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현대미술가의 경계 지우기와 시공간 뒤집기

김상욱 |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2021. 2. 1.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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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 김상욱이 본 양혜규 개인전 'O₂& H₂O'

[경향신문]

‘미술관을 찾는 물리학자’인 김상욱 경희대 교수가 국내외적으로 주목받는 현대미술가 양혜규의 작품전 ‘MMCA 현대차시리즈 2020: 양혜규-O₂ & H₂O’(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를 찾았다. 사진은 전시 전경의 일부로 ‘솔 르윗 뒤집기’(왼쪽)와 ‘소리나는 가물’(오른쪽), ‘디엠지 비행’(정면의 벽)이 보인다. 사진 홍철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무생물·생물, 기술·주술 넘나드는 ‘소리 나는 가물’
남북 분단을 뒤집고 싶은 듯한 ‘DMZ un-do’…
한국·독일과 86세대·X세대 사이의 경계인으로서
삶과 철학 녹아든 ‘개념미술’의 세계를 만난다

“도대체 의미를 모르겠어.” 현대미술 전시장에서 듣는 관람객들의 탄식이다. 언제부터인가 현대미술은 일반인들에게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보다 어려운 것이 돼버렸다. 혹시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어디 가서 함부로 불평하기도 힘들다. 상대성이론을 이해하는 물리학자는 현대미술도 이해할 수 있을까?

미술이 무엇인지 누구도 자신 있게 정의할 수 없지만, 적어도 작가의 생각을 작품으로 구현하는 것이란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 거다. 뛰어난 작품의 가치는 구현된 물리적 결과물보다 그런 작품을 만든 작가의 창조적 생각에 있는 것 같다. 내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똑같이 그리더라도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없지 않은가. ‘모나리자’의 가치는 캔버스에 얹힌 물감의 공간분포가 아니라, 다빈치가 마음에 품었던 생각, 즉 개념에 있기 때문이다. 미술에서 결과물보다 개념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개념만으로 미술을 할 수 있다는 현대미술사조 ‘개념미술’과 만나게 된다. 세계적인 개념미술 작가인 양혜규의 개인전이 국립현대미술관(MMCA·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O₂ & H₂O’ 전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 교수인 작가는 2018년 ‘아트리뷰’ 선정 세계미술계 파워 100인에 선정될 정도로 국제적 주목을 받는다.

개념미술을 이해하려면 당연히 작품에 녹아있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작품의 개념은 작가가 창조한 것이니, 작가의 삶이나 철학과 분리되기 힘들다. 개념미술 작품을 이해하고 싶다면 먼저 작가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양혜규(50)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로 가 공부했다. 한국사회에서 1971년생은 민주화투쟁의 ‘86세대’와 개인주의의 ‘X세대’ 경계에 놓인 세대다. 지금도 작가는 양국을 오가며 그 사이에서 경계인의 삶을 산다. 그의 작품에는 경계를 넘나드는 혼성과 잡종문화의 특성이 나타나며, 동시에 경계를 없애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작품 ‘소리 나는 가물(家物)’은 다림질 가위·헤어드라이어·집게·주전자 같은 일상의 물건을 사람만 한 크기로 제작하고 수많은 방울로 표면을 채웠다. 물리학자가 할 말은 아니지만, 방울이 갖는 주술적 느낌으로 물건들이 생명을 가진 듯 보인다. 가물은 이렇게 무생물과 생물, 기술과 주술의 경계에 존재한다. 남북 분단은 우리 민족을 경계인으로 만들었다. 전시실 바깥 복도에는 작가의 목소리를 복제한 인공지능 목소리(‘진정성 있는 복제’)가 스피커를 통해 재생된다. 남북 분단의 경계가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이름 놀이’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묻는 듯하다.

전시에서 경계와 더불어 눈에 띄는 주제는 뒤집기다.

남북 분단을 상징하는 사진·기호로 가득한 벽지 작업인 ‘디엠지 비행(非行)’이 한 쪽 벽면을 채웠다. 영어 제목은 ‘DMZ un-do’, 그러니까 여기서 ‘비행’은 일어난 일을 되돌리는 시간적인 뒤집기다. 분단을 뒤집고 싶다는 뜻일까? 전시실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솔 르윗 뒤집기’ 연작은 아예 제목에 뒤집기가 있다. 개념미술의 선구자 솔 르윗의 작품을 확대하고 뒤집어 매달아놓은 것이다. 이런 공간적인 뒤집기는 ‘소리 나는 가물’에도 적용된다. 가물들은 뒤집어서 이어붙인 형태인데, 이런 구조는 뒤집어도 변화가 없다. 물리학에서는 이런 특성을 대칭이라 부르며, 이렇게 물체와 뒤집힌 물체 사이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보게 되는 ‘크로마키 벽체 통로’야말로 뒤집기의 절정이다. 이 전시실은 다른 전시실에 비해 입구 벽이 유난히 두껍다. 벽 내부에 여러 장치 및 구조물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대놓고 벽 내부의 비밀을 까발리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작가의 내면을 보여주는 통로인지도 모른다. 사실 통로로 둘러싸인 벽면에는 15점의 ‘래커 회화’가 걸려있는데, 지난 수십 년간 꾸준히 제작해온 작품이다.

경계 지우기와 뒤집기는 인간이 만든 분류와 이름 놀이의 의미 없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진정성을 갖고 남는 것은 반복되는 행위뿐인지도 모른다. 며칠 전 양혜규 작가와 만났다. 작가가 내 설명에 모두 동의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아주 마음에 드는 설명도 있단다. 물리학자에게도 현대미술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떤 일이 쉽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물리는 언어로 할 수 없는 것을 수학으로 표현하고, 인간은 언어로 할 수 없는 것을 예술로 표현한다. 이번 기회에 예술로 표현된 개념의 세계를 여행해보는 것은 어떨까? 쉽지는 않겠지만.

김상욱 |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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