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 1900%' 파격..회장보다 월급 많은 직원 수두룩
첨단장비 온도·습지 유지
국내 1위 '항온항습기' 제조 에이알
삼성·롯데·GE·지멘스와 '빅5' 병원도 납품
40년 흑자 기록
'이직률 0%'..정년퇴직자 100% 再채용
코로나19로 반도체,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면서 순풍을 단 제품이 있다. 바로 ‘항온항습기’다. 항온항습기란 실내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주는 산업용 장비로 한 대에 에어컨, 난방기, 제습기, 가습기 등 4개의 기능을 모두 갖추고 있다. 특히 모든 데이터센터와 기업 전산실, 반도체 생산라인은 온도 22~24도와 습도 45~50%가 유지돼야 하기 때문에 항온항습기 설치가 필수다.
차량 전복사고 계기로 뛰어든 항온항습기 제조 시장
경기 시화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에이알은 국내 시장점유율 30~40%가량인 국내 1위 항온항습기 제조회사다. 산업용 냉각기, 공기조화기, 클린룸, 제습기, 가습기 등도 판매하고 있다. 만약 ‘첨단장비 보호제품’인 항온항습기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수백개의 서버를 24시간 365일 가동해야하는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과 열 때문에 봄 여름철엔 누전으로 화재가, 가을 겨울철엔 정전기로 시스템 오류가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다. 전산실도 마찬가지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반도체의 경우 항온항습기가 없으면 생산자체가 불가능하다.
국내 항온항습기 시장은 198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미국와 일본이 장악했다. 1981년 에이알을 설립한 한승일 회장은 당시 항온항습기 유지보수업무만 해왔다. 그가 제조 시장에 뛰어든 것은 1983년 삼성전자 수원공장에서 수입한 미국산 항온항습기가 사고를 당한 것이 계기가 됐다. 운송 화물차량의 갑작스런 전복 사고로 미국산 항온항습기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파손되자, 삼성전자는 한 회장에 SOS를 쳤다. 한 회장은 당시 전국에서 1년에 3명만 뽑던 기계기술사 자격증 보유자로 공조 분야 강사로도 이름을 날린 국내 최고 전문가였다. 한 회장은 서울 구로동 공구상가와 일본 도쿄 전자상가인 아키하바라를 오가며 부품 공수에 나섰고, 밤샘 작업 끝에 제품 메뉴얼만보고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냈다. 그는 “이 정도면 충분히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제조업으로 업종을 전환했고, 1985년 당시 서울 태평로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서울지점에 첫 제품을 납품했다.
삼성·SK·LG·롯데도 인정하는 품질…병원 수술실까지 넓어지는 영역
에이알 제품은 시장의 호평을 받으며 외국산이 점령해온 기업별 전산실·데이터센터·생산공장용 항온항습기시장을 하나둘씩 되찾아오기 시작했다. 주요 납품처는 삼성, SK, LG, 롯데, 포스코, 신세계, KT 등 대기업과 은행·보험·증권사, IBM 마이크로소프트 GE 지멘스 필립스 휴렛팩커드 소니 등 글로벌기업들이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병원 수술실을 비롯해 컴퓨터 단층(CT).자기공명장치(MRI) 촬영실 등에도 수요가 커져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에 모두 공급하고 있다. 최근엔 박물관, 문서보관소, 와인저장고, 식품가공공장 등으로도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한 회장은 “유물과 문서의 장기간 보관엔 최적의 온도와 습도가 필요하다”며 “바삭한 맛이 필요한 과자제조 공장엔 습도가 30%대 수준으로 낮아야하고, 반대로 와인저장고엔 80%대로 높아야한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설립 후 지난해까지 40년간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때도 성장을 이어가 연간 매출 증가율이 10~20%에 달한다. 코로나 사태인 지난해에도 매출은 700억원을 기록해 전년(600억원) 보다 16.6%(100억원) 증가했다.
한국의 한 중소기업이 외국계 대기업들을 상대로 시장을 빼앗아올 수 있었던 비결은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업무 혁신’, ‘발빠른 애프터서비스(AS)’이라는 분석이다. 한 회장은 매년 매출의 5~10%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하며 현재까지 100여건의 특허를 취득했다. 특히 이 회사는 실외기로 버려져온 폐열을 재활용하는 기술과 현열(온도변화로 나타나는 열)과 잠열(상태 변화에 쓰이는 숨은 열)을 제어해 에너지를 절약하는 기술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등 에너지 절약측면에선 세계적 기술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한 회장은 “아시아에선 우리와 같이 자체 기술과 생산 능력을 보유한 회사가 없고, 품질면에선 미국 버티브, 독일 슈나이더 등 세계 선두권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 회사 경영의 또다른 특징은 120여명 전 임직원이 3~4개월에 한번씩 제품 기술, 업무혁신, 서비스 개선 등의 아이디어를 발표하도록 한 것이다. 대신 보상도 두둑하다. 원가절감 방안의 경우 최초 제안자에게 전체 원가절감 금액의 10%를 인센티브로 제공한다. AS역시 판매한 제품이 모두 네트워크로 연결돼 고장 발생시 즉시 원격 대응이 가능한데다 전국 10개 지점에서 24시간 출동 체제를 갖춰 기업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이직률 사실상 0%, 정년 퇴직자 100% 再채용…퇴직자도 끝까지 쓴다
이 회사의 또다른 강점은 이직률이 0%에 가깝다는 점이다. 정년 퇴직자 역시 기술·생산 고문 등으로 100% 다시 채용했다. 한 회장은 "창업 초기 멤버 가운데 회사를 다니지 않는 직원은 없다"고 소개했다. 에이알은 영업에 따른 성과를 직원들에게 배분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에도 작년 전 직원에 기본급의 400%의 성과급이 지급됐고, 일부 직원엔 최고 1900%까지 파격적인 성과급이 지급됐다. 한 회장은 “나보다 월급을 많이 받아간 직원도 3~4명에 달한다”며 “직원들에 동기부여를 확실히 해주기위해서”라고 제도 취지를 설명했다. 정년 퇴직자 역시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이 회사 특징이다. ‘소사장’제도를 둬, 퇴임 후에도 기술·생산 고문 등으로 활동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한 회장은 “올해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수출도 확대해 매출을 작년보다 100억원 가량의 늘어난 800억원을 기록하는 것이 목표”라며 “2023년엔 매출 1000억원을 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에이알은 최근 신재생에너지 발전 수요가 증가하면서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냉동 공조시설에 대한 수출도 확대하고 있다. 최근 영국 필리핀에 이어 미국 텍사스에 수백억원 규모의 수출이 성사됐다. 생산 혁신을 위해 2019년엔 삼성전자와 중소벤처기업부의 도움으로 스마트공장을 구축한 에이알은 오는 7~8월까지 시화국가산업단지내 공장을 증·개축해 생산량도 20%늘린다는 계획이다.
춘천고와 강원대 임학과를 졸업한 한승일 회장은 한국기계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2007년 2월~2011년2월)을 역임했다. 2018년 금탑산업훈장을 받았고, 2019년 한국기계산업진흥회로부터 '올해의 기계인(산업계)'으로 선정됐다. 에이알은 지난해까지 19년 연속 산업통상자원부의 품질경쟁력 우수기업으로도 선정됐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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