘야 합니다. 휴대전화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할지 관련해서요.

아이가 휴대전화 하는 시간을 줄이려면 거기에 상응하는, 재밌는 다른 활동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이미 휴대전화로 정보를 찾거나 영상을 보는 것이 아이들에게 가장 재밌는 놀이가 되었기에 다른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이가 다른 활동을 하기 바란다면 아이와 함께 그런 활동을 찾아야 합니다. 무엇을 할지는 아이가 직접 정할 수도 있고, 부모와 함께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같이 저녁에 산책하거나, 함께 어떤 운동을 하거나, 가족끼리 할 수 있는 게임을 하는 등 부모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막연하게 다른 것을 하라고 하면 아이의 휴대전화 사용을 줄일 수 없습니다. 아이가 시간대별로 어떤 활동을 할지 부모가 아이와 함께 계획하고 아이를 지도하고 아이를 격려함으로써 다른 활동을 늘릴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 세계가 그렇듯, 온라인 세계에도 여러 위험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용을 조절하지 못하면 당연히 중독 위험이 있고, 유해한 게시물에 노출되거나 사이버 학교폭력이 생기기도 하지요.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듯, 아이가 많은 시간을 온라인에서 보내는 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그만해라’를 외쳐도 한계가 있지요.

스마트폰 중독의 어려움을 갖고 있던 한 중학생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위해 ‘스마트폰 하우스’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가족이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휴대전화를 그곳에 두기로 약속했습니다. 부모라고 예외는 없었습니다. 급한 업무는 컴퓨터로 해결했지요.

자연스럽게 가족이 모여 TV 보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휴대전화로 하루에 게임을 6시간 이상 하는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의 어머니는 진료 중 아이의 말에 충격받았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게임하는 이유가, 엄마가 휴대전화만 하고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이에게 게임하지 말라고 늘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부모 역시 휴대전화를 붙들고 있는 시간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 어머니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잠들기 전까지는 본인이 휴대전화를 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아이와 함께 보드게임을 하거나 산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당연히도 아이의 휴대전화 게임 시간이 줄었지요. 이렇게 아이와 천천히 사용 시간을 줄이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전한 온라인 환경 위해 목소리 내야

이젠 인터넷으로 장을 보고 카페 동호회로 친목을 도모하는 등 어른에게 인터넷이 일상적인 것처럼, 아이에게도 온라인 세계가 일상적이고 그들 삶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해주세요. 아니, 어쩌면 어른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세계라는 것을 이해해주세요.

그렇다면 우리 어른이 시각을 바꿔야 합니다. 아이가 인터넷을 하는 것을 걱정만 할 게 아니라, 국가와 기업에 안전한 온라인 환경을 위해 많은 자본과 자원을 투자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각자의 아이를 잘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안전하게 자라는 온라인 환경을 만들도록 목소리를 내는 일도 중요합니다. 또한 건전한 온라인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관심 갖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인터넷을 올바르게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계기가 될 테니까요.

김은지 소아정신과 의사·청소년모바일상담센터 센터장

*표지이야기 - 네이티브 온라인 인간의 고독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