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니 지지 시위, 푸틴 정권 흔들까.."사상 최대 체포자"
정권 비리·경제난 불만 겹쳐..푸틴 지지도 60%대로 위기상황은 아냐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적'으로 꼽히는 러시아 야권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31일(현지시간) 러시아 전역에서 또다시 대규모로 벌어졌다.
앞서 지난주 23일 110개 이상 도시에서 10만 명 이상(야권 성향 현지 언론 추산)이 나발니 지지 시위를 벌인데 뒤이은 것이다.
시위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주류 언론 대신 실시간으로 시위 상황을 전한 현지 반정부 성향 신문 '노바야 가제타'에 따르면 이날 극동과 서부 역외 영토 칼리닌그라드까지 11시간대에 걸친 약 100개 도시에서 나발니 지지 시위가 벌어졌다.
참가자 수는 수도 모스크바 등에서 당국의 봉쇄로 시위대가 한 장소에 집결하는 것이 차단돼 산발적 시위가 벌어진 관계로 집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체포자 수를 볼 때 지난주 첫 시위 때보다 크게 줄어들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모스크바에서 2천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밝혔지만, 현지 언론은 이보다 훨씬 많다고 전했다.
정치범 체포를 감시하는 현지 비정부기구(NGO) 'OVD-인포'는 이날 러시아 전역에서 5천135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이는 이 단체가 추산한 지난 주말 시위 체포자(약 4천명)보다 더 많은 것이다.
수도 모스크바에서 약 1천653명,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천159명이 연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OVD-인포는 이 같은 시위 체포자 수는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시위 사상 최대 규모라고 평가했다.
경찰은 시위 진압을 위해 곤봉과 최루가스, 전기충격기를 사용한 것은 물론 시위대를 향해 권총을 겨누기까지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러시아 당국은 대중 집결에 따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위험을 이유로 애초 시위 자체를 불허했다.
그럼에도 나발니 지지자들이 불법 시위를 강행한 만큼 진압과 참가자 체포는 적법한 것이란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나발니 진영과 야권에선 평화적 시위를 강경 진압한 것은 시위·집회의 자유를 탄압한 불법 조치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날 2주째 열린 시위는 독일서 독극물 중독 증세 치료를 받고 귀국한 나발니가 공항서 곧바로 체포돼 구속된 데 대한 지지자들의 불만이 촉발 요인이 됐다.
러시아 교정 당국인 연방형집행국은 나발니가 지난 2014년 사기 사건 연루 유죄 판결과 관련한 집행유예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수배자 명단에 올라 있었기 때문에 체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7년 전의 법원 판결 자체를 나발니에 대한 정치 탄압으로 보는 지지자들은 정권이 나발니 독살 시도에 실패하자 그를 감옥에 가두려는 것이란 주장을 펴고 있다.
나발니가 최근 공개한 '푸틴 궁전' 동영상도 국가 지도부의 비리와 부패에 대한 증오심을 자극해 많은 사람이 시위에 가세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나발니는 최근 유튜브를 통해 흑해 연안의 고급 리조트 시설이 기업인들의 기부로 푸틴을 위해 지어진 '궁전'이라고 폭로하는 영상물을 공개했고, 이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 1억회를 넘기며 반푸틴 여론을 부채질했다.
동시에 이번 시위가 예상보다 훨씬 큰 규모로 번진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악화한 경제난에 대한 국민 불만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러시아 경제는 마이너스 3.5%(예상치)의 역성장을 기록하며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 등으로 마이너스 2%의 역성장을 기록한 2015년 이후 5년 만에 또다시 침체에 빠졌다.
국민의 실질가처분소득은 3% 줄어들었고, 실업자 수는 전년 대비 80만명이 늘어난 427만명에 달하면서 실업률이 4.6%에서 5.7%로 증가했다. 전반적 경기침체로 문을 닫는 업체가 줄을 잇고 있다.
심각한 경제난과 코로나19 방역 제한 조치 등에 불만을 품은 다수의 주민이 나발니 사건을 계기로 '푸틴 퇴진'을 요구하며 길거리로 나섰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다수의 전문가는 푸틴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도가 여전히 60%대의 안정적 수준에 머물고 있는 만큼 나발니 지지 시위 사태가 정권의 안정을 위협할 수준은 아닌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다만 현재 누적 확진자 세계4위 규모인 러시아의 코로나19 상황이 더 악화하고 경제난이 한층 심화할 경우 오는 9월 총선을 앞두고 정국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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