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수시로 소통하겠다던 文의 초심[청와대 풍향계/박효목]
지난해 10월 청와대가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청와대 출입기록 제출 요구를 거부했다고 밝혀 논란의 중심에 섰을 때다. 청와대 참모들은 기자에게 이같이 말하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한결같이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해 왔다. 굳이 (제출 거부)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었는데…”라고 했다.
당시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공공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출입기록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했지만, 해당 보도가 나간 뒤 상황을 파악한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비공개 회의에서 이런 지시를 내리면서 “불필요한 오해를 살 필요가 없다”는 당부도 덧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진즉에 문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협조할 생각이 있음을 공개적으로 분명히 밝혔다면 이런 논란을 피할 수 있었다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하반기 정국 갈등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감사로 촉발된 감사원과 여권의 대립으로 극에 달했다.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까지 떨어졌고 정치권에선 “레임덕이 왔다”는 소리가 나왔다. 무엇보다 이런 갈등은 적지 않은 국민들에게 ‘윤석열 찍어내기’ ‘최재형 찍어내기’로 비쳤다. 논란이 커지자 여권 일각에서 “이들을 임명했던 문 대통령이 진정 원하는 그림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 문 대통령은 참모진과 비공개 회의에서 “감사원의 감사가 잘못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국민들이 대통령의 진짜 의중을 알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국론은 분열됐고 국민은 혼란스러웠다.
결국 이 갈등은 문 대통령이 직접 입을 열고서야 잠잠해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 총장에 대해 “저의 평가를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그냥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감사원에 대해선 “정치적 목적의 감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검찰은 검찰의 역할을, 감사원은 감사원의 역할을 한 것이지, 그 수사나 감사가 정치적 목적이나 의도를 갖고 이뤄지지 않았다고 평가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나선 효과는 컸다. 기자회견 실시간 시청률 합계는 12.47%. 평일 오전 시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높은 수치였다. 국정수행 지지율도 소폭 상승했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그만큼 국민이 대통령의 책임 있는 언급을 기다렸다는 것”이라며 “블랙홀 같았던 이슈들이 이제야 정리가 됐다. 홀가분하다”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90년생 공무원이 왔다’는 책의 일독을 권하며 청와대 모든 직원들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미리 책을 읽은 문 대통령은 추천 메시지에 “국민과의 소통, 공무원들 간의 세대 간 소통부터 시작해 볼까요?”라고 적었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선 “국민들께서 소통이 부족했다고 느낀다면 앞으로 보다 소통을 늘릴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아마 앞으로 여건이 보다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도 했다.
국민들은 문 대통령의 남은 1년만큼은 이런 약속이 지켜질지 지켜볼 것이다. 기자회견이든, ‘국민과의 대화’든 국민들은 대통령의 생각을 직접 들을 권리가 있다. 무엇보다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는 현안들에 대해 대통령이 국민에게 명확히 설명하고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변화와 개선을 약속하는 것이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의 기본자세다. 새해를 달궜던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논의도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발언으로 어느 정도 방향이 정리가 된 것처럼 말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사에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 때로는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마지막 1년은 문 대통령의 ‘초심’을 보고 싶다.
박효목 정치부 기자 tree624@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