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가는 세상 바꾸는 비즈니스 위해, 우리가 뭉쳤습니다"
‘가능한 최선의 우주’. 도현명(37) 임팩트스퀘어 대표와 정경선(35) HGI 의장 겸 루트임팩트 CIO를 만나고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말을 떠올렸다. 칼 세이건은 “인류가 우주를 전부 이해하는 건 영영 불가능하지만, 아직 더 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발견이 있기 때문”에 “인류는 가능한 최선의 우주에 살고 있다”고 했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도 마찬가지다. ‘인생은 고통의 바다’란 말이 있을 정도니, 어떤 문제도 없는 완벽한 세상은 누구도 만들 수 없다. 그 때문에 ‘소셜 섹터’에서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마음 한편에 크고 작은 패배감을 안고 산다.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애초부터 달성 불가능한 일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도현명 대표와 정경선 의장은 10년 전부터 불가능의 세계에 뛰어들어 ‘가능한 최선의 현실’을 만들어온 사람들이다. 정경선 의장은 2012년 체인지메이커 지원 기관인 ‘루트임팩트’를 설립하고 서울 성수동에 혁신가를 위한 코워킹 스페이스인 ‘헤이그라운드’를, 2014년엔 임팩트투자사 ‘HG 이니셔티브’를 만들며 성수동 소셜밸리를 일궜다. 도 대표 역시 소셜 섹터에서는 명성이 자자한 실력자다. 네이버 출신으로 2010년 임팩트스퀘어를 창업했다. 당초 임팩트 비즈니스 컨설팅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투자·액셀러레이팅까지 보폭을 넓혔다. 대기업 임원, 정부 고위직까지 임팩트 비즈니스가 막힐 때마다 그를 찾는다.
그런 두 사람이 새로운 ‘작당 모의’를 한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내년부터 HGI와 재밌는 일을 벌일 건데, 한번 만나시죠.” 지난 연말, 도 대표가 전화를 걸어왔다. “이 얘기를 하려면 경선 대표도 꼭 같이 만나야 해요. 그런데 경선 대표가 지금 이 건으로 싱가포르에 있습니다.” 두 사람이 새로 시작한 일에서도 싱가포르가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지난달 22일, 서울 성수동 포틴립에서 두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세계관이 통하는 사이
두 사람의 인연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학생이던 정경선 의장이 임팩트스퀘어 운영 2년 차인 도현명 대표를 찾아왔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비즈니스를 하고 싶습니다.” 빼곡한 질문지를 들고 찾아온 ‘착해 보이는 학생’에게 도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일엔 돈이 많이 필요해요. 대학생에겐 어려울 겁니다.” “돈은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데….” 얼마 뒤 그 학생이 다시 찾아왔다. 돈을 구했다면서 도 대표에게 “혁신가를 돕는 커뮤니티를 만들겠다”고 했다. ‘루트임팩트’의 시작이다. 인연을 이어오다 도 대표는 임팩트스퀘어 이사를 HGI에 파견해 초기 세팅을 돕기도 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을 끈끈하게 묶은 건 ‘세계관’이다. 정경선 의장은 “1세대 사회운동가에겐 ‘민주주의’라는 공통의 철학이 있었는데, 지금 청년 혁신가들은 어떤 세계관과 철학을 가져야 하는지가 고민이었다”고 말했다. 도현명 대표는 “소셜 섹터 내의 논의가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형태’ 논쟁에 머물러있던 게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철학’을 고민하는 동료가 생긴 게 반가웠다”고 했다.
수도 없이 만나 끝도 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찾은 게 ‘디스토피아’론이다. 세상이 망해간다는 철저한 현실 인식이다. 다만 ‘망해가는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달랐다. 정 의장은 “종말은 막을 수 없으니 방공호를 만들자”고 했고, 도 대표는 “설루션을 만들어 막아보자”고 했다. 같고도 다른 두 사람은 늘 서로에게 조언을 해주며 신뢰를 쌓아왔고 지난해 본격적으로 협력해 시너지를 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지속가능한 미래 얼라이언스
‘지속가능한 미래 얼라이언스(SFA·Sustainable Future Alliance)’는 HGI와 임팩트스퀘어가 함께하는 새 프로젝트 이름이다. 말 그대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방공호와 설루션을 만들자는 모임이다. 정 의장은 “대기업을 포함해 아시아 내의 모든 비즈니스가 ‘임팩트 중심’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오픈 이노베이션’ 협력체”라고 했다. 그는 “국가별 사회문제나 정책이나 기존 설루션에 대한 연구, 대기업과 소셜벤처 모두를 대상으로 임팩트 비즈니스 컨설팅·육성, 협력 시 시너지가 날 조직 간 연계, 임팩트 측정까지 ‘임팩트 비즈니스’ 전환을 위한 모든 지원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회원사의 지속가능 비즈니스 전환을 위한 모든 일을 하는 ‘지속가능 비즈니스 특공대’다.
사업의 큰 틀은 HGI가 끌고 가되, 소셜벤처 육성과 임팩트 측정 분야는 임팩트스퀘어가 이끈다. 도 대표는 “오는 5월경 공식 출범 예정”이라고 했다. 현재 각 나라 상황을 분석하고 주요 대기업 등 파트너를 모으고 있다.
사업 본거지는 한국이 아니라 싱가포르에 둔다. 한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임팩트 비즈니스 확산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아세안의 허브 국가라 여러 나라와 협력하기 쉬운 데다, 싱가포르 정부가 기후 위기 해결 분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면서 국내 작은 시장에 머무를 필요는 없지요. 동남아시아는 가장 급속도로 발전하는 지역으로, 기후 위기에 많은 영향을 주면서도 또 큰 피해를 보는 지역 중 하납니다. 여기서 비즈니스 작동 방식을 바꾸면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도현명)
“비즈니스가 발전하는 단계라 아예 초기 세팅을 ‘임팩트 중심’으로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또 피해가 심각하다 보니 친환경 소재 등 일부 분야에선 한국보다 더 나은 기술이나 임팩트 모델을 갖춘 곳도 있습니다.”(정경선)
이들이 중시하는 건 ‘데이터’와 ‘성과’다. 같은 배에 탄 두 사람은 낙관(도현명)과 비관(정경선)을 동력으로 신사업의 목표를 설명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입으로 ‘임팩트’를 말하는 ‘가짜 영웅’이 아닙니다. ‘진짜 세상을 바꾸는 비즈니스’죠. 한국 사회 혁신 생태계 체력은 이제 그만큼 올라 왔어요. 이제 거대 비즈니스도 움직일 차례입니다. 진짜 세상이 바뀌도록요.”(도현명)
“원래 비즈니스는 인류가 꿈꾸는 걸 팔아 성장하지요. 우리 목표는 ‘망해가는 세상에서 인류 생존’이 비즈니스의 꿈이 되도록 하는 겁니다.”(정경선)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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