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의 인권과 삶]청와대 앞 농성장에서 일어나는 일
[경향신문]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폭설도 자주 내린다. 세찬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가 싶다가 겨울비가 오기도 한다. 한낮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고 체감온도는 한낮에도 영하 20도로 곤두박질치기까지 했다.
청와대 앞은 더욱 춥다. 그런 곳에서 천막도 없이 40일 넘도록 단식농성을 이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한진중공업의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씨의 복직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아무리 찬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도 한밤중에도 천막을 치지 못한다. 세월호 진상규명에 대한 대통령의 약속 이행을 요구하며 400일도 훨씬 넘기는 노숙농성을 해온 세월호 유가족들도 겨울바람 막을 천막 없이 길바닥에서 지냈다.
그러니 김진숙씨 복직을 요구하는 농성이라고 봐줄 리 없다. 처음에는 침낭마저도 새벽 6시에 걷어갔다가 밤 9시에야 주고는 했다. 겨울농성은 다른 철의 농성보다 곱절은 힘이 든다. 단식농성의 경우는 거기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한다. 사람이 속에 들어가는 음식이라도 있어야 에너지를 얻을 것이지만 40일도 넘은 한겨울 단식이라니…. 단식농성자들이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것만도 기적 같은 일이다.
이 농성은 지난해 12월21일부터 시작되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복직 거부에 항의하고 청와대의 결단을 촉구하기 위한 농성이었다. 애초에는 김진숙씨의 정년 연한인 지난해 말까지 하기로 했지만, 연내 복직은 무산되었다. 지난해 12월30일에는 당사자인 김진숙씨가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행진에 나섰다. 그는 암 환자다. 올 1월4일부터 항암치료를 받기로 했지만 청와대 앞에서 노숙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마당에 편히 암 투병을 할 수 없다면서 나선 길이었다. 목숨을 건 행진이다. 그 행진이 오늘로 29일째다. 처음 겨우 세 명이 출발했는데 길을 갈수록 세상에서 소외당하고 배제당한 이들이 행진 대오에 합류한다.
농성과 행진의 배경을 이루는 상황이 실로 이해가 안 된다. 이 일에 대해서는 두 달 전 칼럼으로도 썼다(2020년 12월8일자 ‘김진숙을 당장 복직시켜라’). 해가 바뀌었어도 그는 끝내 복직을 거부당한 1인으로 남았다. 마지막으로 현장에 돌아가 식당에서 노동자들과 밥 한번 먹고 나오겠다는 소박한 요구도 거부당한 채다. 최종적으로는 산업은행장이 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배임이라는 가당치 않은 핑계를 댄다. 전두환 정권 때의 부정의를 바로잡는 일이 여기서 막혀 있다.
한겨울의 찬 바람을 겨우 피켓 바람벽으로 막지만 눈이라도 올라치면 거기에 천 쪼가리 하나 덮는 것도 경찰은 야박하게 걷어가 버린다. 지난 일요일에는 41일째 단식을 하던 농성자들의 건강을 우려하는 인권단체들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때 경찰은 구호를 외친다고 순수 기자회견이 아니라면서 해산을 명령했다. 지난 토요일에는 넉넉히 거리를 두고 피켓과 촛불을 든 시위자들을 향해 감염병예방법을 들먹이면서 해산을 종용했다. 순수와 불법을 가르는 기준과 판단을 경찰이 임의로 해대는 일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익히 보아왔던 익숙한 풍경이다.
정치가 본연의 역할을 포기하고 침묵할 때 공권력은 기본권마저 자의적 판단으로 무시하기 일쑤다. 김진숙씨의 복직은 과거를 청산하고 해고를 남용하는 잘못된 노동관행을 지속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일이다. 이런 기본권 회복을 위한 조처를 취하지 않을 경우 공권력의 부당함은 확대될 것이다. 이전의 정권에서처럼 경찰의 보호 속에서 국민들의 절박한 기본권 요구를 외면하려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아무리 감염병에 의한 방역 상황이 중하다고 해도 기본권은 지켜져야 한다. 기본권을 침해당한 이들의 절실하고 참담한 농성과 행진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도록 대통령과 정치권이 적극 나서야 한다. 오는 7일이면 김진숙씨의 행진이 종착점인 청와대에 닿는다. 그 전에 이 일이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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