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나눔의 온정이 강했다

석남준 기자 2021. 2. 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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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열매' 8462억 역대 최다 모금, 기초수급 할머니도 적금 보냈다

2020년은 많은 사람에게 ‘최악의 한 해’였다. 지난해 2월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하면서 삶은 팍팍해졌고, 지갑은 얇아졌다. 1년 내내 ‘코로나 혹한기’였다. 하지만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는 온정은 어느 때보다 뜨겁게 타올랐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2020년 연간 모금액이 전년(6541억원) 대비 1921억원 증가한 8462억원으로 집계됐다”고 1일 밝혔다. 역대 최고 기록이다.

최악의 경제 상황 속에서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쌈짓돈을 꺼낸 개인 기부자와 법인의 기부액 모두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예종석 사랑의열매 회장은 “어려운 시기일수록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우리 국민들은 참으로 위대한 존재”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철원

◇작은 정성 모여 기적 이뤘다

거액의 기부금을 전달한 이들은 세상의 조명을 받았다. 잔잔하게 가슴을 울린 작은 기부는 세상을 밝혔다. 전북 사랑의열매에 17만1710원을 기부한 김규정(43)·홍은정(39) 부부는 뇌병변과 지체장애로 몸이 편치 않지만 한 해 동안 받은 기초생활수급비를 쪼개 나눔을 실천했다. 이 부부는 2009년 첫 아이 임신을 기념해 5만원을 기부한 뒤 12년째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부부의 첫째, 둘째 아이도 간식비로 받은 용돈을 아껴 정성을 보탰다.

당초 사랑의열매는 2020년 목표 금액을 전년보다 하향 조정했다. 하지만 한 푼 두 푼 모은 정성이 모이고 쌓여 기적을 이뤘다. 2020년 개인 기부 금액은 2661억원으로, 이전 최고치였던 2067억원(2019년)보다 594억원 늘었다(29% 증가).

80~90대 노인들의 쌈짓돈, 아이들의 ‘코 묻은 돈’도 기록 수립에 한몫했다. 지난해 7월 대구에 사는 90세 기초생활수급자 할머니는 “평소 넣던 새마을금고 적금이 만기가 돼 찾은 돈”이라며 100만원을 전했다. 임부칠(88)씨는 매달 1만6660원씩 1년간 모은 19만9920원을 기탁했다. 1만원·5000원·1000원권 지폐 3종, 500원·100원·50원·10원짜리 동전 등 화폐 종류별로 모아 더한 금액이다. 김성현(12)군은 2년 동안 차곡차곡 모은 동전과 지폐 등 9만4350원이 든 저금통을 인천 부평구 청천2동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기부했다. 김군은 “태어나서 처음 하는 기부라서 설렌다”고 말했다.

◇역대 최고액 익명 기부도 나와

끝내 자기 신분을 밝히지 않은 익명 기부자도 많았다. 2012년 1월 첫 기부를 한 ‘대구 키다리 아저씨’는 지난해 12월 5004만원짜리 수표와 함께 손편지를 남겼다. “스스로와 약속인 10년 기부를 마지막으로 기부를 마무리한다. 지난 10년간 나누면서 즐겁고 행복했다.” 그가 10년 동안 익명으로 기부한 금액은 10억3500만원에 달했다. ‘김달봉’이란 가명을 쓰는 기부 천사 여러 명은 전국 곳곳에 수천만~억대 기부금을 전달하면서 ‘나눔의 기쁨’을 전파했다.

지난달 29일 충남 논산시청에서는 누군지 알 수 없는 기부자가 “어려운 시국을 이겨내고 있는 이웃에게 힘이 되어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5억4000여만원을 전달했다. 기록상으로 확인 가능한 역대 익명 기부 최고 금액이었다.

◇다양한 기부 기록 쏟아진 한 해

지난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패션 브랜드 오아이오아이(OiOi)의 창업자 정예슬(31) 대표는 “나눔은 어린 시절부터 꼭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라고 했다. 그는 “중학교 때 급식비가 밀려 친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창피를 당하기도 했다”며 “나눔은 사람이 갖고 있는 최소한의 애정과 따뜻함”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아너 소사이어티엔 256명이 신규 가입했다. 전년보다 무려 26명이나 늘었다. 경북 영주시 권용호(70)·김동조(66)씨 부부는 지난해 12월 중순 4000만원을 기부했다. 앞으로 1억원까지 기부하기로 약정해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이들은 2015년부터 매년 연말 기부를 실천하고, 인근 10여 마을 어르신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는 봉사도 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기업 302곳을 대상으로 ‘코로나가 미친 영향’을 조사한 결과 75.8%가 ‘피해를 보았다’고 답했다. 많은 기업인에게 2020년은 존폐의 기로에 섰던 한 해였다. 하지만 법인 기부금은 5801억원에 달했다. 사랑의열매 관계자는 “법인 기부금이 2019년 4474억원보다 1327억원(30%)이 늘어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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