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롯 전국체전', 송가인에게 장윤정 같은 역할 맡겼어야 했다
'미스·미스터트롯' 시리즈가 갈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원조'인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021년 우리 방송가에 여전한 트로트 붐에 대한 비평은 이제 의미가 없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트로트 프로그램들을 비난하는 것도, 의미부여하는 것도 건설적인 논의는 아니다. 방송국의 간판이 달라진 것을 제외하면 심사위원단도, 스타 육성 과정도, 인기의 본질과 재미의 근원도 모두 엇비슷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오늘날 트로트 예능이 안전하고 가성비 좋은 기획인 이유다.
트로트로 인해 중장년층들이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상 여론을 담당하는 한 축이 되었다. 아이돌 팬덤 문화를 몸소 즐기는 이 시대에 스타 탄생은 트로트 예능의 목표다. 그런 점에서 플랫폼이 된 TV조선 <미스·미스터트롯>시리즈는 시청률뿐 아니라 영향력 면에서도 확실히 아류들과 차이가 난다. 지난해 10월부터 이 달 초까지 방영한 MBC의 <트로트의 민족>은 숫자만 보자면 자사 간판 예능인 <놀면 뭐하니?>와 <나 혼자 산다>보다 더 높은 시청률(15%)을 기록한 초대박 히트작이지만, 종영된 지 한 달도 안 된 지금 시점에서 지금 아무 데서도 이 프로그램과 출연자를 언급하지 않는다.
나훈아 콘서트를 통해 어깨가 으쓱해진 KBS 예능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트롯 전국체전>은 지난 12월 5일 160분의 특별편성으로 화려한 막을 올렸다. 트로트 붐의 출발점인 송가인을 전면에 내세우고, <미스트롯> 동기인 김소유, 정다경, 숙행이 분위기를 띄웠다. 참가자들도 현역도 포함된 만큼 수준급이다. 시청률은 첫방이 무려 16%를 넘겼다. 지난 방송에서 준결승전에 진출할 14개 팀이 결정되며 클라이막스로 치닫고 있지만 <미스트롯2>나 JTBC <싱어게인>와 비교해도 프로그램 밖 반응은 사뭇 다르다.
우후죽순 같은 업종의 가게가 생겨나 붐비는 맛집 골목에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앵커테넌트는 언제나 '원조'다. 트로트 붐에서 'TV조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프리미엄과 영향력을 여전히 발휘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트로트라는 장르에 조명을 비추고, 장년화라는(물론 정확한 표현은 온가족 콘텐츠다) TV 시장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스타 탄생의 루트까지 모든 프로그램들이 TV조선이 개척한 길을 따른다. MBN과는 소송을 불사할 기세고, 공영방송 KBS의 <트롯 전국체전>은 TV조선과 갈라선 송가인 소속사가 만들고 있다. 마침 수신료 인상 논란에 휩싸인 KBS는 이번 설 연휴에 <트롯 전국체전>의 준결승전에 진출한 14팀으로 스핀오프 <트롯 전국 대잔치>를 내놓겠다고 했다. TV조선에서 많이 보던 방식이다.
<미스·미스터트롯>시리즈는 단순 경연이라기보다 잔치다. 저녁 시간 소시민들을 TV앞에 모이게 만드는 대중적 감수성이 있다. 과거 SBS <스타킹>을 원형 삼아 어르신들을 놀라게 하는 신동이 등장하고, 트로트라는 장르와 찰떡인 무명 시절의 고생담을 부각하며, 이런저런 실패와 전향하게 된 신파 스토리에 눈물과 열정을 담는다. 진리는 '단짠'이듯, 유쾌함을 책임지는 출연진을 따로 구성해 방식이나 원로, 중견 가수들을 '레전드'로 대접한다. 대부분의 트로트 프로그램들이 공을 들인 프로그램일수록 원조의 작법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전국 팔도로 나눠 경쟁하고 끌어주겠다는 정도는 <미스·미스터트롯>이 깔아놓은 주단 위에서 사소한 디테일상의 변주다.
<트롯 전국체전>은 지난해부터 KBS로 건너온 송가인으로 마케팅했지만 정작 방송에서는 잘 보이지가 않는다. 주현미, 김수희, 김범룡, 조항조, 남진, 설운도, 고두심, 김연자 등의 원로, 중견 가수들을 앞세우고(심지어 고두심은 배우다), 심사를 이끌어가는 주영훈, 감초 임하룡보다도 비중이 적다. 신유, 홍경민, 나태주, 하성운, 박구윤, 조이현, 별, 김병현, 조정민, 황치열, 진시몬, 박현빈, 샘 해밍턴 등과 함께 뒷줄에 앉아 있다.
송가인을 내세웠으면 송가인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프로그램이 아닌 플랫폼을 만들고자 했다면 <미스·미스터트롯> 시리즈에서의 장윤정과 같은 역할을 맡겼어야 한다. 이번 <미스트롯2>은 임영웅, 장민호, 이찬원을 비롯한 지난해 <미스터트롯> 스타들을 심사위원으로 품어서 세계관을 확장시킨다. 불과 작년까지 똑같은 무명가수였던 이들이 가슴에 별을 달고 심사위원석에서 참가자를 지켜본다. 롤모델의 존재는 무대의 권위를 높인다. 팬덤의 지속뿐 아니라 불과 1년 사이 현실화된 인생역전의 성장서사는 대리만족을 주고, 무대가 주는 기회의 절실함을 출연자, 시청자와 공유하는 장치다. <미스·미스터트롯> 시리즈가 갈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원조'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 트로트 붐은 불과 2~3년 사이 TV조선을 딛고 스타덤에 오른 '대표곡 없는'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만든 판이다. 최근 왕성하게 방송 활동하는 왕년의 트로트 전설들 또한 엄밀히 말하면 수혜자 그룹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특히 지상파 트로트 프로그램들은 송가인이 탄생하기 이전 <미스트롯> 시즌1에서 출발한다. 심지어 송가인을 간판으로 내세우고도 비중을 줄여가면서까지. 게다가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겹치기는 물론, 전문성과 무관한 출연자나 심사위원단이 늘어나며 트로트의 범주마저 크게 흔들린다. 오히려 정통 트롯 창법이 핸디캡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여타 트로트 프로그램들이 <미스트롯> 시즌1을 참고할 때 원조인 <미스트롯> 시즌2는 스타 탄생을 지상 목표로 삼고 시청자들과 접점 창구를 더욱 적극적으로 확보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시리즈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유튜브 친화적으로 진화했다. 세 군데 유튜브 채널에다 영상을 올리고, TV편집본과 다른 세로 버전, 클린 버전 등 시청자들이 더욱 즐기고 팬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배려와 노력이 단발성으로 시류에 잠깐 편승하려는 기획과 플랫폼을 노리는 원조의 가장 큰 차이다.
코로나로 인한 예능 작법의 제약과 방송가의 온가족 콘텐츠라는 과거회귀적인 결론이 만나면서 음악 예능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음악경연 서바이벌쇼는 신선한 목소리의 확보, 새로운 스타 탄생 여부가 시청률보다 더 진한 영향력과 파급력을 만든다. 여기서 플랫폼을 염두에 두는 것과 프로그램으로 만족하는 포부의 결과는 달라진다. 말 그대로 붐이다. 과거 <슈퍼스타K>, <쇼미더머니>시리즈나 <미스·미스터트롯>처럼 프로그램을 플랫폼화 하지 않으면 파급력이 발생되지 않는다. 지상파 트로트 예능에서 두 자릿수 시청률은 언제 녹을지 모를 솜사탕일 뿐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TV조선,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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