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의 꽃, 명예를 잃고 권력도 잃다
미얀마 군부가 1일 쿠데타를 일으켜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과 윈 민 대통령 등 집권당 주요 인사들을 구금하고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쿠데타 후 실권은 미얀마군 총사령관이 장악했다. 2011년 군정(軍政) 종식과 함께 찾아온 ‘미얀마의 봄’이 10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미얀마 군 방송인 MWD에 따르면 군 출신인 민 스웨 부통령은 이날 ‘임시 대통령’ 자격으로 “선거 부정에 대응해 관련 인사들을 구금했다”고 발표했다. 또 “1년간 미얀마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입법·사법·행정 권한은 (민 아웅 흘라잉) 군 총사령관에게 이양된다”고 했다.
쿠데타가 일어난 이날은 작년 11월 총선 결과 구성된 의회가 개원(開院)하는 날이었다. 미얀마는 의회에서 대통령과 부통령 등 정부 각료를 선출한다.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집권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지난 총선에서 상·하원 선출 의석의 83%를 차지해 5년간 미얀마를 이끌 예정이었다. 하지만 군부는 총선에서의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앞서 아웅산 수지는 2015년 총선 승리로 정권 교체를 이뤄냈지만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던 군부와 사실상 권력을 분점해왔다.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族)을 탄압하는 군부를 옹호해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이번 쿠데타로 권력마저 잃게 됐다. 아웅산 수지는 국민에게 “쿠데타를 거부하라”고 촉구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軍部와 위험한 동거하다… ‘미얀마의 봄’ 10년만에 빼앗겨
아웅산 수지(75) 미얀마 국가고문(총리에 해당)이 1일 군부에 체포되면서 미얀마 정세가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그는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 인물이자 집권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이끈 인물이다. 선거 부정 혐의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군부에 체포된 그는 국민에게 “쿠데타를 거부하고 항의 시위를 벌이라”고 촉구했다.
미얀마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의 외동딸로 태어난 그는 외국 생활을 하다 28년 만인 1988년 귀국, 전국적으로 벌어진 민주화 시위 전면에 나섰다. 그로 인해 1989~2010년 사이 15년간 군부 정권에 의해 가택 연금됐다. 군부의 감시와 협박 속에서도 “진짜 감옥은 두려움”이라고 설파, ‘아시아의 만델라’라고 불렸다. 1991년에는 가택 연금 상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2010년 11월 가택 연금에서 풀려났다. 군부가 군정(軍政)을 포기하고 실시한 첫 총선 직후였다. 그의 정치적 행보도 빨라졌다. 2012년 보궐선거에서 그가 이끄는 NLD가 대승했다. 2015년 11월 총선에서 NLD가 의회 과반을 차지하며 정권 교체를 이뤄냈고 그는 국가고문 겸 외교장관에 취임했다. 자녀 국적(영국) 문제로 직접 대통령이 되진 못했지만 사실상 미얀마의 통치자로 여겨졌다.
하지만 집권 이후 상황은 순탄치 않았다. 미얀마 정부군이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族)에 대해 살인, 방화 등의 조직적 만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그가 이를 취재한 기자를 비난하면서 군부를 옹호하자 ‘아시아의 수치(羞恥)’라는 혹평을 받았다. 그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취소하라는 청원도 이어졌다.
미얀마 헌법에 따라 상·하원 의석의 25%를 차지하고, 국방장관 등의 지명권을 가진 군부와 지나치게 타협해 ‘군부의 얼굴마담’이라는 비판도 들었다. 개헌을 통해 군 권력을 줄이고, 불안한 권력 분점을 끝내야 한다는 당과 시민사회 요구에도 적극 나서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지지율은 80%에 육박했고,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NLD는 상·하원 중 선출 의석의 83%를 차지해 올해 집권 2기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이번 쿠데타는 군부가 총선 부정선거를 핑계로 아웅산 수지와 민주화 세력 몰아내기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웅산 수지와의 ‘불안정한 동거’를 끝내려는 군부가 본색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미얀마 군부는 1일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작년 총선 때 광범위한 부정선거가 이뤄졌다”고 했지만 그 근거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총선에서 군부 출신이 모인 제1 야당 통합단결발전당(USDP)은 선출 의석의 7%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상·하원 포함, 전체 의석에서 군부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86%에서 2015년 31%, 작년 30%로 쪼그라들었다. 이 때문에 미얀마 정계에선 쿠데타 가능성이 계속 제기됐는데 실제 현실이 됐다.
박현용 경희대 미얀마 지역연구센터 교수는 “부정선거는 표면적 이유이고, 실제로는 아웅산 수지와 NLD를 몰아내려는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5년간 권력을 잡은 NLD가 총선 승리로 재집권하게 되자 군부가 NLD를 미리 자르겠다는 의미”라며 “로힝야족 탄압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아웅산 수지에 대한 지지가 약해진 것도 배경”이라고 했다. 국제 인권 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의 존 시프턴은 BBC와 인터뷰에서 “수십 년 동안 미얀마를 사실상 통치해온 군사정권은 권력에서 한 발짝도 떠난 적이 없다”며 “그들은 애초에 민간인 권위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쿠데타는 이미 존재했던 정치적 현실이 드러난 것일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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