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진짜와 짝퉁의 대결, 뒤늦게 '진짜 설빙' 손 들어준 중국

조윤하 기자 2021. 2. 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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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설빙 상표(위), 중국 설빙 상표(아래)


어떤 게 진짜 '설빙' 로고일까요? 글씨 두께와 빨간색 인주의 위치, 그리고 특유의 흘림체까지. 언뜻 보면 두 상표는 동일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주 안에 있는 글자가 다른 걸 알 수 있습니다. 위에 있는 상표는 원조인 한국 설빙, 아래 상표는 중국의 '짝퉁' 설빙입니다.

●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상표만 똑같은 게 아니었습니다. '코리안 디저트 카페'라고 쓰여 있는 진동벨부터 인절미 빙수, 딸기 빙수 같은 메뉴까지 동일합니다. 카페 내부 구성은 어떨까요? 소파 디자인, 나무 재질 테이블, 의자까지 유사합니다. 지금은 한국 설빙의 유니폼이 바뀌었지만, 변경 전 유니폼은 '같은 회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똑같습니다. 모두 중국 업체가 한국 설빙을 그대로 베낀 겁니다.

중국 설빙 진동벨(왼쪽), 한국 설빙 진동벨(오른쪽)


● 중국 설빙의 정체

한국의 원조 설빙을 모방한 중국 설빙의 정체는 상표 중개(브로커) 업체였습니다. 이 업체는 중국에서 '설빙원소'라는 상표권을 선점하고, 수백 군데 가게를 내 영업 중입니다. 일반적인 상표 중개인들은 상표권을 선점한 뒤 돈을 요구하는데, 이 업체는 실제로 영업까지 하고 있는 겁니다. 상표권을 선점해 수익을 얻고, 그 상표권을 토대로 실제 가게를 운영해 이중으로 돈을 벌고 있는 거죠.

● 한국 설빙 "더 이상 못 참겠다!"

한국 설빙이 중국 진출을 시도한 건 7년 전입니다. 지난 2014년 7월, 중국 본토에 '설빙' 상표권 등록하려 시도했지만 기각됐습니다. 이후 상표권 등록 시도는 계속됐고,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중국에 이미 유사한 상표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알고 보니 상표 중개 업체가 '설빙원소' 상표권을 선점한 탓이었습니다. 중국 진출을 꿈꿔온 설빙에겐 아픈 경험이었을 겁니다. 이에 참다못한 설빙이 중국 회사를 상대로 상표 무효 심판을 제기했습니다. 중국에 있는 '설빙' 관련 상표를 모두 무효로 해달라고 요구한 겁니다.

● 상표 무효 심판 결과는?

반년 간 진행된 심리 끝에, 한국 특허청 역할을 하는 중국 상표평심위원회는 원조인 한국 설빙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중국 상표법 제44조를 근거로, '설빙원소' 상표가 무효라고 결정했습니다. 상표평심위는 중국 업체의 행위가 '정상적인 상표 등록 질서를 어지럽혔고, 공정한 경쟁 질서에 해를 끼쳤다'고 판단했습니다. 먼저 등록한 사람에게 상표 출원권을 줬던 중국의 이전 결정과 비교해보면 꽤 이례적인 판단입니다.

중국 상표평심위원회


● 설빙 승소 판단의 근거

이유는 개정된 상표법에 있습니다. 지난 2019년, 중국은 상표법 일부를 개정했는데, 설빙 승소 판단의 근거가 된 제44조도 이때 개정됐습니다. 제44조에는 '악의적인 목적을 갖고 타인의 상표를 대량으로 등록하는 경우, 사용을 목적으로 하는 상표라고 보기 어렵다'고 돼있습니다. 상표평심위는 이 업체가 영업을 위해서 '설빙원소' 상표를 등록한 게 아니라, 부정한 경쟁을 목적으로, 또 악의적으로 등록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 속수무책으로 당할 순 없다

취재진이 확인해보니, 이 업체는 총 288개의 상표를 등록했습니다. 이니스프리, 얌샘, 고봉민 김밥, 김가네, 뿅떡 등 누구나 아는 프랜차이즈 상호가 중국 업체명으로 등록돼있었습니다. 원조 기업도 모르는 사이 이 업체가 먼저 상표권을 출원한 건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상표 무효 심판을 제기하면 도용당한 기업이 직접 피해를 입증해야 합니다. 따라서 어떤 기업이 어떻게 상표권을 도용하고 모방했는지 등 증거를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다. 충분한 증거를 모은 뒤 법적 대응에 나서야 하는데, 이때 꽤 많은 비용이 듭니다. 이런 상황에 처한 기업을 위해, 한국 특허청은 법적 분쟁 비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상표권을 도용당한 기업이 신청할 경우 최대 4천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설빙도 이번 심판을 진행하며 특허청의 지원을 받았는데, 지원금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눈 뜨고 코 베이는 건 결코 한국 설빙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더 이상 한국 기업이 모르는 사이 중국에서 상표권을 선점하는 일이 없도록, 꾸준한 모니터링과 명확한 대응체계 마련이 필요합니다.  

조윤하 기자hah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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