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시위 대신 '1車 시위'
지난달 26일 오후 2시, 경기도 성남시 판교역 인근에 가로 2m 길이의 전광판을 실은 3.5톤짜리 트럭이 등장했다. 전광판에는 ‘NC소프트 운영진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이 트럭은 전광판 문구를 바꿔가며 4시간 동안 NC소프트 본사 인근을 돌았다. ‘전광판 시위 트럭’의 등장에 지나가던 시민들이 발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이 트럭은 스마트폰 야구 게임 이용자 150여 명이 모금한 400만원으로 마련한 것이다. 게임사가 약속한 업데이트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고객의 문의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차량 한 대는 1인 시위로 분류돼 집회·시위 신고 의무가 없다.
코로나 여파로 단체 시위가 제한되면서 전광판 트럭, 래핑버스(광고로 덮은 버스) 등을 동원한 ‘신종 시위’ 방식이 등장했다. 시위 현장에 으레 등장하는 대형 스피커나 확성기, 빨간 띠를 머리에 두른 시위대도 없다. 알릴 문구를 정하고, 뜻 맞는 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송금’ 버튼만 누르면 순식간에 집회 하나가 만들어진다.
지난달 초에는 법원이 밀집한 서울 서초구 일대에 ‘사법 개혁 완수하자’ ‘법복 입은 애완견들’과 같은 문구와 강아지 그림이 그려진 래핑버스가 등장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850만원이 모금되면 운행하겠다'며 모금을 받아 진행한 것이다. 지난 1일부터는 개인 투자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나는 공매도가 싫어요!”라고 적힌 버스를 마련해 약 한 달간 청와대·국회·금융위원회 주변을 운행하고 있다. 아이돌 팬들도 ‘악성 게시물 유포자를 고소하라’ ‘앨범 발매 약속을 빨리 지켜라’ 등의 뜻을 담아 전광판 트럭을 엔터테인먼트사 본사 앞으로 보내고 있다.
한 무대 설치 전문업체 관계자는 “원래 래핑버스나 전광판 트럭은 정치인 선거나 가수 공연 홍보에 주로 쓰였는데 최근에는 시위용으로 쓰겠다는 문의가 하루에 2~3건씩 들어온다”며 “바빠서 단체로 모이기 어렵고,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이런 시위 방식이 생겨난 것 같다”고 했다.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이들은 래핑버스·전광판 트럭 시위가 있는 날, 시위 사진을 첨부한 게시물을 수백 개씩 올리며 온라인에서도 동시에 여론을 만든다. 최근 게임사 항의를 위해 트럭 시위 모금에 동참한 직장인 이모(32)씨는 “고객센터에 연락하면 매번 기계 같은 대답만 돌아오는데, 트럭 시위를 하면 게임사들이 간담회를 열거나 사과문을 올리는 등 반응이 즉각적으로 온다”며 “여론 형성에 효과적이라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 자꾸 뭉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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