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선 20만원 넘어도 '물건 없어 못 팔아', 시장은 10만원 안 돼도 '손님 없어 못 팔아'
[경향신문]
활기 띠는 백화점
상품 포장 분주한 직원들
10만원 이상 ‘스테디셀러’
한우·굴비 90만원대까지
지난달 31일 서울 광진구 롯데백화점. 지하 1층 식품관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에는 ‘굴비·멸치 세트’ ‘표고·수삼·더덕 세트’ 등 설 선물 판매를 알리는 현수막이 즐비했다. 매장에서는 직원들이 전화로 ‘청과 세트’ 주문을 받으면서 분주하게 포장을 하고 있었다. 한 직원은 “12만5000원 한라봉 세트와 13만5000원 사과·배 세트가 가장 잘 나간다”며 10만원대 제품을 추천했다.
설 연휴를 앞둔 지난 주말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설 선물 판매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10만원이 넘는 상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정부가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을 한시적으로 유예하며 기존 10만원이 상한이던 국산 농축산물 선물이 20만원까지 가능해졌다.
백화점 직원들은 10만원 이상 선물을 ‘스테디셀러’로 소개했다. 정육 매대에서 10만원 미만 선물은 찾기 어려웠다. 견과, 버섯 등 판매 코너에서는 20만원이 넘는 상품도 흔했다. 한우, 굴비는 90만원대 제품도 있었다. 상품에 ‘감사의 마음을 담은 20만원 이하 선물 세트’라는 표지를 붙여, 김영란법 상한액 이하로 살 수 있게 안내하기도 했다. 한 직원은 ‘20만원 이상은 김영란법에 걸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런 것 없다. 20만원 이상도 없어서 못 판다”고 답했다.
같은 날 서울 양천구 현대백화점에서도 ‘설 선물세트 특별전’이 열렸다. 배 6개와 사과 8개로 구성된 과일 세트는 김영란법 상한액인 20만원에 맞춰져 있었다. 고가의 과일인 한라봉, 샤인머스켓을 포함한 세트가 12만원, 14만5000원에 팔리고 있었고, 곶감, 호두, 잣으로 채워진 건과·견과 세트도 12만원부터 17만6000원에 판매되는 등 10만원대 상품이 많았다.
대형마트 역시 설 선물을 전면에 내세웠다. 서울 광진구 이마트 자양점은 입구에 ‘설 선물 상담 데스크’까지 마련했다. 대형마트는 10만원 이하 상품 판매에도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직원들은 김과 올리브유, 참치 등으로 구성된 2만~3만원대 세트를 추천했다. 매장 직원은 “육포 등 일부 중저가 상품은 벌써 동이 났다”고 말했다. 더덕, 인삼, 버섯 등 10만원 이상의 상품도 있었지만 대부분 2만~5만원대로 백화점보다 저렴했다.
파리 날리는 전통시장
선물세트 진열도 드물어
“비싼 물건 찾는 사람들은
백화점 가지 여기 오겠나”
전통시장으로 눈길을 돌리자 좀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김영란법 일시 완화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듯 당일 먹거리를 찾는 손님만 오가고 있었다. 서울 광진구 자양골목시장에서는 설 선물 세트를 전면에 내세운 매장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도 청과매장은 선물 세트를 매장 구석에 일부 내놨지만, 정육·수산의 경우에는 세트를 진열대에 올린 매장이 한 곳도 없었다. 한 정육 매장 직원은 ‘설 선물을 구입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설 선물은 가격에 맞춰 해줄 수 있다. 얼마짜리를 원하느냐”고 되물었다.
드물게 선물 세트를 진열해둔 청과 매장에도 10만원이 넘는 제품은 전혀 없었다. 가장 비싼 세트가 레드향·한라봉 등으로 구성된 6만5000원짜리 박스였다. 자양시장에서 청과매장을 운영하는 A씨는 “김영란법 선물가액이 상향된 걸 몰랐다”며 “우리 매장이 이 시장에서 좋은 과일을 취급하기로 유명한데, 이번 주에 설 선물 세트를 주문한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영란법이 바뀌어도 재래시장은 큰 변화가 없다. 한 사람 앞에 10만원, 20만원 이렇게 선물하는 사람들은 고위층들이고 백화점에서 사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라며 “비싸야 5만~6만원대 상품을 파는 입장에서 (김영란법 일시 완화가) 와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마장동축산물시장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은 설 선물 세트 준비에 한창이었다. 다만 이곳 상인들도 주문이 예년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마장동축산물시장에서 한우를 파는 B씨는 “(선물 상한액이) 20만원으로 올라간 영향은 없다”며 “오히려 작년보다 주문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경동시장에서 인삼을 판매하는 C씨는 “김영란법 선물가액이 올라간 것을 알고 10만원 이상 세트들도 준비해뒀지만 큰 영향이 없다”며 “5만~6만원대 상품이 가장 많이 나갔고 그것도 작년보다 덜 팔린다”고 말했다.
오경민·박채영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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