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되기
* 편집자: <한겨레> 칼럼니스트 공모 마감까지 3주 남았습니다. 접수기간(2월23일 마감) 동안, ‘나는 왜, 무엇을, 어떻게 쓰는가’를 주제로,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기존 칼럼니스트들의 기고를 매주 초 게재합니다.
나는 모기다. 글 쓰는 모기다. 노는 방은 좁디좁다. 꼴랑 원고지 넉 장, 800자 크기, 가혹하게도 매주 쓴다. 용케 1년 반을 암약 중이다. 진폐증 앓는 광부처럼 숨이 가쁘다. 전주 없이 바로 불러야 하는 노래 같다. 폼 잡을 틈도, 목소리를 가다듬을 사이도 없다. 누가 첫 음을 잡아주지도 않는다. 다루는 주제도 재미없는, ‘말’.
사람들은 묻는다. 쓸거리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냐고. 몇 주 치 글감을 서랍에 몰래 넣어두고 있지 않냐고. 하지만 글쓰기는 주머니에서 동전 꺼내듯 내 안에 있는 확고한 뭔가를 꺼내 보이는 게 아니다. 써 보면 알겠지만, 사람 속은 시끄럽고 모순되고 미정인 채로 있다. 글을 쓰는 과정에 몸을 실어야만 그제야 또렷해진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난리블루스를 춘다. 자리에 앉기 싫어 서성대고, 미루고, 딴짓하고, 한숨 쉬고, 책장을 다 뒤집어놓고, 찡찡거린다. 몇 날 며칠을 끄적거리고, 폐기될 생각 쪼가리와 이어지지 않는 문장을 난삽하게 뿌려놓고 끙끙거린다. 마감시간이 멱살을 추켜잡을 때가 되어야 비로소 ‘하나’의 생각, ‘하나’의 문장이 튀어나온다(그때까지 뭘 한 거야, 젠장). 신문에 실린 것보다 두세 배 많은 분량의 버려진 글을 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엉망진창인 저 문장을 쓴 자는 도대체 누군가? 나는 한 문장이라도 온전히 쓸 수 있기나 한가?
그래도 쓴다. ‘다르게 쓰겠다’는 강박으로 쓴다. 말을 다루는 사람들은 단어의 경계를 넘어가려 하지 않는다. 모든 것과 연결된 말을 그저 ‘맞냐 틀리냐’의 문제로 단순화한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몰라보는 걸 안타까워한다. 태초에 좋은 말과 글러 먹은 말이 있다고 생각한다. 말을 우리 삶과 무관한 독립체로 대한다. 하지만 말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회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 말을 주고받는 사람, 말이 놓이는 맥락, 힘의 격차에 따라 달라지는 말의 효과를 보아야 한다. 전투 의지가 없는 나로선 새로운 말의 질서를 기획할 기력이 없다. 그저 기존의 사회 질서와 의식이 어떻게 말 속에 재생산되고 있는지, 그 켜켜이 쌓인 퇴적물을 긁어내 보고 싶을 뿐이다. 말 속에 담긴 사람들의 상처와 욕망, 사회적 징후, 저항, 웃음 같은 걸 찾아 쓰고 싶다. 그러려면 다른 몸, 다른 시선이 필요했다. 모기의 몸.
칼럼은 재미와 명령(가르침)을 함께 추구한다. 그래서 어렵다. 쫀득한 문장으로 읽는 맛을 살리면서도 결국 내 편이 되어달라고 요구한다. 좋은 칼럼은 대부분 흔하고 사소하고 부질없어 보이는 것에 대해 쓴 글이다. 놀랍게도 그런 작은 목소리가 방 하나를 혼란과 공포와 불면으로 빠뜨린다. 그래도 모기는 양심적이다. 물기 전에 앵앵 모깃소리를 낸다. 정정당당한 선전포고이자 선제공격이다. ‘나는 게릴라요. 당신의 피를 빨아먹을 테요. 당신의 잠을 깨우고 몸을 일으켜 세우게 할 것이고 어두운 방에 불을 켜게 할 것이오.’
글을 쓰면 얻는 게 하나 있다. 쓸모없는 힘(안간힘)이 빠지고 감각이 살아난다! 무작정 뻗대지 않고, 상대의 움직임과 힘의 출처를 관찰하고 그걸 이용해 되받아치는 집요함과 유연성이 생긴다. 힘을 뺀 목소리야말로 ‘치명적’이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다는 것, 불완전하다는 것, 확고하지 않다는 것, 단순하지 않다는 것, 정해진 결론이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거창함에서 소박함으로, 추상에서 구체로, 연역에서 귀납으로, 줄고 줄어 모기만 하게 줄어들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던하기보다 까칠해야 하고, 무심하기보다는 예민해야 한다. 바닥에 쏟은 좁쌀을 줍듯 손가락 끝의 감각을 하나하나 되살려야 한다. 대상을 통째로 보아선 안 되고 잘게 쪼개고 저며서 낱개로 만들고 무관해 보이는 걸 새롭게 이어 붙이거나 조립해야 한다.
내게는 답이 없다. 쓸 때마다 낭떠러지 앞이다. 답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우리가 꾸는 꿈이 해방인지 해탈인지 공존인지 유유자적인지 모르겠다. 다만, 그런 꿈은 오직 이 완고한 질서와 화석처럼 굳은 인식을 깨겠다는 저항적 실천으로만 가능하다는 정도만 안다. 그러니 어찌 이 행복한 고행을 감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 방울의 피, 한 톨의 진실을 향해 ‘산’ 모기들을 부른다.
※ 조심: 어디서 나를 후려칠지 모를 손바닥, 또는 모기 잡는 ‘파리’채!
김진해ㅣ경희대 교수·국어학자
[알림] 한겨레 칼럼니스트를 공모합니다
리영희, 정운영, 조영래, 박완서…. 더는 만날 수 없지만 영영 헤어질 수 없는 지성의 이름입니다. 시대의 죽비가 되고, 웃음이, 눈물이 되었던 <한겨레> 칼럼 필자들입니다. 오늘은 또 다른 필자들이 그 자리를 이고 집니다.
이제 <한겨레>는 언론 사상 처음으로 칼럼니스트를 공모합니다. 더 다양한 통찰과 감성을 발굴해 독자와 연결짓길 희망합니다. 희망이 절망에게, 슬픔이 기쁨에게, 과거가 현재에게, 꿈이 꿈에게, 그래서 우리가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한칼’, 시작합니다. 함께해주세요.
■ 누가 : 할 말이 있는 지구인 누구(개인, 글쓰기모임 등 단체)든
■ 무엇을 1 : 전체 전문 주제(제한 없음)와 각 소재 등이 담긴 6~12회 기획안, 그중에 포함될 칼럼 2편(편당 2000자)과
■ 무엇을 2 : 공통 질문에 대한 300자 이하의 답변을
■언제 : 2월23일 22시까지 6주 동안 지원해주시면 됩니다.
■ 보내실 곳 : opinion@hani.co.kr (이메일 제목: <한칼 공모> 성함)
* 공통 질문(답변은 모두 300자 이하)은 4가지입니다.
―지원한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선발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본인의 칼럼을 더 널리 다른 독자청중과 공유할 방안을 알려주세요.
* 단체가 선발될 경우, 한 코너를 소속 회원들이 나눠 연재하면 됩니다.
* 선발된 분들께 칼럼니스트 자격과 칼럼당 책정된 원고료를 드립니다.
* 성윤리, 표절 등의 문제가 확인될 경우 선발, 게재 등을 취소합니다. 지원서류는 돌려드리지 않습니다. 온라인 접수만 가능합니다.
* 문의: (02)710-0631, opin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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