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이책만은꼭] 권력은 시를 이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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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식의 실제 주인공은 스물두 살의 흑인 여성 어맨다 고먼이었다.
붉은색 머리띠에 노란색 옷을 입고 연단에 오른 이 '깡마른 흑인 소녀'는 자작시 '우리가 오르는 언덕'을 통해 불복과 불화와 불통의 권력에 맞서는 '시의 힘'을 전 세계에 보여 주었다.
덕분에 시 안에는 "승산 유무를 넘어선 곳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들어 있다.
권력은 현실에서만 힘을 쓰지만 시는 현실과 상관없이 실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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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복·불화·불통의 권력 넘을 용기 북돋아
“우리가 입은 손상, 우리가 헤쳐 가야 할 바다./ 우리는 짐승의 뱃구레에 용감하게 맞섰다./ 우리는 평온이 늘 평화가 아님을 배웠고,/ ‘공정’이 늘 정의가 아니라는 규범과 개념도 배웠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상처와 고난으로 가득하다. “짐승의 뱃구레”는 ‘아무 대안 없이 극한상황에 빠지는 것’을 뜻한다. 강자가 약자의 입을 막아 평화를 운위하고 권력이 공정을 앞세워 불의를 강요하는 지옥이 펼쳐지는 중이다. 시인은 묻는다. “이 끝없는 어둠 속 어디에서 빛을 찾을 수 있을까?” 절망의 질문은 아니다. 용기를 부르는 주문에 가깝다. “재앙이 우리를 패배시킬 수” 없다면서, 고먼은 “우리가 빛이 될 만큼 용감하다면/ 빛은 늘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서경식의 ‘시의 힘’(현암사)에 따르면, 시는 진실의 언어를 생성한다. “부정의가 이기고 있기에 정의를 묻고 허위로 뒤덮여 있기에 진실을 말하려고 싸운다.” 문제는 진실이 늘 희망의 교환권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는 진실을 투입하면 희망이 쏟아지는 자판기가 아니다. 이를 눈치챈 루쉰은 절망에 싸여서 말했다. “땅 위엔 길이 없다.”
답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모두 살아서 답을 찾는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길도 미리 놓여 있지 않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거기가 곧 길이 된다.” 따라서 누구나 걸어서 길을 내는 수밖에 없다. 희망은 아직 오지 않는 시간이나 언젠가 닿아야 할 장소가 아니다. 희망은 걸음 뒤에 놓여 있다. 희망은 상처 입은 발을 질질 끌면서도 “짐승의 뱃구레”에 맞서 용감하게 걷는 행위 자체에 존재한다.
서경식은 암흑과 절망의 자리에서 시의 언어가 일어서는 것을 본다. 한용운, 이상화, 윤동주, 박노해, 프리모 레비 등의 작품을 통해 시인들이 어떻게 “승리의 약속이 없어도” 싸우는지를 보여 준다. 그들의 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참담하고 냉혹한 현실을 정직하게 증언하는 동시에 답 없는 세계 안에서 침묵하지 않고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용기를 일으킨다. 용기란, 앞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 속에서도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을 위해 고난을 감당하는 능력이다. 좋은 시는 화해의 언어로 노래하지 않고 고통을 이겨내면서 분노와 용기의 언어로 속삭인다.
덕분에 시 안에는 “승산 유무를 넘어선 곳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들어 있다. 서경식에 따르면, 시는 승리를 위한 효율성이나 유효성을 따져서 말하지 않는다. 그런 언어로는 돈이나 권력을 이기지 못한다. 시는 “인간은 이러해야 한다거나, 이럴 수 있다거나, 이렇게 되고 싶다고 말”함으로써 재앙의 재 속에서 인간을 일으킨다. 시는 패배로부터 의미를 산출한다. 언어 속에서 다름을 실현하고 현재를 변형한다. 권력은 현실에서만 힘을 쓰지만 시는 현실과 상관없이 실현된다. “사랑하라, 희망 없이”는 늘 시를 작동시키는 명령어였다. 시인은 언어의 힘으로 가망 없는 현실을 이겨냄으로써 불멸을 얻었다. 권력은 시를 이기지 못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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