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반일 프레임만으로 구한말을 말할 수 있을까

박훈 2021. 2. 2.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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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국노 이완용은 독립협회 회장, '친일파' 김옥균은 北서 애국지사

구한말 역사를 읽다 보면 일본에 대한 증오감이 절로 생긴다. 그래서 일본과 손잡고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쉽게 ‘친일파’ 딱지를 붙인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세계 유수 국가에 살고 있는 현재가 아니라 당시인들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일본은 밉고 위험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문명 개화 국가였고 상대적으로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나라였다. 그 과정에서 우리 역사에는 참담한 상처와 흉터가 생겼고, 그중 어떤 것은 암 덩어리로 변하기도 했다.

1884년 갑신정변의 주역들인 (왼쪽부터)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김옥균. 김옥균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한국 병합을 주도한 일본인에게 추앙받았으며, 박영효는 일제의 작위를 받았다.

한일 관계사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당혹스러운 장면이 너무 많다. 매국노 이완용은 독립협회 회장이었고, 김옥균과 함께 갑신정변을 주도한 박영효는 일제의 작위를 받았다. 북한까지도 ‘애국지사’로 인정한 김옥균은 한국 병합을 주도한 일본인들에게 추앙받는 존재였다. 쉽게 이해되는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불편하다. 한 인간의 삶에 토착 왜구와 애국지사가 섞여있고, 그 사상에는 친일과 민족주의가 함께 있다. 단칼에 선악정사(善惡正邪)가 구분되기는커녕 무슨 난마처럼 우리 심기를 어지럽힌다. 김구나 이승만처럼 살았다면 판단하기 좋았겠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그러지 못했다. 이것은 지금의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A라는 노선과 규탄해 마지않는 B의 거리가, 당시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는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점을 자부심 가득한 대한민국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세계사상 근대 한일 관계사만큼 복잡하고 착잡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 속에서 뭔가를 해보려던 사람 중 많은 수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서 자기 분열을 겪었다. 그러니 이에 대해 접근하고 평가하려면 매우 섬세하고 신중해야 한다. 친일과 반일 프레임만 갖고는 이 거대한 착종(錯綜)의 바다를 계측할 수가 없다. 친일파 몇 명 부관참시하고 애국지사 몇 분 신격화하는 역사 서술로는 이 시대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 시기 한일 관계의 당혹스러운 지점들을 정면에서 응시하는 노력이 아직은 부족한 듯하다. 사납게 공격하다 모호한 점이 나타나면 그냥 한 묶음으로 규탄해버리든가, 그래도 처리하기 곤란한 사실들은 그냥 외면하고 쉬쉬한다.

나라가 없을 때나 약했을 때는 이런 태도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이미 세계 주요 국가로 성장한 지금, 이제 우리 역사를 단순화해서 보는 시각에서 좀 벗어날 때가 되었다. 한일 관계사에는 정말로 박멸해야 할 암 덩어리 같은 일과 인물도 있었다. 그것들은 철저히 도려내야 할 것이다. 다만 상처와 흉터는 없는 척하거나, 친일파라며 규탄하고 끝낼 게 아니라, 솔직히 드러내 치열하게 논의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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