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나 北에 원전' 아이디어, 이적행위일까..수십년간 논의·실행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비핵화 전제로 원전 건설 검토
(서울=뉴스1) 김현 기자 = 정치권이 '정부의 북한 원자력발전소 건설 지원 의혹'을 둘러싼 공방으로 뜨겁게 가열되고 있다.
국민의힘 등 야당에선 북한에 대한 원전 건설 지원 검토 자체를 '이적행위'라고까지 규정하고 대대적인 공세를 펴고 나서고 있지만, 일각에선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1일 정치권과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산업부 원전 담당 공무원들이 1차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18년 5월 작성한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 방안' 문건에는 Δ과거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경수로를 지으려던 자리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 Δ비무장지대(DMZ)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 Δ신한울 3·4호기를 완공해 북한에 송전(送電)하는 방안 등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등 야당은 북한에 대한 원전 건설 지원에 대해 심각한 문제로 보고, 국회 국정조사와 특검 도입 등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정부가 국내에선 탈원전 등 에너지 전환정책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에 원전 건설 지원을 검토한 이중적 태도를 지적하는 것은 물론 이를 극비리에 추진한 의혹이 있다며 '이적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정부의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및 북한 원전 건설 추진 의혹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가 대한민국 원전을 폐쇄하고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려 했다. 원전 게이트를 넘어 정권의 운명을 흔들 수 있는 충격적인 이적행위가 아닐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의 핵능력은 완전 철폐하면서 북한 원전 지원에 나서겠다는 게 이적행위가 아니면 무엇이 이적행위인가"라며 "우리 경수로에 관한 자료가 북한에 넘어갔다면 북한이 상업용 경수로를 확보하는 길을 열어준 꼴"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청와대 등 여권과 정부는 북한 원전 건설 지원 방언에 대해 앞으로 남북경협이 활성화됐을 경우를 대비한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산업부는 지난 1월31일 긴급 브리핑에서 "이 사안은 정부 정책으로 추진된 바 없으며, 북한에 원전 건설을 극비리에 추진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산업부 실무진이 남북 경협이 활성화될 경우를 대비해 부처내 부서별로 다양한 실무정책 아이디어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 중 하나로, 모두 6쪽 분량인 해당 문서 서문엔 "동 보고서는 내부 검토 자료이며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님"이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다는 게 산업부의 설명이다.
청와대 등 여권은 산업부의 설명대로 실무진의 아이디어 차원의 검토라는 데 무게를 싣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산업부가 확인한 삭제된 보고서 서문엔 '내부 검토자료이며 정부 공식입장이 아니다', '불확실성이 높아 구체적 추진방안 도출엔 한계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원전 건설을 극비리 추진했다'는 야당 주장은 사흘도 안 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수조원이 들어가는 원전 건설 계획을 A4 6쪽 짜리 문건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단순한 실무진 검토 차원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대북 제재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모르게 북한에 원전 건설을 극비리에 추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북한 원전 건설에 대한 여야의 입장이 대치하고 있지만, 과거에도 북한 원전 건설에 대한 논의가 있어 왔다.
우선 북한에 경수로형 핵발전소 건설을 하는 것은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오랜 '북한 비핵화' 보상책 중 하나였다.
실제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서(1994년 10월21일)'를 토대로 북한 함경남도 신포(북청)에 200만KW(킬로와트) 발전 능력의 핵발전소 건설 공사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는 김영삼 정부 때로, 미국·한국·일본·유럽연합(EU) 등이 이사국으로 참여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구성돼 신포에 100만KW급 핵발전소 2기를 짓는 공사를 했다. '신포 경수로'는 2002년 8월7일 원자로 기초콘크리트 타설 공사를 했으나 이른바 '2차 북핵위기'의 발발과 함께 건설 공사가 중단됐다.
경수로 제공 문제는 과거 6자회담 때도 논의됐다. 지난 2005년 6자회담를 통해 발표된 '9·19 공동성명'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여타 당사국들은 이에 대한 존중을 표명했고, 적절한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경수로 제공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데 동의했다"고 명시했다.
'비핵·개방·3000'(북한 비핵화·개방 시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 견인 약속)을 대북정책으로 내세웠던 이명박정부 때나 '통일대박론'을 제시했던 박근혜 정부 당시에도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원전 건설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다.
민주당은 "(북한 원전 건설 구상은) 2010년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천영우 외교통상부 2차관이 처음 언급했다"며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감사 방해를 위해 파쇄됐다는 문서 대부분은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생산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천 전 차관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Δ유엔 안보리 및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 Δ북한의 핵폐기 완료 Δ북한의 NPT 복귀 및 IAEA 전면사찰 Δ미·북 원자력협정 체결 등을 거론, "이러한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는 전제하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원전 건설을 검토한 것이라면 호들갑을 떨 일은 못 된다"며 "다만, 문 대통령이 아니라 차기 대통령 임기 중에도 일어날 가망이 없는 일을 산업부가 멀리 내다보고 검토한 것이 신기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gayunlov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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