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싱어게인' 패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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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쇼는 끝났다.
명성과 성공은 나의 편이 아니었다.
그 별을 나침반 삼아 우리는 이 덧없고 무의미한 삶을 걸어간다.
음악은 언제나 삶의 시간을 새롭게 하고, 존재를 충만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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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쇼는 끝났다. 명성과 성공은 나의 편이 아니었다. 이제 평범한 음악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돌아가 나만의 음악 골방에서, 다시 숙명처럼 불안과 막막함을 마주해야 한다. 거기엔 아직 세상에 가 닿지 못한 음표와 언어들이 가엽게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훗날 이 세상에 다녀간 나의 흔적이 될 것들이다.
지난주 화제의 음악 경연 ‘싱어게인(jtbc)’ 패자 부활전을 봤다. 마지막 톱10 한 자리에 들지 못한 6명이 쓸쓸하게 퇴장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보여준 짧은 경연은, 왜 그 많은 가수들이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도 노래를 붙들고 있는지 그 이유를 보여줬다. 노래하지 않으면 삶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듯 모두가 간절하고 결연했다. 탈락자 중엔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걸 그룹 ‘크레용팝’의 멤버 초아도 있었다. 인기의 정점까지 갔다가, 어느 순간 까마득히 잊힌 그가 용기 있게 도전자로 나선 것이다. 새 동화는 쓰이지 않았지만, 그의 도전과 좌절은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다.
방송에서 잔인하게 패배라 이름 붙인 그곳이, 사실은 음악 본연의 자리다. 음악은 명성이 아니라 낮고 가난한 곳에 깃들 때, 가장 아름답게 숨을 쉰다. 가난한 마음이 가난한 마음으로 건너가 서로 어루만지며 존재를 확장할 때, 노래는 각자의 가슴에 간절한 소망의 별 하나가 된다. 그 별을 나침반 삼아 우리는 이 덧없고 무의미한 삶을 걸어간다.
음악은 자기 충족적이다. 노래를 불러본 사람은 안다. 외로울 때 혼자 조용히 읊조리기만 해도, 시간이 따뜻하게 나를 감싼다는 것을. 음악은 언제나 삶의 시간을 새롭게 하고, 존재를 충만하게 한다. 많은 뮤지션이 명성을 원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목표가 돼선 안 된다. 음악을 명성의 도구로 삼는 순간, 음악은 자유를 잃고 대중들 기호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대중들의 기호는 늘 변덕스럽고, 관심은 정치 투표처럼 편중된다. 한때 주류였던 록이 변방으로 밀려간 지 오래며, 지금 거짓말처럼 트로트 광풍이 불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음악 스타는 재능과 노력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들이 시대적 수요와 맞아떨어지는 아주 우연하고 희귀한 행운이 따라야 한다. 그 행운은 극소수의 몫이다. BTS의 성공 요인으로 ‘흙수저들의 노력’을 이야기하나, 그 정도 노력을 하는 뮤지션들은 많다. 그러니 아직도 무명인 당신은 그저 불운할 뿐이다.
‘가왕’ 조용필이라도 만약 이 시대에 활동을 시작했다면, 그의 성공을 장담하기는 힘들다. ‘싱어게인’ 심사위원단은 아마 한국적 솔 넘치는 그의 절창을 고루한 감정 과잉이라 지적했을 것만 같다.
내 주변엔 비인기 장르인 재즈와 블루스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뮤지션들이 많다. 그들은 자신의 음악을 위해 자발적 가난을 택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음악은 존재적 양식이며, 종교적 헌신의 대상이다. 이들뿐 아니다. 홍대 앞 클럽을 전진 기지로 삼은 수많은 인디 뮤지션들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각자의 간절한 이야기를 품은 채, 오늘도 어디선가 투지를 다지고 있을 것이다.
지난해 타계한 재즈계 대모 박성연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외롭고 괴로울 때면 난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래, 난 블루스를 더 잘 부르게 되겠구나.” 평생 따라다닌 생활고조차 음악적 축복으로 삼았다. 이 길을 따라갈 각오가 돼 있다면, 당신은 이미 승자다.
이주엽 작사가, JNH뮤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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