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트 어 케이크'[2030 세상/도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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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튜브 방송에 출연했다.
권지안(예명 솔비) 작가가 만든 케이크가 미국의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의 작품 '플레이도'를 표절한 것인지가 주제였다.
쿤스의 플레이도는 찰흙 장난감에서 모티브를 얻어 알루미늄으로 거대하게 만든 작품이다.
나는 알루미늄으로 된 쿤스의 작품이 찰흙 더미라고 잘못 알고 있었을 정도로 현대미술에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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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도는 미국 해즈브로사에서 만든 장난감 찰흙 브랜드다. 쿤스의 플레이도는 찰흙 장난감에서 모티브를 얻어 알루미늄으로 거대하게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찰흙 장난감에 독자적인 창작성을 부가한 ‘2차적 저작물’에 해당한다. 그녀는 그의 작품을 케이크로 형상화하겠다는 독자적인 창작성에서 케이크를 만들었으므로, 이는 ‘2차적 저작물의 2차적 저작물’이 되는 셈이다.
선거철이 되면 후보들의 논문 표절이 화제가 된다. 논문 특성상 다른 문헌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용할 때 원문의 출처 표시를 정확히 했는지가 표절의 쟁점이 된다. 그러나 예술 영역에서는 그 판단 기준이 다르다. 판례에 따르면, 독자적인 창작성을 인정받은 ‘2차적 저작물’의 경우 2차적 저작물에 원저작자를 표시하지 않았더라도 저작인격권 침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저작권법 위반죄는 친고죄이고, 침해소송도 원고가 소송을 내야 하기 때문에 쿤스가 권 작가를 상대로 민형사상 고소를 하지 않는 이상 법원의 판단을 받기 어렵다. 쿤스는 프랑스의 광고감독 프랑크 다비도비시에게 ‘겨울 사건’ 작품 관련 저작권 침해소송을 당한 적이 있는데, 그는 “예술은 표현의 자유를 가져야 하며, 해당 작품은 패러디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점을 보면 쿤스가 우리나라 법원에 그녀를 고소하진 않을 것 같다.
사실 표절 논란이 불거진 것은 그녀가 인스타그램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게시물을 올렸기 때문이다. 많은 댓글도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있었고, 나도 이런 의견에 공감한다. 다만 댓글 중에는 법관의 판단도 없이 표절이라는 단어를 단정적으로 사용하여 그녀를 폄훼하는 글도 많았는데, 이러한 댓글은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한편 그녀는 논란 중에 약 10분 동안 말없이 케이크를 먹기만 하는 ‘저스트 어 케이크(JUST A CAKE)’ 영상을 내놓았다. 앤디 워홀의 ‘햄버거 먹기(eating a hamburger)’를 오마주한 것이다. 이 영상의 제작 의도가 뭔지 모르겠지만, ‘예술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고, 특별할 게 없어’라는 현대미술의 철학을 표현한 게 아닐까 생각해 봤다.
나는 알루미늄으로 된 쿤스의 작품이 찰흙 더미라고 잘못 알고 있었을 정도로 현대미술에 관심이 없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현대미술 작품도 찾아보게 되고, 그게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생각해 보게 됐다. 이번 케이크 논란을 그저 한 작가에 대한 비난과 폄훼로 소모해 버린다면 여러모로 아쉬울 것 같다. 현대미술과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사상과 철학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로 삼는 것이 어떨까.
도진수 청백 공동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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