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예권, 선한 얼굴의 예민한 연주자 "그것이 내 음악의 힘"

최진숙 2021. 2. 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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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혼자만의 시간 즐기는 고독의 모차르트형
리사이틀 투어 서울 끝내고 대구 제주로
지난해 11월 광주를 시작으로 전국 투어를 이어가고 있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지난주 두 번의 서울 공연에 이어 오는 5·6일 대구·제주 공연을 앞두고 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잠을 많이 못잤습니다. 여러가지 생각도 들고, 정신적으로 공허한 마음도 있었구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2)은 지난 여름 데카(Decca)에서 모차르트 앨범을 내고 그 곡들로 지난해 11월부터 광주를 시작으로 전국 투어를 이어가고 있다. 올들어선 대전에 이어 지난달 26일, 30일 서울서 무대를 가졌다. 첫 공연 다음날 오후 그를 만났다. 전날 무대서 내려왔을 때 느낌은 "후련함보다 허전함이 더 컸다"고 했다. 주변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건반에서 실수한 한음까지 기억에 남았다. 그 오타의 앞뒤 과정을 꼼꼼히 반추하다 새벽까지 갔다.

피아니스트중 선우예권만큼 콩쿠르에 많이 나가본 이도 없을 것이다. 각종 콩쿠르서 여덟번이나 우승, 2017년 마침내 쇼팽·차이코프스키 콩쿠르와 맞먹는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 이 순서를 두고 차근히 단계를 밟은 쾌거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가 선택한 콩쿠르는 거의 랜덤이었다. 상을 못받은 콩쿠르 수가 어마어마하다. 대신 목표는 뚜렷했다. 상금으로 미국 유학 생활비, 주거비 걱정을 덜겠다는 생계형 이유가 확고했다. 스스로 강조하는 바, 필요하면 움직이는 즉흥적 승부사다. 비로소 온몸과 정신을 다해 나섰던 처음이자 마지막 콩쿠르가 반 클라이번이었다.

그의 살아가는 생활방식은 무정형에 가깝다. "계획 세우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합니다. 규칙적으로 사는 것도 원치 않아요. 일찍 일어나는 것도 물론이구요. 자는 시간이 초저녁일 때도 있고 새벽 1시, 2시 어떨 땐 아침 7시에 잠들기도 해요."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 한국 드라마도 잘 본다. 최근엔 김혜자 주연의 '눈이 부시게'를 감명깊게 봤다.

털털할 것 같은 용모와 달리 실은 예민한 스타일이다. 소음에 특히 민감하다. 음식점에서 쇠가 부딪히는 소리에 밥을 못먹을 때도 있다. 그런 상황에 옆사람이 친한 동반자라면 그는 바로 나무젓가락을 내밀 것이다. 스트레스는 말로 풀기보다 주로 잠수로 해결한다. "완벽한 단절이요. 이 세상 없는 것처럼 연락이 안될 때가 그 상황이에요. 종종은 아니고 가끔 있습니다."


이 선한 얼굴의 피아니스트는 이런 예민함이 자신의 음악을 유지하는 힘이라고 했다. "예민해져야 온 신경이 살아나잖아요. 연주 전 원하는 감정선을 잃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합니다. 똑같은 프로그램을 100번 한다해도 그 감정을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요. 연주에 가장 위험한 요소는 별 감정없이 무뎌지게 되는 것인데 그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악보 앞에선 작심하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작곡가가 쓴 표현들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그 모든 걸 표현하고 극대화시키는데 온힘을 쏟습니다. 작곡가의 틀 안에서 자유분방하게 뛰어노는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여림의 표시에서도 불투명한 여림, 애잔한 여림, 쓸쓸한 여림, 약간의 심지가 있는 여림, 끝도 없어요."

피아니스트이자 음악비평가인 김주영은 "30대 선우예권은 폭이 넓어졌다. 음악에 여유가 생겼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힘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서울 첫 공연 직후 그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클래식 공연관계자는 연주가 너무 슬퍼 울뻔했다고 고백했다. 그가 연주한 모차르트 환상곡 라단조·다단조, 론도 가단조는 작곡가의 외로움이 많이 담긴 곡이다. 소나타 8번 역시 모차르트 비극의 소나타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모차르트는 모두에게 익숙한 이미지는 맑고 가볍고 친근한 느낌이지만, 실은 사람의 감정을 더 깊게 이끄는 어두운 측면도 많은 작곡가였다. 그런 면을 많이 부각시키려고 했다"는 게 선우예권의 말이다. 그는 "모차르트의 어둡고 고독하고 쓸쓸한, 그 슬픈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최근의 시간이 행복했다"는 말도 했다. "연주자는 공연을 통해 숨을 쉬게 됩니다. 감정소모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동시에 감정을 충전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무대가 감사합니다."

그의 모차르트 투어는 오는 5일 대구, 6일 제주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11년 미국 생활을 끝내고 2016년 독일 베를린으로 터전을 옮긴 그는 이달 중순 독일로 되돌아간다. 기획사 마스트미디어는 코로나19로 취소됐던 그의 부산·울산·거제 공연을 5월 재개하는 것으로 조율중이다. 내년엔 상반기, 하반기 두차례 해외 대형오케스트라 내한공연에서 협연자로 무대에 선다.

jins@fnnews.com 최진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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