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구 싱글맘과 고무신 선거[광화문]
1990년 3월 서울 망원동의 한 연립주택 지하에 불이 나 세들어 살던 권모 씨의 5살 딸과 4살 아들이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당시 한겨레신문 기사에 따르면 권 씨와 부인 이모 씨는 각각 경기 부천시와 서울 합정동으로 경비원과 가사도우미 일을 나가 있었다.
아이들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문과 현관문을 잠가뒀기 때문에 불이 났을 때 아이들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농사를 짓다 상경한 부부는 처음엔 아이들을 고향에 있는 70대 노모에게도 맡겨 보고 수고비를 주고 이웃에게도 부탁해 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집 300미터 떨어진 곳에 유아원이 있었지만 운영 시간이 부부의 근무 시간과 맞지 않아 부부는 하는 수 없이 점심 상과 요강을 준비해 놓은 뒤 문을 잠그고 일터에 나갔다.
보도를 접한 많은 이들은 채 피지도 못한 생명들의 죽음에 안타까워했다. 누군가는 성금을 보내기도 했다. 정태춘의 ‘우리들의 죽음’이라는 노래의 가사에 담겨 한동안 도시빈민의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회자됐다.
새해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들려 온 한 사회면 기사가 30년 전 그 비극을 떠올리게 했다. 기록적인 한파가 이어지던 날 서울 강북구의 한 동네에서 내복만 입고 헤매던 세 살짜리 아이가 주민들에게 발견됐다.
20대 엄마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키웠다. 모자보호시설에서 나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양육과 생계를 동시에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아이가 유독 보채 어린이집을 보낼 수 없었다.
아이가 내복 차림에 밖을 헤맨 날도 생계를 위해 자활근로기관에 일을 하러 나간 상태였다.
종일 일을 해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한달에 140만원인데, 육아도우미를 부르려면 적어도 200만원은 줘야 한다. 아이는 혼자 있다가 안에서 쉽게 열리는 현관문을 열고 나갔지만, 혼자 다시 밖에서 문을 열 수 없었다.
다행히 30년 전 망원동 남매처럼 더한 비극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는 취약계층이 아직 많다는 것을 일깨우기엔 충분했다. 사건이 보도되고 얼마 뒤 엄마는 아이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반일제 근로를 구했다고 하지만 그나마 빠듯하던 수입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친모를 비난하고 아동학대 혐의로 처벌한다고 해서 사회가 더 나아질 거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경제적으로 여유는 좀 더 있다고 하더라도 코로나19 때문에 EBS 화상수업을 듣는 아이들을 남겨 두고 아침마다 떨어지지 않는 출근길 발걸음을 떼야 하는 맞벌이 부부들도 잠재적인 아동학대범들이다. 동변상련의 감정은 그들의 것이다.
적게는 수조원, 많게는 십수조원씩 뿌려진다는 재난지원금이 그들의 삶의 무게를 덜어줄 수 없다. 선거를 앞두고 뿌려지는 돈은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게 아니라 득표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곳에 쓰인다.
정치권은 오래 전부터 돈을 뿌리는 게 득표에는 즉효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막걸리 선거, 고무신 선거가 통했다. 부끄럽게도 우리는 ‘우선은 먹고 보고, 우선은 신고 보자’는 유권자였다. 지금은 뿌려지는 돈의 출처만 사비 또는 검은 돈에서 국민 세금으로 바뀌었다.
4차 재난지원금을 4월 지자체장 보궐선거 전에 지급할 것이냐, 이후에 지급할 것이냐로 싸우는 정치권이 저소득층과 맞벌이 부부들의 보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하는 것조차 이제는 상투적으로 들릴 정도로 위험 수준까지 치달았고, 장래 그 많은 나랏빚을 갚을 이들은 우리의 아이들인데도 말이다. 아이들은 줄고, 그만큼 보육 문제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유권자는 줄어들고, 정책 순위에서도 떨어지는 악순환은 이미 시작됐다. 아이들이 미래라면, 개인을 악마화할 줄만 알았지 현실을 내버려 두는 것은 미래를 방치하고 학대하는 것이다. 민주, 국민, 정의라는 숭고한 말들도 그냥 공허하다.
고무신 선거가 30년 전 망원동 비극을 막지는 못했다. 가깝게는 서울·부산시장 선거, 좀 더 길게는 대선을 앞두고 살포되는 돈다발이, 현실이 버거운 부모들의 의도하지 않은 제2, 제3의 ‘아동학대’를 결코 없애지 못할 것이다. 미래를 위해 투표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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