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미혼부도 ‘아빠’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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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돼 다행이에요.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작년 12월 법원으로부터 두 살 아들의 출생신고 권한을 인정받은 충남의 A(45)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미혼부다. 사실혼 관계였던 외국인 친모는 2019년 아이를 낳고 두 달 만에 집을 나갔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채였다. 뒤늦게 신고를 하려던 A씨는 한국 법이 미혼부에겐 출생신고 자격을 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이 때문에 아이는 필수 예방접종도, 건강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A씨는 6개월간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주민센터·시청에 사정하고, 매달려도 봤지만 “엄마를 찾아와라, 절차상 방법이 없다”고 했다. 밤마다 잠든 아이를 보며 가슴을 쳤다. 낮에는 아이를 안고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다. 이를 딱하게 여긴 한 식당 주인이 카운터 옆에 간이침대를 놓고 아이를 돌보며 일할 수 있게 해줬다.
A씨는 작년 5월에야 미혼부 지원단체로부터 소위 ‘사랑이법’이란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미혼부도 예외적으로 법원 허가를 통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법이었다. 하지만 문턱은 높았다. 친모의 이름, 등록 기준지, 주민등록번호를 몰라야 했다. A씨는 법원에 가서 “친모가 외국인이라 본명을 모른다”고 주장한 끝에 간신히 신고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유전자 검사로 친부임이 증명되고, 친모가 양육 의사가 없다는 게 확인되면 아이를 위해서라도 국가가 신고를 받아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런 당연한 말이 통하지 않는다. 출산할 때 병원에서 받은 ‘출생 증명서’에 친모의 인적 사항이 적혀 있다는 이유가 대부분이다. 본디 엄마의 권리를 보호하려 만든 법안이 친부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곳곳에 아이의 출생신고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미혼부가 많다. 친모의 전 남편이 이혼을 안 해줘 출생신고를 못 하는 아빠, 가출한 친모의 이름을 안다고 신청을 거부당한 아빠…. 지난 15일 인천에서 숨진 친부 최모(46)씨도 그런 아빠였다. 여덟 살 난 딸의 출생신고를 번번이 거절하던 사실혼 관계의 친모 백모(44)씨가 딸을 살해하자 “딸을 혼자 보낼 수 없다”며 최씨도 함께 세상을 등졌다. 성실한 택배기사였던 최씨의 차량에는 딸이 그린 ‘아빠와 딸’ 그림이 걸려있었다. 휴대전화엔 별거 상태였던 아내에게 보낸 ‘하민이(딸) 춥지 않게 입으라고 해’ 같은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작년 6월 미혼부의 출생신고 권한을 인정하자는 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법사위에서 논의조차 없다. 김지환 미혼부가정지원협회 대표는 “아무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아이가 태어났다면 ‘유령 아이’로 만들 게 아니라 홀아빠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앞으로 몇 명의 아이가 더 ‘복지 사각지대’에서 구조돼야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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