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했다던 '北원전 보고서' 원문 어떻게 공개했나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과 다른 컴퓨터에 동일한 파일 존재…1~2달전 이미 파악, 모든 컴퓨터 압수수색했던 검찰 다른 파일 존재 알고 있었나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검찰이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에 의해 삭제된 문건이라며 공소장에 기재했다고 SBS가 보도한 '북한 원전 건설 추진방안' 보고서 원문을 산업통상자원부가 전격 공개했다. 삭제된 것과 동일한 문건인데, 산업부 해당 부서의 다른 컴퓨터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산업부는 이날 저녁 '북한 원전건설 문건 관련 자료 공개'에서 “현재 재판중인 사안임에도 불필요한 논란의 종식이라는 공익적 가치를 감안해 정보공개심의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자료 원문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이 문서를 두고 “2018년 4월27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향후 남북 경협이 활성화될 경우를 대비하여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자료이며, 추가적인 검토나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이 그대로 종결되었다”며 “이 사안은 정부 정책으로 추진된 바 없으며, 북한에 원전 건설을 극비리에 추진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SBS가 공개한 검찰 공소장에 나온 산업부 공무원 삭제 파일이 530개 목록을 두고 산업부는 “확인한 결과, 이전 정부에서 작성된 자료가 174개, 현 정부 작성된 자료가 272개로 파악되며, 그 외 작성시기 구분이 어려운 문서가 21개, 문서가 아닌 자료(jpg 등)가 63개로 파악된다”며 “북한 원전 관련 자료로 예시된 17개 파일의 경우 산업부가 작성한 자료는 '북한 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에너지분야 남북경협 전문가' 2개로 파악되며 나머지 자료들은 1995년부터 추진된 KEDO 관련 공개 자료와 전문가 명단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산업부 공개 '북한 원전건설 추진방안' 무슨 내용 담겼나
산업부가 공개한 자료(보고서)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을 보면, 이 보고서는 의사결정 기구를 미일 등 외국과 공동 구성하고 사업추진조직은 남한의 관련부처가 참여하는 TF로 구성하며, 주요국 참여여부, 재원조달방식, 원전과 비핵화 조치와의 연계 여부 등에 따라 상이한 추진체계 검토 필요 등을 언급했다.
보고서는 북한 원전의 입지를 두고 '케도 부지(함경남도 금호지구)'를 일차적으로 검토하되, 다른 고려요인에 따라 DMZ 등 북한내 또는 남한내 여타 지역도 가능하다고 기재했고, 원자로의 노형에 대해 “OPR1000(KEDO) APR1400(신고리5·6호기, APR+(실적없음), 스마트(실적없음)의 가능성을 검토”한다고 썼다. 보고서는 제1안으로 금호지구에 APR1400 건설하는 안, 2안으로 DMZ에 APR+을 건설하는 안, 3안을 신한울 3·4호기 건설후 북한으로 송전하는 안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검토의견으로 “북한내 사용후핵연료 처분이 전제될 경우 1안이 소요시간과 사업비, 남한내 에너지전환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설득력이 있다”며 “다만, 현재 북미간 비핵화 조치의 내용, 수준 등에 따라 불확실성이 매우 높아, 현 시점에서 구체적 추진방안 도출에는 한계가 있다”고 기재했다. 보고서는 “향후 비핵화 조치가 구체화되고 원전건설이 가시화되는 시점에서 추진체계, 세부적인 추진방안에 대한 추가적인 검토 필요”라고 덧붙였다.
'삭제한 문건이 어떻게 산자부가 갖고 있나, 삭제한 것 맞나'
SBS 보도로 공개한 검찰의 공소장에 첨부된 범죄일람표 제 517번을 보면, '180515_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_v1.2.hwp'이라는 파일(경로: ₩예전파일₩60 Pohjois₩01 북원추 O)을 산업부 김아무개(구속기소) 서기관이 지난 2019년 12월2일 01시16분30초 삭제했다고 쓰여있다.
SBS는 지난달 28일 보도에서 “삭제한 파일을 세부적으로 보면, '북한 원전 추진방안'의 약자로 보이는 '북원추' 폴더에서 두 가지 버전의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파일이 삭제됐고, 다른 폴더에서 '북한 전력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단계적 협력과제', '북한 전력산업 현황과 독일 통합사례' 파일이 삭제됐다”고 보도했다. SBS는 “이 파일들의 작성 경위와 삭제 이유를 질의했으나 산업부는 '검찰 수사 중인 사안이라 답변이 어렵다'고 밝혀왔다”고 썼다.
문제는 구속기소된 산업부 서기관이 해당 파일을 삭제했는데, 산업부는 왜 동일한 파일을 '원문'이라면서 공개했느냐에 있다. 해당 서기관이 삭제한 파일 따로, 산업부 보관 파일 따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굳이 실익이 없는데 삭제할 까닭이 무엇인지 의문이다. 산업부는 삭제했다는 이 파일과 동일한 파일이 삭제된 컴퓨터 외의 다른 컴퓨터에 있다는 사실을 이미 지난해 말 파악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모두 압수수색해갔기 때문에 해당 서기관이 삭제한 파일의 동일한 다른 파일이 있다는 것을 삭제 파일을 복원한 후에 알고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문이 나온다.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1일 밤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해당 서기관) 본인은 파일을 삭제했지만, 그 파일과 동일한 파일이 산업부 내부에서 발견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산업부의 원전산업정책관실 관계자는 이날 밤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오늘 공개한 파일은 삭제한 파일 중의 하나를 확장자 이름을 보고 찾은 것”이라며 “삭제한 것은 우리 과에서 삭제한 것은 분명하지만, 모든 컴퓨터에 있는 파일을 다 삭제한 것은 아니다. 한 컴퓨터에서만 삭제했고, 삭제한 컴퓨터 외에 다른 컴퓨터도 동일한 자료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어느 컴퓨터에 어떻게 남아있는지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삭제한 것을 검찰이 복원한 파일이 아닌 다른 컴퓨터에 있던 파일이라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삭제한 파일과 동일한 파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느냐는 질의에 “이미 지난번 조선일보 보도(지난해 11월 기사로 보임-기자주)가 나왔을 때 알게 됐다”고 말했다.
검찰이 그 동일한 파일이 있는 컴퓨터도 다 압수수색했느냐는 질의에 “다른 컴퓨터도 다 해갔다”고 답했다.
앞서 머니투데이는 1일 오후 '[단독]북 원전지원 문건 산업부에 그냥 있다..은폐 주장이 조작' 기사에서 이 같은 사실을 가장 먼저 보도했다. 이 매체는 “검찰의 공소장에 적시된 6페이지 분량의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보고서는 산업부 내부 전산망에 보관돼 있다”고 썼다. 머니투데이는 산업부 관계자가 “최근 한 방송사가 공소장의 내용을 보도하면서 공무원이 삭제한 목록을 공개했는데, 이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내부 문건들을 확인해 보니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 방안 보고서'가 나왔다”며 “검찰이 복구한 파일과 동일한 문건”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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