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기자 왜 하냐?" 우리가 '구리시장' 기사를 써야 하는 이유
1. 기사를 써야 하는 이유
"기자 왜 하냐?"
어느 선배가 기자 왜 하냐고 물었습니다. 저도 선뜻 입이 안 떨어져 당황했습니다. 질문을 한 선배는 예전에 신입 기자 면접관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모든 지원자에게 기자를 지원한 동기를 물어봤는데, 생각보다 자신이 내심 원했던 답이 나오지 않아 의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한테도 물어보는 거라고 합니다.
자본과 권력에 대한 감시
이 선배가 내심 바랐던 답은 '자본과 권력을 감시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조직은 자본과 권력을 잘 감시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저 또한 SBS 보도국 일원인 만큼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이 조직에 있는 동안 지켜본 선배 기자들은 자본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잘못을 저지른 게 있으면 보도한다는 원칙을 지켜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안승남 구리시장 건도 이 같은 이유로 보도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SBS 기자라면 누구든 썼을 기사입니다.
안승남 구리시장, 3일간의 보도
SBS는 1월 27일부터 3일 동안 안승남 구리시장 관련 보도를 했습니다. 세 가지로 나눴습니다. 첫 번째는 시청에서 군 복무하는 시장 아들 문제, 두 번째는 시장의 골프‧고급식당 접대 의혹 문제, 세 번째는 시장 측근 인사 채용 문제입니다.
[관련 보도 보기]
▶ 구리시청 3층엔 '시장' 아빠, 2층엔 '군인' 아들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187669 ]
▶ 구리시장, 3조 사업 앞두고 골프 치고 고급 식당에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189054 ]
▶ 구리시장, 측근 자식까지 채용…음주운전 해도 무탈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190605 ]
2. 취재 내용
A. 병역
안 이병은 대한민국 몇% 남성일까?
모르는 남성 아무나 붙잡고 묻고 싶습니다. "실례지만 군 복무 어디서 하셨나요?" 이 가운데 '아버지 근무지'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1만 명 가운데 1명 정도 될까요? 관련 통계를 찾지 못해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근무지에서 하는 군 복무가 특별한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안 이병은 어떻게 구리시청에 배치됐을까?
안 시장 측은 취재진이 묻지도 않은 상근예비역 제도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했습니다. 취재진은 안 이병이 상근 예비역으로 복무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바 없습니다. SBS는 근무지가 어떻게 시청으로 배치가 됐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입니다.
소속 부대 측은 취재진이 처음 문의했을 때 거주지를 고려해 가장 가까운 시청에 배치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은 구리시청보다 가까운 상근 예비역 근무지가 있음을 알아냈습니다.
재차 문의했습니다. 그러자 육군 병인사 관리규정에 따라 출퇴근 거리뿐만이 아니라 생활환경과 성향 등을 고려해 근무지를 결정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안 이병이 구리시청에 배치돼야 할 생활환경과 성향이 무엇이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이에 대한 최종 답변은 소속 부대로부터 듣지 못했습니다.
변하지 않는 사실, 3층 아빠‧2층 아들
안 시장 측은 부대 배치에 개입한 바가 없고, 시청에서 근무하는 상근 예비역의 업무 강도가 다른 근무지보다 높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때문에 특혜라 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백 번 양보해 그렇다고 쳐도) 한 가지 변수를 잊었나 봅니다. 안 이병의 아버지는 구리시장입니다. 안 이병의 근무지는 구리시청 2층이고, 안 이병 아버지의 근무지는 구리시청 3층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군 복무가 아무리 힘들어도 아버지가 같은 건물에 같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과전불납리'라는 한자어가 있습니다. '오이 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않는다'는 말로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안 시장은 구리시민을 이끄는 지자체장입니다. 안 시장은 아들 안 이병의 부대 배치 후에도 사무실도 찾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지켜보는 다수의 시청 공무원들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B. 골프‧고급식당 접대 의혹
안 시장의 선택적 침묵
SBS는 안 시장이 지난해 8월 구리시 한강변 도시개발사업 공모 전후로 건설사 임원을 만났다고 보도했습니다. 안 시장 측은 병역과 인사 관련 기사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아무 입장도 내지 않고 있습니다.
'안 시장 만남' 인정하는 건설사 임원들
취재진은 안 시장과 만났다는 복수의 건설사 임원들에게 직접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들 모두 안 시장과의 만남을 인정했습니다. 만난 날짜를 두고 안 시장 측과 건설사 측 입장이 조금 다르지만, 양측이 만난 건 이젠 불변의 사실이 됐습니다. 한 시민단체는 안 시장을 의정부지검에 고발한 상황입니다.
결제는 누가 했을까?
안 시장 측은 지난해 7월 여의도의 한 고급 식당에서 건설사 임원을 만난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결제는 동석한 친구이자 부동산 개발업자 김 씨가 했다고 인정했습니다. 취재진은 모임 당시 먹은 음식 중 하나가 불도장임을 확인했습니다. 해당 식당에 문의한 결과 불도장이 포함된 코스 요리는 가장 싼 게 1인당 17만 5천 원입니다.
부정청탁금지법 8조 2항
안 시장도 김 씨가 결제했다고 합니다. 문제없을까요? 국민권익위원회의 한 관계자에게도 문의해 봤습니다. 직무 연관성이 입증되면 부정청탁금지법 8조 2항에 따라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똑같은 해명, 누가 나오는지 모르고 갔다
안 시장 측이 건설사 임원을 골프장과 식당에서 만난 것을 두고 공통적으로 말하는 게 있습니다. 누가 나오는지 모르고 갔다는 것입니다. 부동산 개발업자인 김 씨가 불러서 나갔더니 건설사 임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3조 원' 사업 앞두고 건설사 임원 만남
취재진은 건설사 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무슨 얘기가 오고 갔는지 완벽하게 모릅니다. 다만, 취재진의 문제의식은 안 시장의 부적절한 처신입니다. 안 시장은 3조 원이 넘는 사업을 앞두고 직무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건설사 임원을 만나고 다녔습니다. 언론이 지적해야 할 부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C. 측근 인사
'N차 인사'까지 벌어지는 구리시
지자체장은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당선된 지자체장은 자신과 그동안 손발을 맞춘 참모들을 영입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임기제 공무원으로 시장의 임기 동안 주로 보좌하는 역할을 합니다. 취재진은 임기제 공무원 임용 자체에 대해 문제를 삼은 적은 없습니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여러 명의 구리시 공무원과 산하기관 직원들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공통된 반응은 지나칠 정도로 자기 사람을 끌어온다는 것입니다. 안 시장 측근 가운데 시청 혹은 산하기관에 입성한 인사만 2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 시장 측근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자녀까지도 채용된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이른바 'N차 인사'입니다. 취재진이 확인한 경우만 3건에 달합니다. 인사는 그 어느 분야보다 '공정'이 중요합니다. 만약 내정자가 사전에 있었다면, 나머지 지원자들은 들러리를 선 것에 불과합니다. 취재진은 인사 의혹에 대해서 보도해야 할 공익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측근 인사, 업무 시간에 권리당원 모집?
한 제보자는 안 시장과 그 측근들이 권리당원 모집을 요구한다고 합니다. 벌써 다음 선거를 준비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공무원들한테도 당원 모집을 노골적으로 요구한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사실이라면 선거법 위반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음주운전? '능력 제일주의' 구리시
안 시장의 정책보좌관인 정 모 씨는 지난해 7월 음주운전을 했습니다.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았습니다. 임기제 공무원인 정 씨는 정직 처분이 끝날 무렵 재임용됐습니다. 안 시장은 정 씨 재임용을 두고 적극 해명을 합니다. 정 씨의 '업무수행실적평가'가 우수했기 때문에 다시 임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헌법 25조 공무담임권까지 거론합니다.
물론 취재진이 정 씨의 재임용을 두고 '위법'하다고 보도한 적은 없습니다. 이참에 구리시의 인사 원칙을 새로 알 수 있었습니다. 구리시는 음주운전을 해도 능력만 뛰어나면 처벌받은 뒤에도 얼마든지 중용될 수 있나 봅니다.
프로 야구선수들의 음주운전 적발 기사를 가끔 봅니다. 음주운전에 적발된 선수들은 처벌 수위가 꽤 높습니다. 구단은 해당 선수를 '임의 탈퇴' 형식으로 야구단에서 내쫓기도 합니다. 처벌과 복귀 수순은 이 선수의 위상에 상관없이 진행됩니다. 이 선수의 시즌 타율이 2할이든 3할이든, 방어율이 3점대이든 2점대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 프랜차이즈 스타 선수는 음주운전으로 불명예 은퇴를 했습니다. 한 선수는 화려한 메이저리그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국내 리그에 아직도 복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선수가 구리시 소속이었다면 진작 복귀할 수 있었겠죠?
3. 취재 착수 배경
지난해 말부터 제보 접수
안승남 구리시장 관련 제보는 지난해 말부터 들어왔습니다. SBS 사회부 시민사회팀이 1월 중순부터 맡아서 하는 것으로 결정됐습니다. 제보자도 여러 명이고, 제보 내용도 방대했습니다. SBS가 1월 27일부터 3일간 보도한 내용(병역, 접대, 인사)뿐만이 아니라 여러 의혹들이 제기됐습니다.
시민사회팀은 취재를 착수해야 할 사안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당사자는 선출직 지자체장이기 때문입니다. 지자체장에게는 막대한 권한이 주어집니다. 인사권, 예산 편성권, 인허가권 등 지방자치법 9조를 보면 여러 권한이 나열돼 있습니다.
취재진이 안승남 구리시장 보도를 결정한 건 공직자로서 올바르지 못한 처신을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안 시장이 그동안 보여준 모습에는 '적절'하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고급 식당과 골프장 접대 의혹, 권리당원 모집 의혹은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안 시장 측은 SBS의 이번 보도에 대해 SBS 대주주 개입 의혹을 제기합니다. SBS 취재진은 수많은 확인과 검증 절차를 거쳐 이번 보도를 했습니다. 선출직 공직자가 이에 대해 근거 없는, 게다가 전형적인 음모론을 들고 나오는 모습에 연민마저 느껴집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1월 29일 미디어오늘 기사를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하겠습니다. [▶미디어오늘 기사 바로가기]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729 ]
박찬범 기자cbcb@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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