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칼럼] 김종인 '색깔론'은 어울리지 않는다

성한용 2021. 2. 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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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칼럼]무리하게 색깔론을 제기한 김종인 위원장이 먼저 물러서야 한다. 김종인 위원장이 물러서면 문재인 대통령도 물러설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설 연휴까지 2주 연장됐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31일 국회에서 열린 ‘대북 원전 의혹 긴급 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성한용 ㅣ 정치부 선임기자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 공소장·관련자료 공개에 대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입장문’이라는 긴 제목의 자료를 보는 순간 아찔했다.

 “문재인 정부가 대한민국 원전을 폐쇄하고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려 했습니다. 원전 게이트를 넘어 정권의 운명을 흔들 수 있는 충격적인 이적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적행위라니! 한눈에 봐도 탈원전과 북핵을 엮은 ‘색깔론’이었다. 나라가 반으로 쪼개지겠다는 걱정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문재인 대통령이 펄쩍 뛰었다. 주말을 넘기며 지금까지 정당 지도부, 재·보선 후보들, 언론이 양편으로 갈려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의혹은 지난 28일 <에스비에스>가 검찰 공소장을 입수해 보도하면서 제기됐다. 이런 경우 야당은 대변인이 성명이나 논평으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것이 보통이다. 당 대표 명의의 입장문은 이례적이다. 왜 그랬을까?

 김종인 위원장이 본래 원전에 예민한 사람이기는 하다. 6공 경제수석 때 “경제 발전에는 전력이 중요하다”며 원전 건설을 앞당겼다. 문재인 정부의 원전 가동 중단을 “미래 세대에 폭탄을 넘겨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그래도 그렇지, 이적행위라니! 왜 그랬을까? 4월7일 재·보선용일 것이다. 당내 경선에 나선 후보들은 별로 매력적이지 않고, 정당 지지도는 오르지 않고, 이러다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혹시 지는 것 아닌가 걱정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색깔론은 지나쳤다. 김종인 위원장은 6공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소련과의 수교를 비롯해 북방정책에 깊숙이 개입했다. 그는 1990년 이후 우리나라 경제가 버틸 수 있었던 비결 가운데 하나가 북방정책이라고 했다. 북방정책은 외교·통일정책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경제정책이었다는 것이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이어졌다. 김종인 위원장은 햇볕정책을 “효과적인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을 포용하려면 박태준 포스코 회장이 생전에 북한 원산 지역에 포스코 제3 제철소를 짓기를 염원했다는 이야기를 새겨들어야 한다”고 했다. 제2, 제3의 개성공단 건설도 필요하다고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정책은 큰 틀에서 다르지 않은 것이다. 김종인 위원장이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정책을 공격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부정이다.

 색깔론이 김종인 위원장에게 어울리지 않는 다른 이유도 있다. 김종인 위원장은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이었던 할아버지 가인 김병로의 정신을 계승한 사람이다. 가인은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붙잡힌 수많은 사람을 무료로 변론했다.

 당시 신문과 잡지는 가인을 “조선 좌경 변호사로 첫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초까지 좌파적 사회주의가 민족운동에 파급되면서 ‘사상범’ 변호를 많이 한 탓이다. 가인은 사회주의자는 아니었다.

 1958년 이승만의 자유당은 국가보안법을 대폭 강화했다. “북괴의 위장평화통일공작을 주임무로 하는 간첩과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하는 천태만양의 범죄를 충분히 단속할 수 있는 법조항이 결여”되어 있다는 명분이었다. 재야에 있던 가인이 <조선일보>에 반대하는 글을 실었다.

 “사실을 ‘왜곡’이라는 어구와 ‘적을 이롭게 한다’는 어구와 같은 것은 형벌법규상 너무 모호하고 부정확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으므로 이것이 언론을 탄압하자는 계교(計巧)가 아닌가 국민이 의아하는 바이다. 만일 이러한 조항을 널리 해석하여 신문 잡지상에 공무원의 비행이라든지 강·절도의 발호라든지 국가재정의 남비(濫費)와 같은 사실을 보도하였을 때에 적이 이런 것을 역용(逆用)하여 한국의 정치를 비난하는 일이 있다면 일응 우리 신문, 잡지의 기사에 대하여 이적행위라고 수사를 개시할 수도 있을 것이며···”

 가인의 우려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혜안이 놀랍다. 그런데 가인의 손자는 63년 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정치적 경쟁 상대를 ‘이적행위’로 공격하고 있다.

 그래서다. 이건 아니다. 무리하게 색깔론을 제기한 김종인 위원장이 먼저 물러서야 한다. 김종인 위원장이 물러서면 문재인 대통령도 물러설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설 연휴까지 2주 연장됐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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