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윤회·광대·돌.. 몸짓으로 말하는 이 시대 담론들

박성준 2021. 2. 1.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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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위원회 선정 '올해의 신작' 4편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선악과 이후 인류역사 큰 변화 때 등장
과학문명의 발달 속 '진정한 소통' 물어
고요한 순환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인생의 굴레
삶의 단계적 인간 군상 다채롭게 그려
두 개의 혀 - A Double Tongue
드러냄과 보여짐에 중독된 현대사회
자아 상실한 채 광대 전락 존재 묘사

끝없는 물음에서 길을 찾는 나의 존재
국악기·록사운드 퓨전 공연 눈에 띄어
YJK 댄스 프로젝트의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2월 19∼21일 아르코예술극장).
“몸의 움직임은 말과 글만큼, 때로는 더 큰 임팩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춤은 현장 예술이고 눈앞에서 사라집니다. 그만큼 굉장히 소중한 것이고 더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주제를 찾게 됩니다.” -안무가 조재혁-
 
시대정신을 몸으로 탐구하고 성찰하는 무용의 2021년 무대가 열렸다. 시작은 문화예술위원회가 백사장에서 골라낸 조약돌 같은 ‘올해의 신작’ 4편. ‘사과’란 화두로 지식에 대한 인류의 욕망이 빚어낸 현실을 꿰뚫거나, 삶과 죽음이 돌고 도는 ‘윤회’, 그리고 존재에 대해 끊임없는 묻는 ‘돌’까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

인류 역사에 등장하는 사과는 항상 큰 변화를 이끌고 왔다.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이후 인류는 낙원을 떠나야 했고, 뉴턴 앞에 떨어진 사과는 비약적 과학 발전으로 이어졌다. 애플 아이폰은 아직도 진행 중인 모바일 혁명의 방아쇠를 당겼다.

안무가 김윤정이 이끄는 YJK 댄스 프로젝트는 이처럼 사과를 베어 문 인류의 욕망과 행복을 추적한 ‘그런데 사과는 왜 까먹었습니까?’를 2월 19∼21일 아르코예술극장 무대에 올린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베어 문 형벌로 낙원을 잃고 쫓겨났고, 그 후예인 우리 인간들은 과학을 찾았는데, 공교롭게도 과학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신에게서 멀어졌고, 현대사회의 우리는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인터넷 세상 속에서 알고리즘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김윤정 안무가는 최근 온라인으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문 형벌로 지금의 현실까지 왔다면 지금의 우리가 사과를 문 형벌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에서 시작한 작품”이라며 “빠른 문명의 발달 속에서 사과를 물었는데 행복한가, 자기다운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무용단 알티밋(Altimeets)의 ‘고요한 순환’. (2월 6,7일 대학로 예술극장).
◆고요한 순환

무용단 알티밋(Altimeets)이 2월 6, 7일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고요한 순환’은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삶과 죽음의 굴레 속에서 유한한 듯 영원한 듯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 불교 집안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레 윤회 사상을 접했다는 안무가 전성재는 윤회(輪回)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를 주제로 2010년부터 작품 활동 중이다. 이번 작품 제목은 ‘가까이 들여다보면 치열하고 복잡한 인간사이나, 멀리서 보면 그저 ‘고요한 순환’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다’라는 생각에서 나왔다. 삶의 단계를 따라 나아가는 인간 군상을 시각적으로 다채롭게 그려내기 위해 드로잉 퍼포먼스, 영상, 라이브 연주 등을 활용할 예정이다.

‘예술가의 궁극적 만남’을 뜻하는 알티밋은 201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무용원 출신이 창단한 단체. 전성재 안무가는 “예술 표현에 있어서 가장 원초적 재료인 ‘몸’을 이용해 근원적인 감정과 에너지를 표현해내는 춤 예술은 어쩌면 생명과 삶 그 기원에 가장 가깝게 접해있는 장르일지도 모른다. 이번 작품은 모든 생명에게 주어진 가장 공평한 것, ‘삶과 죽음’ 에 관한 이야기를 윤회적 관점으로 풀어보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다크서클즈 컨템포러리 댄스의 ‘두 개의 혀 - A Double Tongue’ (2월 19∼21일, 아르코예술극장).
◆두 개의 혀 - A Double Tongue

웃는 얼굴을 한껏 칠한 광대는 관객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한물간 서커스에나 있을 법한 어설픈 광대는 더는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광대는 사람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얼굴에 화장을 덧칠하기 시작한다. 결국 스스로가 만들어낸 여러 겉모습으로 인해 자아를 잃어간다. 욕구와 욕망이 강해질수록 짙어지는 화장, 두꺼워진 가면 이면엔 숨죽여 우는 자아와 점점 희미해지는 물음표가 있다.‘나는 누구인가?’

‘두 개의 혀’는 드러냄과 보여짐에 중독된 사회에서 ‘페르소나’의 폭주로 내면 균형이 무너지고 자아를 상실한 채 서서히 광대로 전락하는 존재로 현대인을 묘사한다. 발레에 기반을 둔 다크서클즈 컨템포러리 댄스 작품으로, 발레 움직임에 현대적인 감각과 직관적인 메시지를 더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를 무용수에 투영하고, 나아가 객관화된 자세로 자아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돕는다. 조현상 안무가는 “분장에 분장을 덧칠하면서 완벽한 모습으로 변해간다고 믿지만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피에로는 추하고 무너진 인간의 모습”이라며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 선택하기도 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2월 19일부터 21일까지.
휴먼스탕스의 ‘돌’ (아르코예술극장 2월 27,28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돌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의 존재는 끝없는 물음에서 길을 찾는다. 우리는 삶이 다하면 흙으로 돌아간다고 표현한다. 자연 속 잎이 피고 지듯이 삶은 자연과 닮아있다. 인간 자아 스스로를 하나의 ‘돌’이라 생각하여 그 삶의 철학을 ‘돌’에 담아 전달한다.

“돌을 인간에 빗대 은유하고 추상적으로 비유한 작품입니다. 자연 중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고 오래 함께 해온 것이 무엇이냐는 고민에서 시작했습니다.”(안무가 조재혁)

2015년 창단된 휴먼스탕스(휴머니스트+레지스탕스)의 ‘돌’은 흙 등이 굳어진 광물질 덩어리인 돌 속에 담긴 삶의 이치와 흐름을 몸으로 표현했다. 존재에 대한 끝없는 물음에서 얻은 ‘돌과 삶은 손에 쥐려니 무거운 것이지 놓으면 한없이 가벼운 것’이라는 깨달음을 기의 운용을 중시하는 한국무용의 특징을 살린 현대적인 움직임으로 치환해 선보인다. 국악퓨전 록밴드 ‘잠비나이’의 이일우가 작곡을 맡아 국악기와 록사운드를 결합했다. 조재혁은 “자연의 산물인 돌을 통해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아르코예술극장에서 2월 27,28일.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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