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할인에도 썰렁..이커머스에 밀린 도심형 아웃렛
경쟁력 떨어진 도심형 아웃렛…초저가 찾는 소비자 온라인으로 이탈
‘재활전문가’ 박성수 이랜드 회장 "NC구로점 안 통하네"
이랜드 경영난에 무상감자 결의...구조조정 확대
지난 31일 오후 찾은 서울 구로구 NC신구로점. 이 곳은 애경그룹이 25년간 AK플라자 본점으로 운영해 오던 곳으로 지난해 9월부터 이랜드리테일이 도심형 아웃렛으로 운영 중이다. 최대 90%의 할인율로 이월상품과 기획상품을 대거 구성했다. 이 곳은 인근의 30대 주부를 타깃해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4개월이 지난 현재 고객의 마음을 끄는 데 역부족인 모습이었다. 1호선 구로역에서 구름다리로 연결된 2층 여성복 매장은 일요일 오후에도 손님이 30명이 채 안 됐다. 그나마 사람이 몰린 곳은 휴게공간과 음식점이었다.
온라인을 통한 초저가 쇼핑이 부상하면서 도심형 아웃렛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생겨난 도심형 아웃렛은 한때 쇼핑의 메카로 주목 받았다. 그러나 최근 소비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도심형 아웃렛의 선봉장 역할을 해 온 대표적인 기업은 이랜드다.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은 인수합병업계에서 ‘재활전문가’로 불린다. 그는 1994년 서울 당산에 2001아울렛을 출범한 후 경영난에 빠진 기업이나 부진 점포를 낮은 가격에 인수하는 방식으로 사세를 확장해 왔다.
1999년 부도 난 울산 올림푸스 백화점 인수를 시작으로, 2003년엔 법정관리를 신청한 뉴코아 백화점을 6200억원에 인수했다. 2010년엔 대구 동아백화점을 사들였다. 2011년에도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있는 그랜드백화점을 인수했다. 1998년 외환위기로 공사가 70% 정도 진행되다 중단돼 개점하지 못한 곳이었다. 2010년엔 비싼 분양가 때문에 일년 반 동안 개장이 미뤄졌던 가든파이브에 1호 NC백화점인 ‘송파점’을 냈다. 현재 이랜드는 전국에 45개의 도심형 아웃렛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박 회장의 이런 M&A 전략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맞물리며 그룹의 경영난을 촉발한 주요 원인이 됐다.
이랜드리테일의 2019년 매출은 2조1123억원으로 전년 대비 2% 줄었다. 같은기간 당기순이익은 43% 급감한 722억원을 기록했다. 작년에는 상반기 매출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두 자릿수 역성장했다.
이에 이랜드는 비상경영 3단계를 선포하고, 관리직을 대상으로 자율 무급휴가 제도를 시행했다. 또 송도 NC커넬워크, 대구 동아아울렛 본점, 2001아울렛 수원남문점, 뉴코아아울렛 안산점, 모란점 등을 폐점했다.
작년 5월엔 백화점과 아웃렛 점포 3곳의 장래 매출채권을 유동화해 1000억원을 조달했고, 9월엔 21개 점포의 주차장에 대한 10년 운영권을 맥쿼리자산운용에 넘겨 1200억원을 조달했다.
이랜드리테일은 오는 17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보통주의 1.7%인 35만6578주를 줄이는 무상감자를 결의할 계획이다. 무상감자는 주주들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결정된 감자 비율만큼 주식수를 잃게 되는 것을 말한다. 통상 회사에 누적된 결손금을 줄이기 위해 단행한다.
이 회사의 대주주는 이랜드월드(97.17%)로 무상감자 후 이 회사의 주식 수는 줄어들 예정이다. 이 주식은 금융기관에서 빌린 빚을 위해 담보로 잡혀있다.
업계는 시류에 맞지 않는 유통 전략을 고수한 것이 이랜드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도심 외곽에서 명품 및 수입 브랜드를 할인 판매하는 프리미엄 아웃렛과 달리, 도심형 아웃렛은 국내 브랜드의 이월상품이나 기획상품을 할인해 판매한다. 과거엔 이런 매장이 인기를 끌었지만,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면서 초저가를 찾는 소비자들이 온라인으로 이탈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국내 온라인 시장 침투율은 35%로 추정된다.
구로 아웃렛 타운의 터줏대감인 마리오아울렛도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마리오쇼핑의 매출은 2018년 515억원에서 2019년 486억원으로 줄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01억원에서 57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도심형 아웃렛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롯데팩토리아울렛 가산점과 가산 현대아울렛의 매출은 각각 42%, 27% 역신장 한 것으로 추정됐다. 롯데아울렛 서울역점(-41%)과 고양터미널점(-36%), 현대 가든파이브(-21%)도 매출이 두 자릿수 줄었다. 이들 매장은 코로나19 여파가 없던 2019년에도 마이너스 성장했다.
반면 쇼핑과 여가, 문화를 접목한 교외형 프리미엄 아웃렛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신세계프리미엄아울렛 여주와 파주는 각각 매출이 15%, 13% 늘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커머스의 성장으로 저가 지향형 매장인 아웃렛이 큰 타격을 입은 것"이라며 "아웃렛 유통업체들도 시장 변화에 맞춰 지속가능성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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