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중이온가속기 구축사업, 흔들려선 안 된다

2021. 2. 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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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식 중이온가속기이용자협회장·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홍병식 중이온가속기이용자협회장·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올해 말이면 우리나라 최초의 중이온가속기인 라온(RAON)이 세계 최고 성능을 목표로 건설을 시작한 지 만 10년이 된다. 자연에선 발견할 수 없는 희귀한 동위원소 핵종을 만들어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하는 장치를가진 나라가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이니, 라온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중이온가속기 라온은 우주의 진화나 원소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과학 연구용이지만, 그 외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물질의 구조를 밝히고 새로운 암 치료법과 차세대 에너지 개발 등 다양한 응용연구도 가능하므로 우리의 과학기술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도약시킬 발판이라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중이온가속기 추진 과정을 보면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장기적인 대형시설구축사업에 있어 시행착오는 어느 정도 감수해야겠지만 비슷한 잘못이 반복된다면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 중이온가속기 구축을 수행하는 사업단은 일부 핵심 가속장치가 아직 개발 완료되지 않는 등 여러 문제점에 대한 철저한 재검토와 자기반성을 토대로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이 사업을 관리하는 정부도 당초 목표대로 추진될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충분한 지원에 신경을 써야 한다.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중이온가속기를 포함한 대형연구시설 구축사업들의 일정 지연, 예산 증액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제도 정비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비판의 목소리와 함께 격려도 필요하다. 우리가 추구하는 중이온가속기는 세계 최고의 성능을 목표로 한다.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희귀핵종을 만들기 위해 라온은 새로운 생성방식과 높은 출력을 특징으로 한다. 대형 가속기에서 이러한 최첨단 기술들은 엄청난 투자와 시간을 요한다. 한 예로 독일이 현재 건설 중인 중이온가속기 연구시설 페어(FAIR)를 들 수 있다. 독일은 누구나 인정하는 가속기 선진국이다. 이전에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양성자 가속기인 헤라(HERA)와 중간에너지 중이온가속기를 성공적으로 건설했던 경험이 있고, 2012년 힉스입자를 발견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초대형 양성자가속기(LHC) 건설에도 큰 기여를 했다.

2001년에 작성한 개념설계서에 따르면 페어는 2008년에 모든 시설을 완공하고 2년여의 시운전을 거쳐 2010년부터 본격적인 실험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여러 기술적인 문제와 재정적인 여건으로 몇 번의 지연을 반복한 후 지금은 2025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이러한 일정 지연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가속장치 기술개발에 크게 좌우된다. 페어는 안정핵뿐만 아니라 희귀 동위원소, 반양성자, 전자를 모두 이용하는 시설이므로 매우 복잡한 구조이고 이에 따른 광범위한 기술개발이 필요하다.

라온도 지금까지 양성자 가속에만 적용되었던 가속관 기술을 세계 최초로 중이온 가속에 적용하려 하므로 매우 어려운 기술개발이 요구된다. 더구나 기존 중이온가속기들은 희귀 동위원소를 생성, 가속하는 방법을 한 가지만 선택해 채용했지만, 라온은 두 가지 방법을 접목해 더욱 희귀한 동위원소 빔을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도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결국 잘 알려진 방법을 이용해 안전하게 주어진 기간 내에 가속기 건설을 완료하느냐, 아니면 기간 내에 완성하지 못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세계 최초의 연구시설을 만드느냐 사이의 선택이기도 하다.

조만간 중이온가속기 구축사업의 기간 연장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중이온가속기 이용자들은 비록 완공이 지연되더라도 가속기와 실험시설이 원래 목표대로 구축되기를 바란다. 이는 앞으로 10년 안에 라온 수준의 희귀한 동위원소 빔을 생산할 수 있는 중이온가속기가 전 세계 다른 곳에 건설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건설 기간이 몇 년 더 소요되더라도 라온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중이온가속기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바로 전 세계의 많은 과학자들이 라온의 완공을 기대하며 목표 성능 달성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다.

10년 전 라온 건설을 시작하며 꿈꾸었던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밝은 미래를 지레 포기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불필요한 논쟁보다는 과학계와 산업계의 연구역량을 총 결집하여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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