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제 망쳤지만 핵 있잖으냐"며 개혁·개방 싹 자른 김정은
김정은은 이번 8차 당대회를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두 가지 메시지를 전달했다. 하나는 ‘경제는 실패했으나 핵 개발에선 큰 성과를 내지 않았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가 어렵지만 참고 견뎌달라’는 것이었다.
김정은이 9시간에 걸쳐 낭독한 사업총화 보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방력 강화’라는 치적 선전이었다. 지난 5년간 ‘핵전쟁 억제력과 자위적 국방력 강화’를 통해 북한을 ‘세계적인 핵 강국, 군사 강국’으로 부상시킨 것을 자신이 이룩한 ‘가장 뜻깊고 긍지 높은 대승리’라고 자화자찬했다.
동시에 김정은은 새로운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제시했다. 민생 향상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며 ‘자력갱생 투쟁’에 동참을 독려하는 내용이다. 그만큼 경제난으로 인한 민심 이반이 심각한 수준임을 인식하고 분위기 전환이 절실하다는 판단을 했다는 의미다. 이것이 ‘견뎌 달라’는 메시지다.
김정은이 2박 3일간 강조한 5개년 계획을 살펴보자. 핵심은 “여전히 자력갱생, 자급자족”이다. 거창하게 ‘5개년 계획’이라고 포장했지만 구체적 숫자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평양·검덕에 살림집 7만5000세대 건설’ ‘시멘트 800만t 생산, 모든 시군에 매년 1만t씩 분배’ 정도가 전부다.
앞서 김정은은 당대회 첫날 개회사를 통해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수행 기간이 끝났지만 내세웠던 목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됐다”며 실패를 고백했다. 더 나아가 김정은은 과거 사업 방식의 문제점도 일부 지적했다. ‘신(新) 5개년 계획은 과거와 다를 것’이란 메시지를 발신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의 반성은 자아비판이라기보다는 ‘남 탓’에 가까웠다. 김정은은 경제가 망가진 우선적 요인으로 “적대 세력들이 감행한 최악의 야만적인 제재·봉쇄 책동” “혹심한 자연재해” “지난해에 발생한 세계적인 보건 위기의 장기화”를 꼽았다. 하지만 제재는 자신의 ‘핵 폭주’가 자초한 것이고, 방역을 빌미로 한 국경 봉쇄도 과도했다. 홍수·태풍 피해도 치산치수 소홀이 원인이다. 설사 3중고가 아니더라도 경제 개방이 없는 한 경제 회생은 요원했다.
물론 김정은은 북한 내부의 ‘그릇된 사상 관점과 무책임한 사업 태도, 무능력’을 지적하긴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김정은이 지적한 내부 문제의 근원이 당·군수·민생 경제가 따로 노는 분절 경제, 무엇보다 개혁 부재에 있다는 데 대해 김정은은 무지했다.
김정은이 정말 5개년 계획 성공을 원한다면 알아둘 게 있다. ‘내각이 경제 문제를 통일적으로 장악하라’는 김정은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노동당과 군 산하 경제 단위들은 통계 제공조차 소홀히 했다. 과학기술 투자도 민생 경제가 아니라 국방 공업에 편중됐다. 전력·강재·외화 등 중요 자원의 배분에 앞서 내각과의 사전 협의를 의무화했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내각을 패싱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번 당대회를 통해 박봉주 전 총리 등 그나마 민생 경제 회복을 고민했던 개혁 간부들 다수가 사라졌다.
경제 실패에 대한 김정은의 인식이 ‘부하 탓’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북한 경제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부하들에 대한 책임 전가는 역대 북 최고 지도자들이 경제 실패의 책임을 덜기 위해 최종적으로 택했던 방식이다.
가장 근본적인 한계는 개혁·개방에 대한 거부감과 김정은 유일 영도 체계 강화 기조가 정비례한다는 데 있다. 김정은 집권 초기만 해도 ‘젊고 해외 유학 경험도 있으니 개혁·개방에 대해 열려 있을 것’이라던 세간의 기대 섞인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우리가 지난 10년간 목격한 대로다. ‘자력갱생, 자급자족’으로 점철된 이번 당대회는 아예 개혁·개방 논의의 싹을 잘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정은이 선언한 ‘그 어떤 외부적 영향에도 흔들림 없는 경제’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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