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시간 단 3분" SOS..사소한 어깨 부딪침이 비극으로

이승환 기자,원태성 기자,박기범 기자 2021. 2.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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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선택 끝내자]①폭행 당해 방광 파열.."가장 노릇 못해"
한해 1만3799명 스스로 생 마감 .."유가족엔 평생 낙인"

[편집자주]모든 1등이 영예로운 건 아니다. 한국은 'OECD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자살은 '막는 것' 밖에 대책이 없다. 2019년 극단 선택으로 1만3799명이 숨졌다. 하루 평균 37.7명이다. <뉴스1>은 자살시도자나 충동자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긴 흔적을 추적하고 유가족·상담사·복지사·학계 전문가 등을 취재해 관련 사례를 분석했다. 자살 예방을 위한 최선의 대책이 무엇인지 총 9회에 걸쳐 보도한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원태성 기자,박기범 기자 = "이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분."

지난달 9일 밤 11시 40분쯤, A씨(43)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유명 가수가 리메이크한 노래 영상도 함께 공유했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 억지 노력으로…"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곡이다.

2018년 1월 16일 밤 12시쯤, 경기도 용인의 상가 안에서 30대 남성 B씨와 어깨를 부딪친 게 발단이었다. B씨는 10여분간 A씨를 폭행했고 도망치는 A씨를 쫓아가 급소를 공격했다. A씨는 방광이 파열돼 전치 12주 진단을 받았고 B씨는 기소돼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A씨의 신체적 피해는 완치될 수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는 성인용 기저귀에 의지해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을 운영했던 그는 "노동 능력의 40%를 상실했다"며 "나는 가장 노릇을 할 수 없는데 가해자는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며 억울한 심정을 토로해 왔다.

우울함과 무력감에 휩싸인 그가 자살예방상담전화에 연락해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노동능력 상실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도 호소했다. 그러나 골든타임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A씨는 지난달 10일 오후 11시쯤 용인 자택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희망과 기대가 차오르는 새해 정초에도 사람들은 숨진 채 발견됐다. 한국은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벗지 못했다. 중앙자살예방센터 통계분석팀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자살자는 1만3799명에 이른다. 하루 평균 37.7명이 극단선택으로 숨진 것이다.

인구 10만명 당 자살 인원을 계산한 자살률은 Δ2017년 24.3명 Δ2018년 26.6명 Δ2019년 26.9명으로 3년째 늘어나고 있다. 2019년의 26.9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5개국 가운데 1위에 해당한다.

경인아라뱃길 시천교 자살예방 난간.(인천시 제공)© 뉴스1

전년 대비 2019년 세대별 자살률은 10대와 20대가 각각 2.7%, 9.6% 상승했다. 이 기간 60대의 자살률 또한 올라가 30~50대와 70대, 80세 이상 자살률이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우울해서 죽음을 선택하고, 가난해서 죽음을 선택한다. 경찰통계연보(2019년 기준)에는 신경정신과적 문제와 경제적 문제가 자살 원인 1, 2위로 나란히 기록됐다.

극단 선택에는 복합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 가난해서 우울하고 우울해서 가난을 극복 못하는 악순환 속에서 죽음의 유혹에 흔들리는 것이다.

연예인과 사회 저명 인사 등 유명인의 극단 선택은 자살률 증가에 직간접 영향을 끼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다. 유명인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깊은 상처를 남기면서 사람들의 모방 자살로 이어진다는 가설이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살 시도자는 극단적·인지적 왜곡을 의미하는 터널 비전(터널 안만 보여 시야가 좁아지는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며 "뒤늦은 시기에 '괜찮아''네 잘못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은 크게 도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한국 사회의 자살률이 높은 데 여러 문제가 작용했겠지만 개인 능력의 문제로 귀결해 자살을 설명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며 "자살을 개인 책임으로 돌리기 쉬웠고 유가족에 대한 시선도 낙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남겨진 사람은 그리움과 죄책감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폭행 피해를 호소하다가 극단 선택을 한 A씨의 SNS 계정에는 유가족이 쓴 것으로 보이는 글이 최근 올라왔다.

"자기야, 너무 보고 싶어~ 미안해, 안아주지 못해서. 자기야 많이많이 사랑해."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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