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자영업자 한숨 "설 이후 남아있는 가게 없을 것"
[경향신문]
당구장·호프집·PC방 등 영업제한 조치 연장에 반발
“희생양 삼는 대책 반복”…업종별 방역지침 마련 요구
1월 소상공인 경기체감지수, 지난해 3월 이후 최저치
인천 서구에서 4년째 당구장을 운영하는 양현수씨(57). 따로 직원을 두지 않고 부인과 같이 일하고 있다. 정부의 거리 두기 강화 조치 이후 손님이 90%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매달 월세에 음료수 등 관리비로 600만원이 나가는데 최근 수입은 100만원 안팎이라고 했다. 양씨는 “당구장 피크 타임은 저녁 시간인데 오후 9시 이후 손님을 받지 못하니 영업중지나 매한가지”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당구장은 교대로 플레이를 진행하니 정부의 방역지침을 충분히 따를 수 있는 안전한 시설”이라며 “업종별 특성을 고려해 영업 시간을 조정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의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에 따른 오후 9시 이후 영업제한 조치가 풀리기만을 기다렸건만, 개신교 관련 시설 중심으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또다시 설연휴까지 옴짝달싹 못하게 되면서다.
당초 정부의 고강도 방역대책을 이해하면서 고통을 감수했지만, 지금은 자포자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의 ‘탁상행정’ 결과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당구장, 호프집, 스크린골프장, PC방, 코인노래방…. 지난달 31일 정부가 기존의 방역지침 수준을 설연휴까지 2주간 연장한다고 발표하자, 중소상인·자영업단체 모임은 즉각 반발했다. 이들은 공동 논평을 내고 정부대책을 “생존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중소상인·자영업자 포기 선언”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설 명절 이후에 남아 있는 중소상인·자영업자는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정부가 중소상인·자영업자들의 절실한 요구는 외면한 채, 우리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코로나19 확산을 막겠다는 이해할 수 없는 대책만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정책에 대해 “무턱대고 비난하는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광범위한 영업제한 조치보다는 업종별 방역지침 마련, 개인방역 강화 등에 집중할 것을 요구했다. 설 명절 대규모 이동이 걱정된다면 5인 이상 사적모임을 철저히 점검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이동금지 조치 등 대책을 강구하면 될 일이지, 자영업자들만 희생양으로 삼는 이유는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당구장과 볼링장 등 실내체육시설은 줄폐업하거나 고객들의 환불 요구, 직원들의 퇴직금 소송까지 맞닥뜨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자영업자의 위기는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1월 소상공인 경기체감지수(BSI)는 35.8로 지난달보다 15.8포인트 하락했다. 코로나19 1차 유행기인 지난해 3월(29.7) 이후 10개월 만의 최저치다. BSI가 100 이상이면 경기가 나아졌다고 보는 사람이 더 많고 100 미만이면 악화했다고 보는 사람이 더 많다는 뜻이다.
지난해 말 KB경영연구소가 펴낸 ‘코로나19와 자영업 명암’ 보고서를 보더라도 당구장, 골프연습장, 비디오방, PC방, 게임방, 세탁소, 목욕탕, 이발소 등 업종은 폐업이 개업보다 많았다.
지난해 8월부터 잇단 영업 규제를 겪은 PC방은 폐업률이 10%가 넘었다. 한 PC방 업주는 “1년간 정부를 믿고 빚더미에 앉으면서까지 방역지침을 따라왔지만, (당정의 지침을 보면) 손실 보상도 전혀 없다고 한다”며 “진짜 확진자와 집단감염이 발생하는 곳은 놔두고 방역지침을 잘 따라온 모범업소는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최근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진행한 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19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응답률은 자영업(79.4%)이 가장 높았다. 무직·퇴직·기타(74.6%), 주부(74.4%)가 뒤를 이었다. 지난해 10월 전체의 57.1%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대답했는데, 올해 1월 그 비율은 72.8%로 높아졌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소상공인들의 요구는 ‘최소한 먹고는 살게 해달라’는 호소”라며 “이를 귀기울여 생활방역위원회에 소상공인 참여를 보장하는 등 영업 형평성 제고를 위해 정부가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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