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개미군단 14인 "우리도 똑똑해져, 공매도 기관 돈잃는 고통 맛볼 것"
헝가리에서 태어난 이민자 출신 가보르 치스키(25)는 몇주 전 미국 게임 소매 업체 게임스톱 주식을 샀다. 장난처럼 가끔 둘러보던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개인 투자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읽고 투자를 결심했다. 그는 지난달 말 이메일로 보내온 인터뷰 답변에 게임스톱 주식을 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헝가리에서 부동산 공인중개업을 하던 홀어머니는 가게를 닫고 파산해야 했습니다. 금융위기를 촉발한 금융회사들은 여전히 승승장구하면서 막대한 자금력으로 개인 투자자를 공격합니다. 이제 반격을 시작할 때입니다. 참을만큼 참았다고요!”
미국 증시는 주식거래앱(로빈후드) 이름을 따서 ‘로빈후드 개미’라 불리는 미국 개미 투자자의 집단행동에 크게 휘둘리고 있다. 헤지펀드(대형 사모펀드) 등 공매도 투자자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처지에 몰린 게임스톱, AMC엔터테인먼트, 블랙베리 등의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여 주가를 폭등시키는 중이다.
주식을 빌려와서 미리 팔고 나중에 사서 갚는 공매도는 주가가 내려갈 때 돈을 버는 투자 기법이다. 주가가 오르면 손실을 본다. 공매도 투자자는 대부분 백기를 들었다. 이들이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다른 주식을 대거 팔면서 미국 증시가 요동치고 있다.
‘로빈후드 개미’는 도대체 누구이고,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일까. 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레딧’의 게시판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게임스톱 투자자 14명을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모두 20~30대다.
◇“그들도 돈 잃는 고통을 알 때가 됐다”
이들은 대부분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로 어린 시절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경험해 ‘공룡 금융사’에 대한 반감이 컸다. 또 디지털에 익숙해 온라인으로 정보를 활발히 공유하고, 공정·정의 같은 가치에 집착했다. 이메일 인터뷰는 ‘레딧’ 게시판에서 ‘좋아요’를 많이 획득한 인기 사용자를 대상으로 신청해 이뤄졌다.
치스키는 “금융위기 당시 헤지펀드는 개인 수천만명을 위기로 내몰고, 그런 개인이 낸 세금으로 구제 금융까지 받았다”고 했다. “당시 기르던 개가 동물병원 갈 돈이 없어서 세상을 뜰 지경이었다. ‘레딧’에서 키스 길이 게임스톱 주식을 매수해 공매도 세력을 벌하자고 이야기했을 때 난 생각했다. 그들에게도 돈을 잃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자고….” 키스 길은 레딧에서 게임스톱 주식 매수 캠페인을 촉발한 인물이다. 그 역시 30대 초반으로 한때 보험 설계사로 일한 평범한 ‘아저씨’로 밝혀졌다.
‘my-time-has-odor’란 아이디를 쓰는 레딧 사용자는 “2008년 금융 위기 때 집을 잃은 이들이 많았다. 그들이 분을 참지 못하고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에 갔을 때 바로 옆 식당 발코니에선 월가의 금융사 직원들이 비싼 옷을 차려입고 샴페인을 마시고 있었다. 지금 레딧 게시판엔 이런 글들이 넘쳐난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금융 위기 직후, 위기를 발생시킨 금융회사를 비난하며 전 세계적으로 번졌던 시위다.
◇“이젠 개인이 기관보다 영리하다”
이들은 공매도 세력과 혈투를 벌이고 있지만, 비장하지는 않았다. 재밌는 ‘짤’(사진·그림 등을 합성한 이미지)을 만들어 올리고, 게시판을 통해 캐주얼하게 정보를 유통하고 결집했다. 디지털 기술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며, 개인이 온라인으로 머리를 맞대서 ‘조직’을 뛰어넘는 정보력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IT 회사에서 일하는 저스틴 힌(29)은 “기관 투자자는 더 큰 자금력과 정보 때문에 개인을 이겨왔지만 이젠 달라졌다”고 했다. “개인 투자자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똑똑해졌어요. 집단적으로 힘을 합치면 헤지펀드를 뛰어넘는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공매도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답한 이는 한명 뿐이었다. 하지만 기관 투자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불공정한 공매도 시스템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캐나다에 사는 20대 대학생 ‘Averos_’(닉네임)는 말했다. “게임스톱은 실적은 부진했어도 새 이사진이 임명되었고 회사가 부활할 가능성이 있었어요. 하지만 공매도 세력이 들어와 올해 초부터 주가를 불공정하게 박살 내더군요. 올바른 행동일까요?”
공매도 투자자 앤드루 레프트 시트론리서치 대표는 게임스톱을 공매도한 직후인 지난달 21일 팔로어가 30만명인 트위터에 “게임스톱에 투자하는 놈들은 바보”라는 내용의 동영상을 올렸다. 이 영상은 레프트의 의도대로 게임스톱 주가를 떨어뜨렸지만 결과적으론 ‘개미 군단’의 분노를 폭발시킨 기폭제가 됐다.
‘johnydaggers’란 닉네임을 쓰는 한 20대 박사 과정 학생은 “게임스톱으로 1333% 수익을 올렸다”며 “공매도나 헤지펀드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는 회사를 짓밟기 위한 목적으로 공매도를 하는 일부 투자자에겐 분노한다”고 했다.
◇다른 ‘월스트리트베츠' 개미가 말하다
유명한 공매도 투자자라는 시트론리서치 앤드루 레프트는 공개적으로 “게임스톱에 투자하는 녀석은 바보”라고 말했다. “뭐야, 이 인간 자기는 똑똑하고 우리는 멍청하다고 저렇게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 게임스톱 주식 50개를 샀고 앞으로도 팔지 않고 버틸 것이다.
-헌터 칸, 코넬대 기계공학과 학생, 20대
공매도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주가가 내려간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특정 회사를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공매도에는 반대한다. 특히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빌린 주식보다 더 많은 주식을 공매도하는) 무차입 공매도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제프 크란츠(32), 시카고 스타트업 엔지니어
처음엔 남들이 요란스럽게 게임스톱 주식을 사기에 따라 샀다. 그런데 지난주(1월 말) 주식 거래 앱 로빈후드가 개인의 매수 금액은 제한하면서 헤지펀드 등 기관 투자자의 거래는 허용하는 행태를 보고 분노가 폭발했다. 로빈후드는 해당 헤지펀드와 평소 거래 관계를 맺고 있었고 막대한 수수료를 챙기고 있었다. 공정하지 않은 행태였다
-에드워드 화이트(28)
1달러를 가진 사람과 10억달러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치자. 자유 시장이라면, 이 둘이 돈을 벌 수 있는 확률은 같아야 하지 않나? 미 규제당국은 공매도 세력이 법망을 피해(’무차입 공매도' 등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지 않도록 규제해야 한다.
-Myllokunmingia(닉네임), 워싱턴주 거주, 27세
나는 게임스톱 이사진에 훌륭한 창업가 출신인 라이언 코언이 합류한 것을 보고 게임스톱 주식을 샀다. 그로부터 얼마 후 별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공매도 세력이 게임스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가 파산하길 원하는 몇몇 기관 투자자에 맞서서, 게임스톱이 가치 있는 회사라고 믿은 개인 투자자들이 있었다. 이들의 힘이 오히려 주가를 끌어올렸다.
-Humbuker(닉네임), 컴퓨터공학 학생, 20대
나는 비교적 얌전하고 보수적인 투자자였다. 하지만 지난주 로빈후드가 개인, 오로지 개인만의 거래를 제한하는 것을 보고 분노가 폭발했다. 유명 투자자 빌 애크먼은 코로나 확산 초기에 공매도를 한 후 ‘지옥이 오고 있다'고 방송에서 떠들었다. 그의 영향력으로 주가는 실제로 하락했다. 공매도 자체의 순기능은 인정한다. 하지만 대형 헤지펀드의 이런 행태가 옳은가?
-qwlow(닉네임), 20대
주식을 공매도한 다음에, 막대한 영향력을 이용해 그 회사 주식을 박살내는 공매도 투자자들의 전략은 옳지 않다. 반자본주의적인 행태이며, 혁신을 말살하는 투자법이다.
-Fargravem(닉네임), 화학공학과 학생, 22세
우리는 ‘큰손’들이 주도하는 시장에서 약간의 수익이라도 내서 삶의 질을 개선해보려는 캐주얼한 사람들이다. 지금의 시장은 마치 카지노처럼 돌아가고 있다. 기관 투자자가 딜러가 되어서 무조건 이기는 게임을 한다. 말 그대로 조작 아닌가?
-Ned-Flanderz(닉네임), 식자재 도매상, 33세
할아버지는 금융위기 때 모든 것을 잃었다. 주식 시장은 들여다보지도 말라고 나에게 말했다. 난 ‘공매도’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공매도가 시장을 망가뜨린다는 것을 느꼈고 한주 전 게임스톱 주식을 샀다. 할아버지를 위해 난 게임스톱 주식을 팔지 않고 버틸 것이다. 보고 계신가요, 할아버지!
-마크(닉네임 Parliament--), 3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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