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주년 맞은 한국 창작 뮤지컬 대명사 '명성황후'..본질 지키고 모던함 더한 '유연한 변화'

이혜인 기자 2021. 2. 1. 21:4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성 스루' 형식 벗고 첫 대사 추가
양방언 편곡 참여·LED 영상 도입

[경향신문]

뮤지컬 <명성황후>가 올해로 공연 25주년을 맞았다. 1995년 초연 당시 뮤지컬 <명성황후>의 한 장면(위 사진)과 지난달 19일부터 시작된 25주년 공연 사진. 쇼온컴퍼니 제공

명성황후 시해 100주기인 1995년. 뮤지컬 <명성황후>가 예술의전당 무대에 처음으로 올랐다. 그후 거의 매해 공연되며 한국 창작 뮤지컬의 대명사가 된 <명성황후>가 올해로 25주년을 맞이했다.

일본·러시아·청나라 등 외세의 간섭으로 혼란스러운 조선 말기, 명성황후는 고종과의 혼인을 통해 왕실에 들어간다. 공연은 명성황후, 고종, 흥선대원군, 일본공사 미우라 등 핵심 인물들이 임오군란부터 을미사변까지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준다.

지난 1월19일부터 시작된 25주년 기념 공연을 보면, 본질은 지키면서 시대와 관객 요구에 맞게끔 ‘유연한 변화’를 이뤄낸 것이 돋보인다. 이번 공연에서는 <명성황후>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성 스루(Sung-Through·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루어지는 뮤지컬)’ 형식을 버리고 과감하게 대사를 추가했다. 윤홍선 프로듀서(제작사 에이콤 대표)는 “초연 때는 서양 뮤지컬 느낌을 많이 주기 위해 성 스루 형식을 택했었다”며 “하나 <명성황후>는 시대극이다 보니 고어나 궁중언어가 많아서 대사 전달력이 취약한 부분이 있어 대사를 넣는 것을 두고 오래전부터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윤 프로듀서는 “관객들은 물론 배우, 스태프들 모두 대사를 넣는 것을 원했었고, 반응도 좋다”고 전했다.

대사가 들어가면서 주요 인물들의 캐릭터도 더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윤 프로듀서는 “이번 공연에서는 캐릭터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역할별로 다른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고종은 ‘왕’으로서의 면모를 더 부각시키려 했고, 흥선대원군은 왜 그토록 자신의 신념에 집착했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명성황후는 그가 한 선택들에 대해서 좀 더 타당성을 부여하면서 균형 잡힌 시각에서 그려보려 했다”고 말했다.

좀 더 모던한 느낌을 내기 위해 음악, 안무, 무대디자인, 의상디자인 등에도 전반적 변화를 줬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뉴에이지 음악 작곡가인 양방언이 편곡에 참여했다. 윤 프로듀서는 “국악기를 많이 쓴 음악이나, 서양 악기와 전통 악기를 합친 편곡들로 인해 모던한 느낌이 난다”고 설명했다. 이전까지는 무대장치 외에 영상 배경을 따로 투사하지 않았으나, 이번 공연부터는 다른 대형 뮤지컬들처럼 LED 영상으로 장면마다 배경을 넣어서 보는 재미도 더했다.

가장 달라진 것은 2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명성황후’라는 역사적 인물을 바라보는 관객들 시선이다. 초연 당시에는 을미사변이라는 가슴 아픈 역사에 눈길이 갔다면, 이제는 명성황후라는 한 여성이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왜 그런 정치적 선택을 했는지를 생각해보면서 볼 만하다. 윤 프로듀서는 “명성황후는 여성의 정치참여가 금지돼있던 사회에서 직접적으로 정치에 관여했는데, 이런 행보들이 유교를 숭상하는 사대부들에게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왕비로 비춰졌을 것이다. 그의 선택이 항상 옳은 것이라 말할 수는 없겠으나, 열강들에 휩싸인 상태에서 한 선택들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말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