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옆 우리집 이웃에 사는 '위대한 평민' 만인보 펴냈어요"

오윤주 2021. 2. 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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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충북 괴산군 송면중 학생들
괴산 송면중학교의 ‘위대한 평민 프로젝트’에 참가한 1학년 배강현(왼쪽) 학생이 어머니 신미경(오른쪽)씨를 인터뷰하고 있다. 송면중 제공

작은 시골학교 충북 괴산 송면중학교의 학생들이 마을 전기 <여기 우리 꽃>(도서출판 고두미)을 냈다. 책은 1~3학년까지 전교생 21명이 지난 1년 동안 진행한 ‘위대한 평민 프로젝트’(위평프)의 산물이다. ‘위평프’는 위인전 속 주인공만 훌륭한 게 아니라 평범한 듯 보이는 이웃의 삶 또한 위대하다는 데서 출발한 인터뷰·글쓰기 체험이다. 학생들이 글을 쓰고, 담당 김명희 교사가 사진을 곁들여 책으로 만들었다. 마을 드로잉 동아리가 그린 위대한 평민의 얼굴도 함께 담았다.

마을의 전기이자 ‘송면의 만인보’를 써낸 학생들의 이야기를 지난주 전화로 들어봤다.

전교생 21명 인터뷰·글쓰기 나서
이장·작가·어르신·교사·부모 등
‘위대한 평민 프로젝트’ 4년째 진행
‘여기 우리 꽃’ 19명 이야기 묶어내

2019년 ‘화투칠려?’ 연극으로 공연도
“어른들 가르치는 아이들 자랑스러워”

도서출판 고두미 제공

‘위평프’는 2017년부터 해마다 이어졌다. 2017년 <소녀와 할머니의 공기놀이>에 20명, 이듬해 <눈 오는 날 메주 할머니>에 16명, 2019년 <화투칠려?>에 21명에 이어 올해 <여기 우리 꽃>에 19명까지 학교 주변 위대한 평민 76명이 책을 통해 소개됐다.

마을 이장, 옆집 작가, 이웃 할머니, 정년 퇴임 교사 등이 학생들에게 자신의 삶을 꾸밈 없이 털어놓았다. 이웃뿐 아니라 무뚝뚝한 나의 아버지·어머니·할머니 등도 인터뷰 대상이 됐다. 섭외가 쉽지 않을 땐 스스럼없이 ‘선생님 찬스’를 이용했다. 김 교사는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며, 보일 게 없는 인생이라며 학생들의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분들께는 삼고초려를 하기도 했다. 입을 잘 열지 않는 부모님들께는 살짝 압박을 하기도 했다”고 실토했다.

입을 뗀 이들은 기꺼이 자신의 경험·인생을 학생들에게 들려주며 ‘사람책’이 됐다. 3학년 김선주양이 만난 임희선 작가는 “곧 죽을 사람처럼 느꼈던 적이 있다. 병을 가진 나를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받아들이면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김양은 “자신을 인정하고 꿋꿋이 나가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작가님은 단단한 사람”이라고 썼다. 1학년 정보현군이 만난 퇴직교사 유승준 선생님은 “제도보다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교사가 됐다”며 “송면을 행복한 동네로 가꾸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2학년 길민희양이 만난 삼송리 김윤희씨는 “인생은 땅에서 나는 풀 같다. 늘 푸르진 않다. 겨울에 잠시 쉬었다가 봄에 자신을 피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노력하자”고 했다.

파란만장한 삶의 추억이 소환되기도 했다. 2학년 박종근·이감영군이 함께 만난 최복연 할머니는 6·25전쟁 탓에 13살 때 뒤늦게 국민학교에 입학한 이야기를 했고, 3학년 정해찬군이 인터뷰한 아버지 정진혁씨는 병원 도착 10분 만에 정군이 태어났던 추억을 끄집어냈다.

‘위평프’는 부모와 자식의 거리를 좁히기도 했다. 3학년 김하연양이 택한 ‘위대한 평민’ 어머니 박미선씨는 “엄마의 엄마는 항상 일 때문에 바빴다. 나는 나중에 자식키우면 일보다 옆에 같이 있어 주고 싶었다”고 말해 딸을 숙연하게 했다. 2학년 승산하군의 어머니 황희경씨는 “동네 오락실 주인이 겁내던 오락의 최강자였다”는 사실을 털어놨고, 1학년 배강현군의 어머니 신미경씨는 “좋아하는 옆집 오빠가 지켜보는 바람에 주저하던 뜀틀을 손도 안 대고 넘었다”며 사랑의 기적을 들려주기도 했다. 2학년 김은선 학생은 “‘위평프’는 할 때는 살짝 힘들고 귀찮지만, 하고 나면 나도 모르게 정말 많은 것을 얻어간다. 책으로도 ‘인생팁’같은 것을 얻을 수 있지만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얻는 것은 뭔가 다르다”고 말했다.

<여기 우리 꽃>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도종환 국회의원의 축사도 있다. 도 의원은 시인이면서 전직 교사다. 그는 “가장 특별한 사람은 가장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 위대한 평민이 바로 내 옆에, 우리 집에, 내 이웃 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이 책의 위대한 힘”이라고 했다. 김 교사는 “도 의원은 대학 같은 과 선배였고, 전교조 활동을 하면서 많이 배웠던 분이다. 그동안 나온 원고를 모두 읽고 좋은 평가를 해줬다”고 밝혔다.

송면중의 ‘위평프’는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 대학 때 마당극을 했던 주민 김은희씨가 대본·연출을 맡고, 마을 주민·학생 등이 배우가 돼 2019년 11월 괴산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올랐다. 이재용 청주교대 교수(교육학)는 송면중의 ‘위평프’를 토대로 수업지도안을 만들기도 했다.

송면중은 <여기 우리 꽃> 500권을 발행해 책을 쓴 학생, 인터뷰에 응한 이웃·부모 등과 나누고, 주변 학교 도서관에도 보낼 참이다. 김 교사는 “내 아이, 옆집 아이 가리지 않고 보살피고, 서로에게 의지하고 힘이 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손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삶 자체가 공부다. 꽃처럼 피어나 어른들을 가르치는 아이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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