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북한 원전' 공세 고삐..선거전 북풍 카드 효과? 역풍?
"경선 과정에 핵심 지지층은 결집할 수 있어"
"팩트가 아니면 중도층 끌어안는 데 부정적"
"최근 북풍 성공 사례 없어..역풍 경계해야"
[서울=뉴시스] 김성진 기자 = 4·7 재보궐선거 레이스가 시작된 가운데, 야권이 정부의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문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면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문재인 정부가 대한민국 원전을 폐쇄하고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려 했다"며 "원전 게이트를 넘어 정권의 운명을 흔들 수 있는 충격적인 이적행위"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이런 이적행위 국기문란 프로젝트가 일부 공무원 차원이 아닌 정권 차원에서 극비리에 추진돼 온 정황이 드러났다"며 "정권 차원에서 탈원전 반대 시민단체, 민간인을 불법 사찰했다는 명확한 증거도 나왔다"고 했다.
이어 당 지도부는 지난 주말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고, 여당을 향해 국정조사와 특검을 요구하는 등 장기적인 대여 공세의 발판을 마련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1일 국회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회당에서 "청와대나 여당 측에서는 사실무근이라 하는데 사실무근이라는 이야기만 가지고 의혹이 말끔히 해소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다"라며 국정조사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특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야권 유력 후보들도 공세에 적극 가담하면서 '북한 원전 건설 추진' 의혹이 보궐선거와 맞물려 가는 형국이다.
안 대표는 지난달 31일 기자들과 만나 "이 문제는 대통령이 직접 국민들에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본다"며 "전후 사정들을 고려해서 만약에 그것이 정말로 심각하다고 볼 때는 국정조사나 특검까지도 추진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라고 했다.
나경원 전 의원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탈원전 반대 시민단체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핵개발로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북한에 핵 발전을 제공한다는 그 발상 자체가 이적이 아니고서야 무엇이 이적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세훈 전 시장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시라도 빨리 국민 앞에 진실이 무엇인지 사실관계와 경위를 소상히 밝혀달라"라며 "진정 떳떳하다면 정권의 명운을 걸고 국정조사는 물론 특검도 직접 요청하라"고 촉구했다.
이같은 야권의 공세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과 함께 월성1호기 조기폐쇄 결정을 둘러싼 탈원전 에너지 정책까지 전방위적인 전선을 펼쳐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목적을 둔 것으로 풀이된다.
또 유권자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보궐선거 경선에 정치 고관여층인 핵심 지지 세력을 모으면서 경선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리려는 전략적인 포석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경선을 통과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핵심 지지층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우상호 후보도 친문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며 "경선에 올인하다보면 핵심 지지층 끌어안기를 우선시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과거의 해묵은 '북풍몰이'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 아래 국민의힘은 중도 외연 확장을 꾀했다. 안 대표의 국민의당 역시 보수의 '비호감' 이미지와 선을 긋고 외연 확장을 기치로 내세웠다.
그러나 10년 전 후보들이 유력 주자로 나서 '고인 물'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보궐선거판에 '과거 색채'를 띤 종북 공세까지 이어지면서 유권자의 피로감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도 표심을 두고 벌어질 '샅바 싸움'에서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코로나 19로 관심이 높아진 민생 이슈가 야당으로 인해 정쟁 뒤로 밀리는 것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리한 정치 공세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민감한 주제를 끄집어 내 여야 간에 난타전이 벌어지면서 선거까지 이어가는 사례가 많다"며 "그때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팩트(fact·사실)"라고 짚었다.
이어 "지지층은 팩트가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지지층은 더 모일 것"이라며 "다만 팩트가 아닌 상황에서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하면 중도층을 끌어안는 데 부정적 결정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원전은 YS시절인 1994년 제네바 합의에 의해 착공이 이뤄진 바 있다. 당시 합의에 따라 한국·미국·일본·유럽연합 등은 100만㎾급 한국형 경수로 2기 건설을 위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구성하고 북한 신포에 공사를 진행했다.
이미 보수정권 시절 사례가 있을 뿐만 아니라, 30년이 다 돼 가는 현재에 와서는 북한이 원전을 건설하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정식 사찰 및 미국과 국제사회의 동의 등 뛰어넘어야 할 선결조건이 더욱 많고 복잡해졌다.
또 유엔 대북제재 결의에 따라 북한에 원전 건설을 위한 물품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유엔사의 승인이 필요한데 북미 비핵화 협상 진전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아이디어 차원'의 부처 내부 검토 문건을 야권이 지나치게 정치 공세로 몰아가 여권 반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와 여당은 "선 넘은 정치공세", "최악의 북풍 공작" 등으로 규정하며 김종인 비대위원장 등을 상대로 법적 책임까지 묻겠다는 입장이다. 또 문재인 대통령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까지 나서서 야권의 의혹 제기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수석 비서관·보좌관 회의에서 "버려야 할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로 대립을 부추기며 정치를 후퇴시키지 말기를 바란다"며 이례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같은 날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신경제 구상과 관련한 40여 쪽 되는 분량 속에서 긴급하게 검토해 봤지만 원전의 '원'자도 없었다는 점은 분명히 말한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차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18년 5월 작성한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문건 원문을 공개하고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향후 남북 경협이 활성화될 경우를 대비해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자료"라고 밝혔다.
해당 문건 1페이지 상단에는 '보고서는 향후 북한지역에 원전을 추진할 경우 가능한 대안에 대한 내부검토 자료이며,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님'이라고 적혀 있다.
산업부는 "추가적인 검토나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이 그대로 종결됐다"면서 "따라서, 이 사안은 정부 정책으로 추진된 바 없으며 북한에 원전 건설을 극비리에 추진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박 평론가는 "최근 북풍은 성공한 사례가 없다. 팩트가 아닌 사례는 역풍이 분다. 지지층까지도 흔들릴 수 있고 야당에게 악재가 될 수 있다"며 야권 내부에서 경계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뜻을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sj8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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