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중국에 관한 한 트럼프가 옳았다
美의회 초당적 지지 속 바이든도 이어받을 것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을 하루 앞둔 지난달 19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후보자에 대한 미 상원 청문회에서 ‘특이한’ 발언이 나왔다. 바이든이 취임과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각종 정책을 모두 뒤집겠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블링컨 후보자는 트럼프의 정책 하나를 콕 집어 계승의 뜻을 밝혔다. 그는 “중국에 강경한 접근법을 취한 트럼프 대통령은 옳았다. 우리 외교에 도움이 됐다고 믿는다”고 했다. 공화당이 즉각 화답했다. 론 존슨 공화당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사람이 중국의 사악한 의도에 대해 눈을 뜨도록 해줬다”고 말했다. 이 순간 미국의 대중 강경 노선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추진될 것임이 확실해졌다.
개인적으로 트럼프란 인물에 부정적이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본 신문 기사가 아직 생생하다. “1959년 13세 소년 트럼프는 음악 교사에게 주먹을 휘둘러 눈을 멍들게 했다. 교사가 음악에 대해 쥐뿔도 몰랐다는 이유였다.” 선거 때 상대 후보나 경쟁 당에 대한 공격·비판은 “그럴 수 있다”고 넘겼는데 트럼프의 사람 됨됨이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후 4년 동안 이런 인상을 바꿀 계기를 못 찾았다. 최근엔 그가 재임 기간 3만573번 거짓말을 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하지만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구석이 있다. 미 갤럽에 따르면 트럼프의 재임 중 평균 지지율은 41.1%였다. 미 국민 상당수가 그를 지지하는 게 엄연한 사실이다. 이유 중 하나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대중(對中)’ 전략이라고 본다. 트럼프는 중국이 적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했고, 공격적인 전략을 실행에 옮겼다. 이전 어떤 미국 대통령도 하지 못한 일이다.
지난 6일 열린 바이든 대통령 당선 확정을 위한 미 상·하원 합동 회의를 앞두고 국내에서도 “미 대선 결과가 뒤집힐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상·하원 회의에서 일부 개표 결과가 무효화되고, 상원 의장인 펜스 부통령이 대선 결과를 뒤집을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국내에도 이런 극성 트럼프 지지자가 많다는 걸 알면 놀랄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지·응원 수준을 넘어 거의 영웅시하는 경우도 봤다. 최근 한 트럼프 지지자를 만났더니 “트럼프야말로 중국의 정체를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어 본 인물”이라고 했다.
미래학자 기 소르망은 2000년대 초부터 공산당 1당 독재의 중국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럼에도 서구 사회가 경계심을 갖지 않은 건 두 가지 전략적 판단 착오 때문이었다. 첫째 중국이 이토록 빠르게 성장해 엄청난 부를 쌓을 거라 예상 못 했고, 둘째 잘살게 되면 한국처럼 자유민주주의가 꽃필 거라 오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4년 초 한 인터뷰에서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인 2021년 중국 1인당 GDP는 2010년(4434달러)의 2배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중국 1인당 GDP는 이미 작년에 1만7200달러(IMF 통계)에 달했다. 그런데도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 싹은 찾아보기 어렵다. 부자인 중국은 더 위험한 존재가 됐다.
파이낸셜타임스가 2018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미·중 충돌을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대국이 구조적 긴장 때문에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는 ‘가치 중립적’ 진단으론 미·중 격돌의 의미를 제대로 담을 수 없다. 이 대결은 아테네와 스파르타 중 누가 이길까 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누가 승자가 되느냐에 따라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나라가 한국이다. 우리가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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